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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May 14. 2020

안녕, 아빠

Astor Piazzolla - Adios Nonino


탱고에 관심이 없는 한국인이어도 들어봤을, 심지어 여러 번 찾아들었을 곡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아스토르 피아졸라 Astor Piazzolla의 아디오스 노니노 Adios Nonino.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프리 무대에 선보인 곡이다.

곡의 유려한 선율과 김연아의 아름다운 스케이팅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황홀하게만 느껴진다. 지금도 라디오에선 아디오스 노니노가 종종 흘러나오는데, 그건 김연아 선수 덕이 아닐까. 물론 원래가 우주에서 가장 히트 친 탱고곡 중 하나이긴 하지만, 탱고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말이다.


내가 탱고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 삶의 애환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 아픔, 외로움, 질투... 탱고 역시 대중음악인지라 우리에게 친숙한 정서를 노래한다. 그 주요 소재 중 하나는 단언 부모에 대한 사랑이다. 피아졸라 역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디오스 노니노를 작곡했다. 가정의 달을 기념해, 부모에 대한 마음을 담은 탱고 몇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다.



1. 아버지를 위한 탱고곡


1959년 10월 13일.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있던 피아졸라에게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피아졸라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무대에 올랐지만, 상실감이 너무나 컸다. 그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산후안 공연이 끝나고 뉴욕 집에 돌아온 피아졸라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애절한 곡조의 음악을 작곡했다. 펑펑 울면서 반도네온을 연주했다. 당시 아내였던 데데의 회상에 의하면, “한숨 소리는 끔찍했다. 그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고, 사실 우는 것 자체를 처음 보았다.”라고 한다.

피아졸라가 아버지에게 헌정한 곡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1955년, 그는 아버지의 닉네임을 따서 '노니노'라는 탱고 곡을 하나 작곡했다. 노니노는 즐겁고 쾌활한 탱고곡인데, 아디오스 노니노는 이 곡을 재활용해 만든 곡이다. 기존곡과는 정반대로 애절한 멜로디를 갖게 되었지만.

피아졸라는 어머니 ‘노니나’를 위해선 아무 곡도 쓰지 않았다. 왜 아버지를 위해서만 이렇게 두 번이나 곡을 지었을까? 거기엔 피아졸라와 아버지의 강한 유대관계가 작용했다.



2. 피아졸라의 아버지


아스토르 피아졸라에게 아버지 노니노, 비센테 피아졸라는 참으로 각별한 존재다.

피아졸라가 처음 반도네온을 안게 된 건 아버지 덕분이다. 당시 열 살도 안 된 꼬마 아스토르는 말썽을 너무 많이 부려서 친구들과 싸우고 학교에서 퇴학당하기도 다반사였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반도네온을 선물했다. 비센테 본인이 탱고를 좋아하는 데다가, 아마 음악을 하면 말썽을 덜 부릴 거라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그게 피아졸라가 여덟 살 때의 일이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탱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클래식과 재즈에 더 빠져있었는데, 아마 유년기를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닌 뉴욕에서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피아졸라의 가족은 1925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고, 그 영향으로 피아졸라는 평생 뉴욕을 사랑했다. 대공황 이후 가족은 아르헨티나로 다시 돌아갔다.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는 상황에도 부모는 아스토르가 계속 음악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후 아스토르는 10대 중반에 탱고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는데, 그때 연주한 곡도 모차르트 곡이었다.

클래식, 재즈, 라틴, 전자음악 등 - 끊임없이 다른 장르와의 변주를 시도했던 피아졸라. 그래서 탱고 전통주의자들에게 온갖 욕을 먹었지만, 피아졸라는 단 한 번도 탱고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 오히려 자신이 뿌리가 탱고임을 몇 번이고 공고히 했다. 그것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항상 “너는 아르헨티나인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피아졸라의 가족은 이탈리아계 이민 가족이고 비센테 피아졸라 역시 이탈리아인이다. 하지만 그는 아르헨티나를 자신의 문화적 뿌리로 여겼고, 아들 역시 그렇게 살라고 가르친 것이다.

