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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나 Nov 28. 2017

한국에서의 207일

디지털노마드, 반반 생활살이의 시작

차례

프롤로그

미정이와의 약속

이모는 몰랐어

No의 연속

프로젝트

마이너스 인생

반반 생활살이

에필로그




프롤로그


아침에 눈을 뜨고 생각 없이 휴대폰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를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여행 갈 곳을 알아본 것도 아니었다. 내가 뒤적거린 것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편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모르겠다. 프랑크 프루트에 도착한 이후 생각지 못했던 많은 고민들이 부딪혔다. 일어나자마자 항공권을 찾는 내 모습을 보면 이미 마음은 정해졌던 것일까. 참 미련하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솔직했다면 지금의 여정이 이러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지. 돈도 버리고 시간도 버리고 스트레스만 쌓였다.


어디에서나 외부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존재했다. 한국에서는 일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신경 쓸 것이 많고, 해외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우니 그것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무언가를 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고, 그래서 내가 원했던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빈번했다.


여행이 오래 지속되면서 심플했던 생각들이 복잡해짐을 느꼈다. 다시 시작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가자, 한국으로.


2017년 5월 7일 프랑크푸르트 숙소를 떠났다.





미정이와의 약속


‘언니, 나 둘째 임신했어.’


2016년 12월, 치앙마이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생각지 못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에게 두 번째 조카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1년 정도 여행을 하기로 했던, 혹은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지 정하지 않았던 나의 일정은 동생의 출산일 전으로 귀국일자를 맞췄다.


한국에 돌아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도 아니고 나의 계획 때문도 아닌 동생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내가 동생에게 미안한 것이 하나 있다면, 윤이를 출산했을 때 몸조리를 도와주지도 못하고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도 못한 거였다.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출산 때도 수유실에 들린 것이 다였다. 소중한 사람들이 중요한 걸 알면서도 우선순위에 두질 않았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래서 동생의 출산 소식은 기쁘기도 하고 지난날의 후회를 조금은 만회할 기회였던 것이다. 모든 일을 제쳐서라도 몸조리를 도와주고 싶었고, 힘든 걸 나누고 싶었다. 


올해 8월, 윤이와 린이가 만났다.


회사를 나와 독립하면서 예상치 못한 행복은 가족과의 시간이었다. 


‘내가 회사를 다녔다면 지금처럼 살 수 있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도전을 하는 것은 원했던 일이기도 하고 상상하기도 했지만 가족과의 시간은 생각지도 못했던 거였다. 아빠와는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알지 못했던 동생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조카들의 존재는 한국에 꼭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난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꼭 돈을 벌어야겠노라고.


린이의 100일도 함께 준비하고 축하해줄 수 있었다.
함께 있으니 좋다고 하는 아빠이지만 해외간다는 이야기만 꺼내면 걱정이 태산이다.
가장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미정이,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이모는 몰랐어


비혼 주의에, 결혼을 한다 해도 딩크족으로 살 생각이었던 나에게 조카의 존재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체감이 되지 않았던 엄마의 애환이라던지, 임산부에게 고려되지 않은 시설이나 환경이라던지, 가슴이 벅차거나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가지게 해준다던지와 같이 새로운 경험과 시야,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를 딱히 좋아하지 않던 내가 윤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고 오두방정을 떠는 모습도 달라진 것 중의 하나였다. 


나도 어엿한 조카바보 대열에 서게 된 것이다.


동생을 도와주는 계획은 이러했다.

출산 전에는 집안일과 첫째 조카를 돌봐주자. 

출산 후에는 몸조리를 도와주면서 집안일과 조카들을 돌봐주자.

짬을 만들어 최소 4시간은 일을 하자. 


지금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온다. 왜냐하면 이 계획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힘든 계획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지난 2년 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울지 않았는데 지난 3개월 사이에 최소 3번 이상은 울었을 거란 거다. 


이모의 입장에서 애들을 돌볼 때와 집안에서 리더가 되어 모든 일을 도맡았을 때의 세상은 전혀 달랐다.



