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든 일도 글로 쓰고 보면 이상하게도 별거 아닌 것 같이 느껴져.
복잡하고 정신 사납게 둥둥 떠다니던 걱정과 고민을 잡아들여 글에 주저앉히곤 해.
발버둥 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열을 맞추면 어지럽던 공간에 작은 자리가 생겨.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겨우 문장 몇 개로 추려질 때, 용기가 나더라고.
보이지 않아서 막연히 거대한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쓰고 보니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어.
실체가 없던 걱정을 글로 시각화하자 두려움이 많이 가시는 거야.
원래 모르면 두려운 법이니까.
그래서 자꾸 쓰는 건가 봐. 너무 무서워서.
때때로 마주하는 많은 문제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전혀 가늠조차 안 될 때가 많아.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남들에겐 쉽게 허락된 것들이 내게만 너무 까다롭고 깐깐해서 자주 야속해져.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것조차도 버거울 때,
서 있는 것도 힘들고 누워있어도 몸이 무거울 때,
나는 글을 쓰며 연습하곤 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결정을 할지 내가 설계하고 주도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잘 쓰든 못쓰든 시작부터 끝까지 내 뜻대로 이끌 수 있는 자유,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그래도 하나쯤은 있다는 안도감,
적어도 이 안에서만큼은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온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
느리더라도 계속 써 내려가는 이유야.
아니, 쓸 수밖에 없는 까닭이야.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도 좋아.
글의 너그러움은 언제든 퇴고를 허락해.
괜찮아, 다시 해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숙명 속에도 다음 기회는 있다는 듯이.
유치하다고 웃어버리고 바꿀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부정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세상에서 긍정하는 순간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계속 쓰고 싶어.
장황하고 요란하던 불행이 말수가 줄어들며 힘을 잃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오늘도 쓰고 있어.
얼룩덜룩 지저분했던 불행이 글을 통해 그럴듯한 이야기로 변해갈 때, 내게도 힘이라는 게 있다고 느껴져.
세상 모든 일을 내 뜻대로 할 수는 없지만,
상황은 똑같고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가짐뿐이라 해도,
그 마음가짐으로 시작해 삶 전반을 차근차근 바꿔 갈 수 있는 힘.
쓰는 사람에겐 그런 힘이 있더라고.
그래서 글의 힘을 믿고 글 쓰는 나를 믿어보려고 해.
내가 아는 한, 가장 확실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이니까.
정말 인간답게 삶을 지속하는 방법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