아버지가 이민자였던 것처럼 아들 역시 평생 미국, 프랑스 등을 떠돌아다니며 유목민처럼 살았다. 그런 인생은 피아졸라가 자신의 뿌리에 대해 고민하게 했을 것이고, 이때 아버지의 가르침이 더욱 강력하게 작용했다. 다양한 음악 장르를 시도했던 것도, 내면 깊숙이 탱고가 튼튼히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자신에게 반도네온을 선물하고, 문화유산을 물려준 아버지를 각별하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아디오스 노니노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 담긴 탱고곡이다.




피아졸라는 아디오스 노니노를 20번 이상 다르게 편곡해서 수천 번 이상 연주했다. 그중에는 클래식 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한 버전도 있고, 전자 밴드 노닛을 위한 버전과 그의 대표 그룹- 퀸텟을 위한 버전도 있다. 세상엔 아디오스 노니노를 연주한 음악가가 피아졸라 한 사람은 아니니, 얼마나 많은 버전이 있을지 짐작조차 안 간다. 그중 몇 개만 소개하고자 한다.



(1) Astor Piazzolla - Adios Nonino (1961)

Astor Piazzolla Quintet - Piazzolla Ensayos (unofficial) (1961)


피아졸라가 그의 첫 번째 퀸텟과 함께 녹음한 초창기 아디오스 노니노다. 반도네온과 바이올린, 피아노, 베이스, 그리고 일렉기타가 참여했다. 1960년대의 시작, 일렉기타, 퀸텟 - 누에보 탱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하다.

후대에 연주된 버전에 비해선 멜로디가 단조롭다. 하지만 오히려 꾹꾹 눌러 담은 슬픔이 느껴진다. 거기엔 바이올린 연주의 영향이 크다. 피아졸라 퀸텟의 첫 번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엘비노 바르다로 Elvino Vardaro. 탱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도 불리는 그는 현에 강한 힘을 주어 아주 짙고 빠른 비브라토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그의 연주는 아름다우면서도 어둡고 깊다. 그는 피아졸라 퀸텟에서 단 세 개의 앨범만 만들고 클래식 세계로 돌아갔다. 심지어 그중의 두 앨범은 공식 앨범도 아니다. 시대가 발전해 유튜브로 들을 수 있단 게 그저 다행이다.



(2) Astor Piazzolla - Adios Nonino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HkmQpHRp0Uw

Astor Piazzolla Quintet - Adios nonino (1969).. 링크가 막혀서 주소도 공유

앨범의 이름 자체가 아디오스 노니노다. 1961년 버전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곡의 길이다- 갑자기 7분 55초가 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길어진 이유는, 곡의 오프닝에 150초짜리 피아노 카덴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화려한 피아노 카덴차는 피아놀라가 직접 작곡했는데, 당시 새로 들어온 피아니스트 단테 아미카 렐리 Dante Amicarelli를 위해서였다. 피아졸라는 “만약 그가 처음부터 제대로 연주해낸다면 내 정맥을 잘라버리겠다”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아미칼렐리는 “멋진 편곡”이라고 말하고 곧장 연주해냈다. 이후 이 오프닝 카덴자는 피아졸라의 피아니스트 오디션 곡으로 쓰였다. 피아졸라의 마지막 피아니스트 파블로 지글러 Pablo Ziegler는 재즈 느낌으로 즉흥연주를 하기도 했다.

한편 이 녹음에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안토니오 아그리 Antonio Agri다. 그는 피아졸라와 거의 20년을 함께 한, 피아졸라의 대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 스타일은 앞서 소개한 바르다로와는 정반대다. 그는 현에 힘을 많이 주지 않고 부드럽게 연주를 한다. 두 바이올린의 차이를 느끼며 들어보시길.