1) 아이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존재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은가? 나도 당연히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이게 나의 상황이 되면 멘탈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달라진다. 이모로 있을 때의 나는 윤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떼를 쓰거나, 울더라도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종이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인형극을 하기도 하고, 오늘은 뭐하고 놀까 내일은 뭐하고 놀까는 일상의 미션이였다.


그런데 직접 키우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상황들이 빚어진다. 요리를 해야 하는데 놀아달라고 하거나, 내 말을 이해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딴짓을 하거나, 몸을 때리거나, 이유 모를 짜증을 내면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게다가 제일 어려웠던 것은 ‘밥을 먹이는 것, 잠을 재우는 것, 아픈 것’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준비하고 먹이려고 해도 먹지를 않는다. 이런 순간에는 많은 감정들이 오가는데 기껏 차린 밥을 안 먹으니 화가 나기도 하고, 며칠째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니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말 안 듣는 조카가 밉기도 하다. 어르고 달래고 화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밥을 먹지 않으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3살 윤이와 1개월이 안된 린이
등원하는 윤이, 엄마와 함께해서 즐거운가보다.


동생이 옆에서 재우는 모습을 봤을 때만 해도 쉽게 자던 윤이가 나랑 잘 때면 2시간을 보챈다. 매일 1시간 이상 동화책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목이 아프다. 게다가 하루 종일 지친 일상을 보냈는데 잠과의 전쟁을 할 때면 그냥 자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제일 겁먹었던 것은 생각보다 아이가 자주 아프다는 거였다. 열이 조금만 올라가도 걱정이 되고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도 없고… 한 달 사이에 응급실을 2번이나 갔었다. 내가 유난을 떨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2) 이놈의 집안일은 티도 안 난다.


자취생활을 10년 넘게 했는데 집안일이 이렇게 많은 줄은 정말 몰랐었다. 네 명의 빨래를 한다는 것은 하루에 한 번도 모자라 가끔은 두 번 빨래를 돌리기도 한다. 게다가 아이가 있는 집이라 집에서 자주 요리를 해 먹어야 했고, 설거지거리는 산처럼 쌓였다. 하루에 한 번은 집안 청소를 해야 하고 이틀에 한 번꼴은 좀 더 세심하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대청소를 했다. 


둘째 조카가 집에 들어오면서 집안 청소에 더 심혈을 기울였었다.


낮에 아무리 청소를 해도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윤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집안은 금세 엉망이 된다.


한 번은 대청소를 한 날이었는데 저녁밥을 먹고 윤이랑 놀아주다 보니 시간은 많이 흐르고 집안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치울 겨룰이 없어서 자기 전에 청소해야지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날따라 제부가 일찍 퇴근을 했다. 분명 오늘 하루 난 열심히 일했지만 제부가 보이는 집안꼴은 아무것도 안 한, 그것도 너무 엉망진창으로 보였을까 싶어 뜨끔했던 거다. 그렇다고 맥락 없이 저 오늘 열심히 청소도 하고 요리도 했어요라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아니, 집안이 왜 이 모양 이 꼴이야! 대체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라고 하던 어느 TV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집안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한다면 노동이 힘들다기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반복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가장 쉬운 일이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걸 계획해야 하거나, 눈에 보이는 일을 준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일을 해야 하거나, 특히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칭찬받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기에 쉽게 지쳤다. 그렇다고 매번 옆에서 ‘오우~ 잘하는데’라는 독려를 받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일은 끝도 없거니와 그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껀덕지조차 없다는 거다.


매일 뭐해먹나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임산부와 아이에게 맞춘 요리를 한다는게 쉽지 않았다.


그렇잖은가. 일이라는 건 하다 보면 성과도 내고 힘들어 보이면 고생 많다는 이야기도 듣고 칭찬도 듣는다. 나조차도 집에 들어오면서 ‘집 청소 잘했네!’라고 하지 않는다. 노동의 대가가 자기만족밖에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 



3) 리더의 고충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동생과도 2-3번 싸우기도 하고 우울한 부딪힘 들도 있었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 입장이고 동생의 입장에서는 동생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던 상황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동생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 정도로 도와줬으면 나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대체 내가 어디까지 도와줘야 하는 걸까’라는 심정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힘들었을 때의 최고점이 아마도 미정이의 역할을 내가 온전히 하게 되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 고점에 가서야 엄마들은 항상 이런 심리상태로 살아가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도 사랑하는 자식이 있어도 매일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해내가고 그것이 눈에 띄는 일들이 아닐 때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이 올 것이다. 


