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한국회사
세상 어디든 병맛 같은 회사와 사람은 존재한다. 수만리 떨어진 외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원졸업 후 직장취업으로 방향을 틀고 금세 기회가 찾아왔다. 직장 지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던 찰나, 이미 그 회사를 다니고 있던 대학후배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회사가 살던 곳과 멀었지만 비자가 해결되고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면 이사도 감행할 참이었다. 한국회사였지만 이름만 들으면 한국인 누구나 아는 기업이었기에 회사에 대한 그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다. 독어를 쓰는 포지션이라 더욱 언어가 가능한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고 나는 곧 오퍼를 받았다.
첫 출근 전 한국을 방문했다. 부모님은 딸의 첫 취업을 축하한다며 예쁜 옷과 신발을 사주셨다. 나 또한 잠시 접어둔 꿈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그러나 그 설렘은 단 3개월 만에 무너지고 나를 망가뜨렸다.
이제 막 주재원을 시작하던 젊은 상사는 생신입인 나에게 무안주는 것을 재미로 여겼다. 뭐든 모르면 물어보라던 동료들은 내가 없으면 나를 안주거리로 삼았다. 그때 생전처음 타인의 대화를 녹음해봤다. 단 1분이라도 자리만 비우면 나는 바로 그들의 입으로 갈기갈기 찢겼다. 그들이 나를 싫어했던 이유는 내가 '생각'이라는 걸 해서라고 한다. 꼭두각시가 되어야 하는데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싫었나 보다.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 같던 후배는 직장 내 편가르기를 주도하던 그룹에 끼어 나와 인사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는 그에게 항상 존댓말을 썼고, 우리는 사석에서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생판 모르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니 덕분에 취업해서 고맙다고 따로 선물도 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오면서 그 후배는 수 백유로 상당의 보너스도 받았는데 나는 인사조차 받지 못하는, 그저 그들 무리의 떡밥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고졸인 독일직원보다 내 월급이 낮다는 것을. 비자를 명목으로, 회사의 네임벨류를 내세워 그들은 순진한 한국인들의 월급을 그렇게 후려치기 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 독일 안에 있는 한국회사에서도 나를 이방인취급 하고 있었고, 이는 곧 차별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하여 소위 비자가 필요한 한국직원들은 부당한 대우를 참아야 했다. 모르는 게 약이거나, 억울해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현지채용자(현채)'들의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내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밤에 잠을 못 자고 음식은 종류와 관계없이 먹는 족족 복통으로 이어졌다. 이대로는 안된다. 직장은 회사이름이 아니라 상사와 동료를 보고 가야 했는데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나의 실수다.
비자 때문에 급히 방향을 틀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큰 결정을 해야 함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금 퇴사하면 어렵게 받은 근로비자도 무효가 되고, 잘못하면 독일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는 게 먼저였다. 건강한 일상을 되찾아야 이직을 하든, 추방을 당하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은 깊고 짧게, 행동은 빠르게. 고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퇴사통보서를 냈고 상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워 보였다.
"그치? 나갈 거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ㅋㅋ"
그는 나를 죄인취급했다. '조용히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나가라고 했다. 도저히 대기업 직장상사의 행동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유치하고 역겨웠다. 매니저가 회사의 유치원화를 자처하시니 조직 전체가 편가르기의 온상 그 자체였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대역죄인처럼 나가야 하는가? 나는 고마웠던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작별인사를 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왜 나가는지.
국적과 언어를 떠나 어디에나 병맛이 존재한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무비자 무직의 외국인이 되었다.
사진출처: 엘라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