(3) Anibal Troilo - Adios Nonino (1966)

https://youtu.be/21J0TrXIk28

Anibal Troilo Orquesta - Un Tango para el Recuerdo (1666)


아디오스 노니노는 클래식 곡으로 인식될 정도로, 클래식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적이 많다. 그에 비해 탱고 오케스트라 연주 버전은 많지 않다. 탱고 전통주의자들 사이 피아졸라의 위상을 생각하자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탱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오케스트라, 트로일로 오케스트라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모두가 사랑하는 마에스트로, 아니발 트로일로 Anibal Troilo. 그의 반도네온 연주는 너무나 경이롭다. 음 하나하나를 어쩜 이렇게 청아하게 연주하는지. 그가 왼손으로 하는 솔로 연주와 비브라토, 클라이 막스에서 박자를 밀고 당기는 대담함. 모든 게 전체 오케스트라와 너무나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피아졸라가 처음 들어간 오케스트라가 트로일로의 오케스트라이며, 그 둘은 평생 친구로 지냈다. 비록 트로일로는 피아졸라의 아방가르드 음악 세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둘의 우정은 음악 취향과 상관없이 계속되었다. 같이 듀오곡을 연주하기도 했고, 피아졸라는 트로일로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위해 세 개의 헌정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런 트로일로가 연주한 아디오스 노니노라 더 아름답게 들리는 건지.



(4) Carel Kraayenhof - Adios Nonino (2002)

Wedding in 2002 between Prins Willem Alexander and Maxima Zorreguieta 02-02-2002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디오스 노니노를 검색하면 항상 상단에 뜨는 영상이 있다. 바로 네덜란드 왕자 빌럼-알렉산드르 Willem-Alexander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막시마 소레기에타 Máxima Zorreguieta의 결혼식 영상. 반도네온의 현란한 솔로와 하프, 마림바, 합창단, 현악기... 홀리함마저 느껴진다. 막시마는 이 아디오스 노니노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잔잔한 미소를 짓는데, 그 모습은 과연 이 영상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결혼식에 우는 신부야 한 둘이 아니지만, 막시마의 울음은 더욱더 드라마틱하다. 아르헨티나 여인이 결혼식에 본국의 노래를 듣는 것인 데다가, 이 결혼식에 그녀의 가족이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호르헤 소레기에타,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비델라 밑에서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게다가 그녀는 호르헤 소레기에타의 외도로 태어난 딸이기도 했고. 빌럼-알렉산드르와 막시마는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했지만 그녀의 결혼식에 부모가 참석할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에 관한 노래라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나.

이 곡을 연주한 카렐 크라옌호프 Carel Kraayenhof는 네덜란드 출신의 반도네오니스트이다. 유럽의 반도네오니스트 중엔 아코디언에서 반도네온으로 넘어간 경우가 많은데, 카렐은 특이하게도 콘체르티나라는 앙증맞은 악기를 연주했었다. 1980년대 후반 섹스테토 칸젱게 Sexteto Canyengue라는 그룹을 결성해 활동을 하다가 2002년 이 로열웨딩 공연으로 대스타가 되었다. 가뜩이나 로열웨딩이라 네덜란드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막시마의 눈물까지 더해져 엄청난 감동을 선사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네덜란드에서 반도네온을 설명할 때 "막시마, 웨딩 세리머니, 크라이" 하면 "아, 그 악기!" 하고 알아듣는다. 카렐의 공연을 가도 마찬가지인데, 대체로 그를 소개할 땐 이 로열웨딩을 언급하고 넘어간다. 그 역시 아디오스 노니노를 엔딩곡으로 연주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주고. 말하자면 아디오스 노니노의 사나이인 셈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연주이니, 20년째 사랑을 받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디오스노니노가 작곡된지 60년이 넘도록 계속 사랑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덧1.

피아졸라가 처음 작곡한 노니노도 같이 소개한다. 주요 테마가 거의 같은데, 아디오스노니노는 느리고 빠른 파트가 번갈아가며 나오는 반면 노니노는 내내 빠르다. 덕분에 느린 파트에서 나오는 솔로가 없음..

https://youtu.be/_FN93nA4M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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