여느 날과 같이 페북으로 눈팅을 하던 나는 아래와 같은 글을 보게 된다. 


 https://www.facebook.com/kigepe/photos/pcb.1453994344682284/1455811384500580


본문 글을 응용하면,

내가 힘들었던 시기 : 가정 관리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

내가 괜찮았던 시기 : 실무 담당자가 되었을 때 (그리고 난 지금 실무 담당자가 되어 스트레스가 상당히 사라진 상태)


그렇다. 가정관리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보이지 않는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그 끝이 없는 일을 매일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깥일보다 집안일이 힘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쉼’이다. 쉰다는 것이 몸을 쉰다고 해서만 쉬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아무 잡념이 들지 않을 때가 비로소 쉬게 되는 건데 집안일은 그게 되질 않았다. 물론 직장을 다닐 때도 비슷한 상황들이 발생하지만 아이를 가진 책임의 무게감은 정말 많이 달랐다. 


엄마가 된 미정이는 내가 알던 동생이었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동생이기도 했다.


특히나 더 힘들었던 이유는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면서 일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한 번은 기분이 좋지 않아 운전을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봤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한 이유가 뭔지 나랑 대화를 하다 보니 결국 지난 3개월 동안 힘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일’할 시간을 만들어내지 못한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을 해야 하는데 조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거나 집안일이 생길 때면 나는 어김없이 일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몇 개월 동안 가정일을 해봤더니 경험치가 꽤나 쌓였다. 요령 없이 조카와 놀아주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요령을 가지고 첫째 조카 윤이와 둘째 조카 린이와 함께 오순도순 지내고 있다. 윤이와 격렬하게 놀고 싶을 때면 키즈카페로 달려가는 노하우도 생기고 말이다.


이른 오전에 눈을 뜨니 이러고 있는 사랑스런 조카들


만약 동생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집안일을 하는,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심정을 평생 체감하지 못했을 거다. 


게다가 조카바보라는 수식어가 얼마나 제 3자의 입장에서의 바보였는지도 알게 되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그들의 일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No의 연속


‘있잖아.. 진짜 행복하네’


근래에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1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그런 순간들이 잦은 것 같다. 삶에 대한 확고한 믿음들이 생긴 것은 극단치의 행복이 아니라 잦은 행복들 덕분이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다 보면 무슨 자기 최면에라도 걸린 것 마냥 이상할 때도 있지만, 그래 정말 이상하다. 가끔은 정말 행복해서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기도 한다. 엉덩이 밑이 들썩들썩하는 느낌이랄까.


60세가 넘어서는 인생을 사치스럽게 살자고 결심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것은 최고의 사치다. - 윤여정 배우


기사의 한 자락을 보면서 나는 웃음이 났다. 30대에 굉장히 사치스러운 삶을 결심한 거였구나?라고 말이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놀고, 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사치다.


그러나 2년이 넘어가는데도 이렇다 할 수익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고민 중에서 ‘돈을 버는 것’은 가장 쉬운 고민이다. 돈이야 이렇게 번들 저렇게 번들 벌자고 마음을 먹으면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고민하고 번뇌하는 것은 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을 가기 위해 ‘타협하는 것’을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주변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모아둔 돈 있지, 짊어지어야 할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 부모님이 잔소리하는 것도 아니지, 남자친구 있는 것도 아니지, 돈 쓸데라곤 내 몸에 들어갈 음식값 정 도려나. 그렇다 보니 뭐가 잘 안돼도 에이 뭐 다시 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계속 게을러져 가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게으름이 좋아서 어떻게 하면 더 게으르게 오래 살 수 있나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 성공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달까. 물론 이 게으름이나 치열함에 대한 상대성은 있지만 나로서는 달라진 가치관 중의 하나였다. 


