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브런치 무비패스 #19
감독 질드 메스트르
식당을 여는 날이면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린다
영화를 보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요즘 직업적 성공을 거둔 이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길었다. 타고난 재능과 하나의 길만 보고 달려가는 집요함,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노력에 더해진 귀중한 기회와 운까지. 평범한 회사원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의 두드러지는 성공과 스포트라이트는 동경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알랭 뒤카스 또한 직업적으로 독보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동경의 마음을 가졌다. 그 와중에 그가 내뱉은 토할 것 같은 중압감이라는 말은 무척 뜻밖이었다.
수 많은 식당을 열어 운영한 경험이 있고, 이미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음에도 중압감을 느낀다는 것은 그 사람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귀중한 기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중압감은 지금까지 이룬 성공에서 멈추거나 자만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테니 말이다. 알랭 뒤카스는 60대의 나이에도 일본, 중국 등의 나라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자신이 모르는 맛과 요리를 공부하며, 최고의 카카오를 공급받기 위해 그 생산지를 직접 찾아 나선다. 그리고 몽골과 같이 낯선 나라에 새로 식당을 여는 것을 도전으로 여기며 프랑스 대표 유산인 베르사유 궁전에 새로운 식당을 여는 도전을 하게 될 때도 그 장소의 의미가 갖는 의미를 한 껏 끌어올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식당의 컨셉을 고민한다. 한 시간 반의 짧은 러닝타임이었지만 인간이 어떤 영역에서 발전해나가는 데는 끝이 없구나 라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해갈 때는 한 번도 개척되지 않은 길이기에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하며 그럴수록 원재료와 같은 본질에 더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요리라는 분야에도 통한 다는 것을 알았다.
끝을 모르고 더욱 더 날카로워지고 있는 거장의 일상을 바라보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고작 5년 남짓의 짧은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 이상 커리어를 위해 준비해야 일을 찾지 못하겠다고 이야기 했던 나의 오만한 생각들을 반성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은 그냥 돈벌이로 두고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만을 찾고 있었던 나를 반성했다. 직업적 성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닐 수 있고, 회사원이라는 직업의 숙명을 탓할 수도 있고, 돈만 바라보도록 나를 채찍질하는 이 사회를 탓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언제까지나 내가 직업적으로 무언가 이루어내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내 마음을 뛰게 하는 무언가를 찾아서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수 없이 들어온 말이지만 그 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니, 진지하게 생각하기는 커녕 그 말을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가슴뛰는 일을 찾으라니. 그러면 돈벌이는 어떻게 하며 이미 빚을 지고 사회로 나온 눈앞이 깜깜한 사회초년생들은 누가 책임져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속으로 냉소적인 태도만을 취했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봤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는 듯한 요즘 "가슴 뛰는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보게 된다. 그저 시간을 때우는 일이 아닌 그 일을 하기 위한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일들, 남들이 잘 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주어도 채울 수 없는 타는 갈증이 일어나는 듯한 일들, 계속해서 나아가야 할 길들만 보이는 일들, 어떤 역경도 기꺼이 헤치고 나가보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이 생기는 일들,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그런 일. 내 인생에 그런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아직은 찾지 못했다.
노인의 얼굴을 하고, 소년처럼 끝없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알랭뒤카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서 안정만을 좇는 나의 현재를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얼마 전 조승우 배우가 지킬앤하이드의 마지막 공연에서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알 수 없는 두려움들이 너무 컸어요.
굉장히 많이 떨어요. 죽을 것 같이 떱니다.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시겠어요?
데뷔 이래 모든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조승우 배우의 입에서 나왔다기에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늘 태연해 보이고 여유있어 보이는 그의 모습 안에 알 수 없는 두려움들이 매 순간 찾아왔었다니. 나같이 무조건적인 믿음과 기대를 보내는 관객이 그에게는 두려움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직업이라는 세계에 완성은 없는 듯 하다. 타인의 눈에 완성에 가깝게 다가간 이들을 그 자리에 가게 한 원동력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모두 무너뜨리게 될 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안고 또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하는 마음 속 깊은 곳의 끝없는 열망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었던 내 마음 속의 직업과 관련된 반성들도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어야 겠다. 어쩌면 한 발 짝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토닥이는 내 안의 욕심쟁이라고 생각하면서.
먹음직스러운 음식들과 아름다운 세계 곳곳의 풍광을 가볍게 구경하고 잊을 수 있는 영화일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 나의 삶과 직업에 관한 고민과 맞물려 무거운 생각과 나름의 긍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낸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