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를 자주 하는 시 산하기관에서, 행사 때마다 진행을 도울 안내원을 모집했다. 크게 어렵지 않아보여서 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시급 11,000원짜리 일용직인데도 이력서는 물론, 자기소개서까지 내야 하고 면접도 있다. 아쉬운 건 나니까, 일단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첫 항목부터 난감하다.
자기소개.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나 글 쓰는 반백수인데? 브런치 소개에도 그렇게 썼다고. 지금까지 이런 인간은 없었다, 이것은 작가인가 백수인가, 아, 나는 수원왕갈비통닭만큼이나 정체성이 모호한 글 쓰는 반백수이다. 치느님은 언제나 옳기라도 하지, 나는 매우 옳지 못한 무직, 무소득 상태이다. 다음 항목부터 쓰기로 하고 일단 패스.
가만 보자, 두 번째는 지원동기? 자기소개보다 더 어렵다. 돈 벌려고 지원했지 무슨 동기를 대라는 건지 모르겠다. 먹고사는 것보다 더 간절하고 다급한 게 있나? 하지만 생계라는 동기는 그 진실함과 고귀함에 비해 인사 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부족한 편이다. 저는 이 기관에 늘 관심을 가져왔고(이런 곳이 있는지도 이번에 알았지만), 이 기관의 사업에 기여하고 싶어서(딱 시급만큼만 기여할 거지만) 지원하였습니다. 보기에나 그럴듯할지언정, 어쩌면 먹고사는 것보다 더 세속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다음은 성장 과정 및 성격의 장단점이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다 보니 독립적이고 억척스럽습니다. 그래서 행사에서 돌발 상황이 생겨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대응할 능력이 차고 넘친다고, 마치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자전 소설을 쓴다.
이게 안내원 모집인지 허풍쟁이 모집인지 헷갈렸지만, 작가가 되고 싶단 사람이 자기소개서 하나 못 써서야 소는 누가 키우나 싶어서 브런치 글 다음으로 고심하여 지원서를 써냈다.
다행히 면접 대상자가 되어 면접을 보러 갔다. 20대부터 50대까지 지원 연령이 다양했다. 20명이 넘는 인원을 4인 1조로 나눠 면접이 진행됐다. 일용직 그 까이꺼 떨어져도 그만이라고 부담 없이 하려 했는데,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된다. 속으론 너희들이 뭔데 날 평가하냐고 삐죽 댈지언정 겉으론 픽미업을 외쳐야 한다. 드디어 면접이 시작됐고 하필 내가 첫 번째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수원왕갈비통닭, 아니 1번 지원자입니다. …
면접에서는 ‘최근 방문한 행사와 거기서 느낀 개선점’, ‘당신이 생각하는 서비스란?’ 등 일용직을 뽑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드는 물음이 던져졌다. 자기소개서가 경직된 보수였다면 면접은 상대방의 분수를 헤아리지 않는 혁신이었다. 열탕인 줄 알았는데 냉탕에 빠진 듯, 보수와 진보의 웅장한 연합에 정신이 혼미하다. 아, 여긴 어디, 난 누구.
면접이 끝나고 진이 빠져서 건물을 나가려는데, 누군가가 내게 여기 직원이냐고 묻는다. 아닌데요. 어디를 찾는 것 같았지만, 나도 처음 온 곳이라 도움을 줄 수 없었다. 흰 블라우스에 검은 슬랙스와 구두, 뭔가 지쳐 보이는 모습까지, 직원처럼 보였나 보다. 20대 중반까지는 학생으로, 30대 중반까지는 회사원으로 살았으니, 난 아직도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이 더 익숙한지도 모르겠다. 남이 보기에도, 나 스스로도.
소속 없이 산지 2년 7개월째다. 소속되지 않고 먹고사는 삶을 꿈꾸면서도, 소속 없이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되어 내 몫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늘 무기력하고 불안했다. 이런 내가 다시 일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내 자리가 있기는 있을까.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띵동. 이번 인력채용에 합격하셨습니다.
일주일 뒤, 합격했다는 문자가 왔다. 세상은 말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해보라고. 결코 쉽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못할 것도 없다며. 이제는 어디에 나를 소개할 수 있을 만큼, 다시 일이라는 걸 시작해 볼 용기가 날만큼 조금은 괜찮아졌다는 걸 알았다. 이 한 걸음을 떼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행사 비수기인 겨울이라, 일은 내년부터 할 수 있을 거란다. 겨우 일용직 하나 구했고, 이도저도 아닌 무직 상태는 기약이 없어 백수의 겨울은 길고 추울 테지만, 그래도 다시 '일'이라는 걸 해보려 한다. 모름지기 알바란, 내 알 바 아니라고 그만둘 수 있으니 부담을 내려놔도 될 것 같다. 이제 일용직 뛰며 글 쓰는 반백수가 되었다. 나를 응원하는 의미로 오늘 저녁은 수원왕갈비통닭에 맥주, 콜!
요즘 가을인가요 겨울인가요¿ 급 추워졌어요 ㅎ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라고 믿고 싶어요 ~ 가지 마 가을아 (질척 질척ㅋㅋ)
감정기복 심한 요즘 날씨에 지지 마시고, 모두 건강 챙기세요ㅎ
긴 글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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