결국 어떤 삶에 대한 욕심이 갈수록 커진다. 마음대로 살고 싶고 소위 말하는 돈 많은 백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연구 중이랄까. 어떻게 하면 앉아서도 돈을 벌고 편견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한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번 한국에서의 생활에서 일로써 힘들었던 것은 No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분명했기에 하고 싶었던 것이 있더라도 우선순위에서 다 밀려났다. 환경적으로도 둘째 조카가 신생아이기에 내 이동에는 제한이 걸려있었다. 


만나자는 권유에는 만날 수 없음을 전해야 했고, 가고 싶은 컨퍼런스는 마음으로만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관계들은 이전보다 더 좁아졌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며칠 고민했던 일이 있었는데 출판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처음에는 신났던 것 같다. 글을 꾸준히 쓰니 이런 제안도 받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우쭐했다가 하루가 지나서 제정신이 돌아왔다. 당장 출판을 하면 기회가 될 것 같지만 출판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출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가 없었고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외주 일도 그랬다. 사람이 좋든 프로젝트가 재미있든 둘 중에 하나라도 만족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모든 일을 내가 해보겠소! 라며 우후죽순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일할 거면 직장에 들어가 즐겁게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거절을 하면 몇 가지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데,

솔직하길 바라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언짢아함

내가 너에게 일을 줬는데 거절을 해? 라며 관계가 틀어지기도 함

당연하게 도와줘야 할 것 같았는데 안 도와주니 서운해함


거절을 했을 때의 반응은 예상 가능 범위 내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걸 미리 인지하고 말을 꺼내면 더 솔직해질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상대방이 거절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부탁을 하거나 일을 맡기는데 그건 노마드씨 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Yes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하기 싫은 것 같거나 미심쩍은데 Yes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다시 물어본다. 솔직하게 말한 거 맞냐고 말이다.


오랜만에 회의를 할때면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노마드씨


이번에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이유도 이전보다 더 솔직해져야 하는 상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노마드씨 내부에서도 ‘솔직하게’라는 것이 많이 언급되었다. 하기 싫은걸 억지로 하지 말고, 아닌 것 같은 데 가지 말고, 미심쩍은데 넘어가지 말고, 불편한데 편한 척 말고와 같이 부정적 언사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자기 ‘희생’이 발생하지 않으니 말이다. 


거절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왜> 거절해야만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프로젝트

* 2017년 5~11월 실행한 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기록본

* 외주 및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는 생략


1) 끄적끄적, 전 Spark Quote (실행 중)

타겟층 분석 후 1.1 버전 업데이트 확정

서비스 분석 후 ‘끄적끄적’으로 리브랜딩

1.1 버전 업데이트 준비 중 대열님과 이별

1.1 버전 업데이트 중단

iOS 개발자를 구했으나 찾지 못함

루시에게 프로젝트 합류 제안 후 다시 실행

매출 : 6/1 오픈, $53.63


2) Spark Screenshot (중단)

경쟁 서비스와 차별점이 없어 피벗 논의

개발 중 온도차가 발생하여 종서님과 이별

차별화 전략을 세우지 못해 서비스 홀딩 결정


3) 노마드씨 에이전시 (홀딩)

리모트 워크 에이전시 제안 (2년 전 아이디어)

한 달 동안 정기적 회의를 진행했으나 실행 온도차가 있어 홀딩

내부 리모트 워크 환경 및 시스템 정착 후 향후 실행 예정


4) 이밍 (운영만 대응)

이민법이 바뀔 때 간간히 이메일로 문의 들어옴

뉴질랜드 점수표가 달라져 1.0.8 버전 업데이트

BM 피벗을 결정하고 설계

프로젝트 병행 건수가 줄어들 경우 실행 재고


5) 어도비XD 온라인 강의 (실행 중)

블로터 유데미 강의로 어도비XD 제안 들어옴

루시 노마드씨 합류 이후에 팀 프로젝트로 전환

블로터 제안을 거절하고 무료 강의로 만들기로 내부 확정


6) 노마드씨 홈페이지 리뉴얼 (완료)

올해 초 팀의 성향이 달라져 리뉴얼을 준비했으나 무기한 홀딩

에이전시를 준비하면서 내용이 중첩되는 것이 발생하여 루시가 리뉴얼 제안

한 달 정도 역할 분담 후 콘텐츠 준비후에 해커톤으로 리뉴얼 실행

서비스 메뉴의 콘텐츠는 향후에 업데이트 예정


7) 노마드씨 리모트 워크 환경 개선 (완료)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없애기 위한 방안 제안

