개업하자! (8) - 밖은 춥고 어깨는 무거워

2년차 개업변 우울증(이것은 진짜다)

by 로지마

개업변 각자에게는 각자의 어려움이 있을 텐데, 나에게는 의외로 우울증이 왔다. 나는 뭐라도 영업줄을 들고 개업한 것이 아니다보니 굶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고 다들 그 부분을 많이 걱정해주셨는데, 의외로 '굶지는' 않았다. 예전에 벌던 것보다 적게 벌지만서도(물론 노력하면 더 벌 수 있긴 한데 노력 안 하고 있다..) 어? 이정도면 생각보다 안 굶네? 국선도 논스톱국선 외에는 신청 못 했는데 이정도면 안 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근데… 의외로 우울감과 불안감이 심하게 들었다.


이런 짓을 하고 있으면 모두 미쳐버린다.png 이런 짓을 하고 있으면 모두 미쳐버린다...


가장 먼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나에게는 좋은 부모님이 있지만 부모님은 법조계 분들도 아니시고,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여쭤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별산 사무실에 들어와 있고 친구가 같은 사무실에 있기 때문에 얘기할 수 있긴 한데, 다른 변호사님 어쏘인 데다가 일이 워낙 많아서 말 붙이기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사무실 다른 변호사님들과 밥을 같이 먹거나 하기도 하지만 나는 애초에 점심을 잘 안 먹기도 하고, 업무 분야가 워낙 달라서 뭔가 얘기하기도 애매하다. 다른 회사 변호사 친구들은 많지만 변호사윤리도 그렇고 우리 사건 얘기가 짧은가. 하나 물어보려면 10분은 설명해야 하는데 사는 거 힘든 친구들에게 그거 물어보고 있기도 미안하다. 개업하기 전에 "같이 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다"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그게 정말 뼈저리게 느껴졌다. 예전에 다녔던 사무실 중 하나는 공산 사무실이었는데, 왜 두 분이 같이 개업했는지 알겠더라고.


위와 관련해서, 아주 간단한 걸 얘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힘들었다. "야 상대방이 한 달째 답변서 안 내는데 선고기일지정신청서 내 변론기일지정신청서 내?", "무죄 다툴건데 이건 입증취지부인할까 증거부동의할까?" 나중에 가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들인데 말할 사람이 없으니 혼자 끙끙 앓게 되는 것들이다(대체로 이런 건 다 해봤는데 하도 옛날에 해봐서 어떻게 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것들이다). 선고기일지정신청서 내든 변론기일지정신청서 내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은데, 내가 뭘 내기도 전에 며칠 지나면 재판장이 알아서 기일 잡아주는 경우도 꽤 있는데 괜히 며칠 전부터 끙끙 고민하기도 했다(원래 이런걸로 큰 고민 안 했는데 어째 성향이 바뀐 것 같다). 입증취지부인과 증거부동의는 (사무실마다 다르게 택하기도 하고) 의뢰인의 상황마다 택해야 하며 대체로 입증취지부인으로 하면 무난한데다가 지금껏 그렇게 해왔는데 뭘 그리 심각히 고민하게 되던지(그리고 막상 내가 고민해서 증거부동의로 들고가면 판사님이 적당히 정리해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정리받아본 적도 있고). 그리고 이런 걸로 친구한테 연락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뭐라고 안 하는데 친구들이 많이 귀찮아할까봐 고민하기도 했다. 막상 나는 누가 뭐 물어본다고 해서 별 생각 안 했는데;


그리고… 나 혼자서 의뢰인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게 너무 무거웠다; 물론 이 사람의 인생이 이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 근데 내가 실수해서 이 사건이 망하면 타격이 꽤 크잖아. 다각도로 함께 검토해 줄 사람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좋겠어. 다들 어떻게 혼자 개업해서 버티는 거야? 지금도 옆방 변호사님이 전화하시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는데, 저분도 우리 회사에서 혼자 하시거든. 어떻게? 하시는? 거지??


'굶지 않으려면' 내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예전엔 대표님이 다 가르마를 타 줬거나 어차피 나는 월급만 받으면 되니 대표님이 시키는 대로 다 하면 됐는데, 이젠 내가 그 '대표님'의 역할을 해야 하니까. 생각보다 의뢰인(진)들은 특이한 요구를 많이 한다.




…대충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하고 있었더니 대한변협인지 서울변회인지에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거라도 가볼까 싶다… 대체 여러분은 어떻게 버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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