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과 감사함
며칠 전에 비가 오더니 어제는 갑자기 첫눈이 폭설로 쏟아졌다. 사는 동네에 눈이 엄청 쌓여서 출근도 못했다. 예상치 못한 휴무에 기분이 잠시 들떠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을 지켜봤다.
초등학생 때 첫눈은 내게 행복이었다. 첫눈이 내리면 꽁꽁 싸매고 밖에 나가 눈사람도 만들고 미친 듯이 눈싸움을 했다. 옷이 다 젖고 볼이 빨개져도 그게 그렇게 좋았다. 순수했다.
군인일 때 첫눈은 내게 외로움이었다. 드넓은 산 길 속 내게 할당된 구역에 쌓인 눈을 혼자 막연히 쓰는 일이 그렇게나 외로웠다. 새하얀 공간에 나 혼자 남은, 열심히 쓸어 보지만 멈추지 않는 눈발에 나조차 눈사람이 되어버렸다.
부쩍 커버린 내게 눈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비는 비 일 뿐이고 눈은 눈일 뿐이다. 고만고만하다. 눈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순수하게 세상을 덮지만 내가 때가 많이 탔나 보다.
하지만 내 옆에는 아직도 첫눈이 내리면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내가 눈 위에 그려 보내는 하트 때문에 행복해할 것이다. 그조차도 순수한 마음이다. 눈 위에 하트를 그리며 나도 잠시나마 순수했던 동심으로 돌아간다. 순수한 마음이 전염된다. 순수한 사람이 옆에 있단 사실에 감사하다.
올해의 첫눈은 내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사함이다.
#2024.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