리모트 워크 시 에버노트의 단점 발견

프로젝트 태스크 관리를 위한 툴 모니터링

분더리스트 도입 후 가이드라인 제안


8) 노마드씨 원정대 1기 (실행 중)

혼자서 떠나려던 해외여행을 함께 가기로 함

멤버 모집 후 온라인 미팅을 통해 최종 멤버 확정

루시 합류하여 6개월 동안 여정 동행하기로 함

한 달 동안 외주 업무를 찾았으나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함

공동 프로젝트 수익창출에 집중하기로 함

촬영 컨셉 및 포맷 연구 및 개발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 찾아 루시에게 제안

공동 프로젝트 최종 확정 : 백수언니 촬영, 온오프라인 강의, 한달살이 콘텐츠 집필


10) 타임머신 <꿈> 2017 or 2018 (실행 중)

6개월 동안 독려 메일을 통해 후원자들의 꿈과 버킷리스트 내용 받음

타임머신 <꿈> 2017 PDF 책 편집 완료

프로젝트를 매년 실행하기로 확정

프로젝트에 루시 합류

타임머신 <꿈> 2018 텀블벅/인디고고 펀딩 준비


실행한 프로젝트를 보면 개인 프로젝트는 거의 실행을 하지 못하고 팀 프로젝트에 집중되어 있다. 이번에 정한 규칙이 있다면 해외에서는 일에 집중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해외에서 벌린 일들을 수습하면서 일을 하려고 한다. 전에는 가족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일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라 양쪽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은근 스트레스였는데 둘 다 중요하다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을 정해야 실행이 심플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의지와는 별개로 어쩔 수 없으면 어쩔 수가 없게 되는 거다. 해외로 떠나게 된 이유도 내가 선택한 우선순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외부환경을 통해 변화를 꾀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마이너스 인생

연 목표 매출 : 쓴 만큼 벌어서 또이또이를 만드는 것


매출만 놓고 보면 올해도 실패했다. 번 돈 보다 쓴 돈이 많으니 대충 눈으로 흘겨봐도 실패다. 게다가 올해는 1,200만원짜리 변액연금보험을 깨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내년에도 목표 매출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묶어둔 통장 중 하나가 깨질지도 모르겠다.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아직까지는 버틸만하다. 이 아직까지가 언제까지 갈런지 나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2-3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안에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외주를 끼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돈 얘기가 나온 김에 오랜만에 돈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돈을 어떻게 벌고 있어요?’라는 질문을 꽤나 받는 편인데, 참으로 원초적인 질문이면서도 무례한 질문이기도 하다. (웃음) 초기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을 때는 되려 받지 않았던 질문인데, 모호한 정체성을 내비치다 보니 오히려 돈에 대한 질문을 더 받는달까. 


질문에 대한 답은 내 통장에 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야금야금 쓰고 있는 중인데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나에게 투자금을 쓰고 있는 셈이다. 노마드씨가 초기 만들어질 때 투자금이 있었음에도 웬만하면 인력비로는 비용으로 쓰지 말자라고 했었다. 최대한 코파운더로 구성해서 서비스를 테스트해야 한다고 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돈을 어떻게 버나요?


잠깐 다른 이야기로 빠지자면 디지털 노마드는 직업이 아니다. 그렇기에 돈을 어떻게 버냐라는 질문에 앞서 자신이 어떤 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선택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을 왜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쉽게 얘기하면 ‘재택근무로 어떻게 돈을 버나요?’라는 질문을 했다면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답이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내가 일할 공간이나, 시간에 제약 없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길 바란다면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돈을 벌면 된다.


첫 번째 방법은 유연하게 출퇴근이 가능하거나 리모트 워크가 가능한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다. 국내에는 기회가 적긴 하지만 리모트 워크로 구인을 하는 경우도 있고 영어를 잘한다면 해외에는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다. 


