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lukewarm Nov 29. 2024

첫눈

순수함과 감사함

며칠 전에 비가 오더니 어제는 갑자기 첫눈이 폭설로 쏟아졌다. 사는 동네에 눈이 엄청 쌓여서 출근도 못했다. 예상치 못한 휴무에 기분이 잠시 들떠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을 지켜봤다.


초등학생 때 첫눈은 내게 행복이었다. 첫눈이 내리면 꽁꽁 싸매고 밖에 나가 눈사람도 만들고 미친 듯이 눈싸움을 했다. 옷이 다 젖고 볼이 빨개져도 그게 그렇게 좋았다. 순수했다.


군인일 때 첫눈은 내게 외로움이었다. 드넓은 산 길 속 내게 할당된 구역에 쌓인 눈을 혼자 막연히 쓰는 일이 그렇게나 외로웠다. 새하얀 공간에 나 혼자 남은, 열심히 쓸어 보지만 멈추지 않는 눈발에 나조차 눈사람이 되어버렸다.


부쩍 커버린 내게 눈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비는 비 일 뿐이고 눈은 눈일 뿐이다. 고만고만하다. 눈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순수하게 세상을 덮지만 내가 때가 많이 탔나 보다.


하지만 내 옆에는 아직도 첫눈이 내리면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내가 눈 위에 그려 보내는 하트 때문에 행복해할 것이다. 그조차도 순수한 마음이다. 눈 위에 하트를 그리며 나도 잠시나마 순수했던 동심으로 돌아간다. 순수한 마음이 전염된다. 순수한 사람이 옆에 있단 사실에 감사하다.


올해의 첫눈은 내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사함이다.


#2024.11.29

작가의 이전글 사람 사는게 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