두 번째 방법은 프리랜서로 독립하면 된다. 몇 개월 동안 상주하다가 몇 개월은 쉬어도 되고, 요즘에는 리모트 워크로 일을 맡기는 일도 많아서 취업하는 것보다는 더 기회가 열려있다. 


세 번째 방법은 사업을 하는 거다. 가장 돈 벌기 어려우면서 가장 자신이 원하는 데로 일할 수 있다.


결국 어떤 방법으로 하든 간에 ‘어떤 업으로’ 돈을 벌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역량에 따라 그 기회가 넓어질 수도 있고 역량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어떻게 실행하냐에 따라서 돈을 벌 수도 있다. 물론 마이너스를 달리고 있는 나에게 조언을 얻는 것보다 돈을 벌고 있는 이에게 조언을 받는 것이 더 정신건강에 낫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사업이었다.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가장 가까이에는 유튜브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이들이 그러한 수익구조이다. 인력비와 수익이 1:1로 만들어지는 수익구조를 벗어나 돈 버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독립을 한 후에는 온라인 서비스, 출판(인세), 재테크를 통해 수익구조를 만들려고 했고, 최근에는 콘텐츠도 항목에 추가를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딱히 우울한 미래도 아닌 것은 통장은 마이너스이지만 매출은 2015년 기준으로 계속 성장 중이다. 이 썰은 다음에 풀어보기로 한다.





반반 생활살이

반반 생활살이 : 6개월은 한국에서, 6개월은 해외에서 살기


작년에는 막연히 세계 여행을 결심했고 그때의 목표는 지금보다 불확실했다.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고 싶었고, 다양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싶었고, 스스로에게 도전을 주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2016-2017 여정을 통해서 발견한 것

해외에서의 24시간은 오롯이 내 것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생활력이 높아짐

익숙한 일상 속에서 미션들이 발생함

생활 속에서 영어를 쓰는 데에 거부감이 낮아짐

동남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시각이 달라짐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부담감이 사라짐 

바쁘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남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됨

해외여행도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짐

한국에서의 정보들이 새롭게 보임


여행을 하면서 3-4개월쯤 지났을 때 아름다운 장면들이 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흥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처음의 놀라움만큼이나 새롭지 않고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륙을 넘어갈 때 새로운 긴장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지나니 다시 무덤덤해졌다. 오히려 한국에 가면 실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익숙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생각한 것이 반반 생활살이었다. 익숙함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발란스를 맞추는 패턴이랄까.


해외의 도시 생활

새로운 공간과 사람, 시간이 달리쓸 수 있는 외부 환경 

해외에 나왔을 때는 일에 집중하는 기간

장보는 것조차도 신선하기에 일상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음

익숙해질 때쯤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도 새롭게 보임


한국에서의 생활

익숙해져서 몰랐던 소중한 것들이 더 소중해짐

마음과 몸의 휴식을 취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냄

해외에서 했던 일들을 수습하며 프로젝트들을 완성하는 데에 목표를 둠

익숙해질 때쯤 여행을 다시 시작함


그리고 12월 1일, 치앙마이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작년에 호주와 유럽을 돌면서 생각한 것은 수중에 돈이 있어도 안정적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물가가 높은 동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여행으로는 좋았으나 일을 하는 데에는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었고 안정적 수익을 만들기 전까지는 동남아에서 생활살이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에필로그


10월 10일부터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지웠다 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오늘은 적어두었던 프롤로그를 지우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지막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서 말이다.


떠날 날을 기다리며 지난 며칠은 설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왜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가족과 떨어지기 싫은 마음에서였고, 익숙함을 벗어나기 싫은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 지금 설레어?’


아주 잠깐 멈칫했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감정선들이 부딪힌다. 아마도 이 감정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인천공항에서 첫 비행기를 탈 때면 그 감정이 더 뚜렷해질 것이다. 


두려운 감정 51%


설레지 않은 것은 아니나 두려운 감정이 항상 앞섰다. 내가 선택한 길임에도 어김없이 두려움이 앞선다. 모르는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왜 이런 길을 선택한 걸까. 가고 싶은 길이 대체 어떤 길일까. 자잘하게는 내 안전까지도 의심하게 되는 시간을 겪게 된다. 이번에는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어김없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미묘한 감정을 안고 한국에서의 207일과 이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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