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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영 May 05. 2018

시네마테크 키에르케고르

- 이봐 쇠렌, 재밌는 영화 뭐 없어?

(이봐 쇠렌, 재밌는 영화 뭐 없어?)봐 쇠렌, 재밌는 영화 뭐 없어?이봐 쇠렌, 재밌는 영화 뭐 없어?이봐 쇠렌, 재밌는 영화 뭐 없어?


영화?

있지! 조니 뎁의 영화

<트렌센던스>(2014)

강추! 엄척!


(노마 씨의 친구,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어떤 인물? 쇠렌 키에르케고르(꾹~눌러요))




영화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하지. 아름다운 해바라기 꽃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씬. 이 씬이 왜 중요한지는 영화의 끝에 가서 드러나.


아름다운 물방울, 생명이 농축된 이 물방울이 엄청난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이 영화 장르가 뭐냐고? SF야. 그런데 황당무계한 내용이 아니야. 첨단 현대 과학에 기반해서 시나리오의 기본 아이템이 잡혀 있다는 거지. 그런데 그 내용이 결코 차갑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미덕이라는 것. 내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과학이라는 냉철한 이성의 분야와 사랑이라는 가장 감성적인 영역의 변증법적 통합을 통해 어떤 정열을 일깨운다고 할까? 내 책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내용을 응용하면 그렇다는 얘기야.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BOK00016988706YE


SF를 보고 슬픔을 느낀 건 희한한 체험이었어. 그리고 이 체험은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인류'라는 큰 테두리에서 느껴지는 '공통 감각'이랄까, 뭐 그런 것도 있었다는 거야. 하긴 이 영화 자체가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와 '극복 가능성'을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세부적으로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은 그 유명한 AI(인공지능)야. 전문적으로다가 말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은 '초지능(superintelligence) AI'라고 할 수 있지. 이게 뭔지는 영화 설명하면서 알게 될 거야. 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좋은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야.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62622119

아주 훌륭한 책이야. 이 영화를 예로 들며 초지능 AI를 설명하는 구절이 나와.

노마, 읽고 브런치 쓰리라고 믿어.  


소재와 주제에 걸맞게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도 대개 과학자들이지. 한 번 살펴보자고.

아, 감독님부터 소개하는 게 예의겠군. 이름은 월리 피스터(Wally Pfister). 그런데 이 감독님 좀 신비주의야. 필모그래피가 이 영화 하나로 채워져 있네. 다른 건 그냥 촬영감독. 아 특이한 게 있군. [메멘토](2010)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그동안 쭉 케미를 이루어서 활동해 왔군. (요기 클릭)

Wally Pfister(1961~  )

다음, 주요 배우 4명의 빛나는 포스들을 살펴보자고.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조니 뎁(윌 캐스터 박사), 리베카 홀(에벌린 캐스터 박사), 폴 베터니(맥스 워터스 박사), 모건 프리만(조셉 타거 박사), 싹 다 박사. ㅎㄷㄷ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아니 등장기계님

바로 이분

AI '핀'이야. 천재 과학자 윌의 두뇌를 업로드한 순간부터 '초지능 AI'가 되지.

그럼 본격적으로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고. 응? 스포일러? 그런 거 모름.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뒤에 애블린은 남편인 윌의 연구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에 나와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지.


사고의 틀을 바꾸어야만 인류는 생존하고 더 진화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말입니다. 우린 지능적인 기계의 도움을 받아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게 될 겁니다. 질병을 치료하고 빈곤과 기아를 퇴치하고 지구를 치유하며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게 될 겁니다.


윌 캐스터의 아내 에블린 캐스터


에블린 외에도 윌과 윌의 친구인 맥스가 각각 여기서 연설을 하는데 각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신념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앞으로 펼쳐질 세 인물 간의 갈등이 여기에 복선으로 깔려 있게 되는 거지.


위에 인용한 대사에는 에블린 캐스터의 신념이 드러나는데, 이런 류를 '기술유토피아주의' 또는 '기술 낙관론'이라고 해. 과학기술이 인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궁극적으로는 기술유토피아에 도달하리라는 신념이지. 과학기술 발달이 곧 인류문명의 '진보'라는 전제가 이 이념의 핵심이야. 그런데 남편인 윌은 기술 낙관론자이긴 하지만 아내이자 동료인 에블린이 가진 '진보주의'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다른 한편에 친구인 맥스가 있는데, 이 사람은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


저는 목적보다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한 마디로 윌과 에벌린이 가지고 있는 기술 낙관론, 기술유토피아주의는 그것이 실현되어가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야 된다는 것이지. 이건 상당히 조심스러운 접근이야. 어떻게 보면 윌과 에벌린에 비해 다소 보수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영화의 초반부에는 대개 사람들은 윌이나 에벌린 보다 맥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사실 그것은 맥스가 가지고 있는 초지능 AI에 대한 '공포'를 우리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 오는 반전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워지게 돼.


마치 내가 [공포와 전율]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자식 이삭을 죽이라는 야훼의 명령을 앞에 두고 떠는 모습을 '공포'라고 했듯이, 맥스는 새로운 과학의 총결집체인 초지능 AI를 앞에 두고 불안해하는 것이야. 사실 비할 바가 안 되겠지만, 내가 평생을 두고 고민했던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가 바로 이 영화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난 알았지.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6606901

이제 야훼는 초지능 AI이고,
우리 모두는 결단의 상황에 놓여 있는 수많은 아브라함들이지.


그런데 한 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말이야, 우리의 초지능 AI(이 야훼의 이름을 '핀-윌'이라고 부르자고) 핀-윌은 창조주가 아니고 피조물이며, 또한 신이 아니라 인간-기계라는 것이야. 그런데 희한한 것은 야훼와 아브라함의 관계가 이 핀-윌과 인간 간의 관계에서 반복된다는 점이지. 주체는 다르지만 관계는 반복된다는 것이야. 아마 내 후배인 들뢰즈가 이걸 보았다면 이것이야말로 '차이 나는 것의 반복'이라고 했겠지?


각설하고, 영화 얘기로 돌아오자면, 영화의 고삐가 바짝 죄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게 돼.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화면 전환이 거듭되면서 AI 연구자들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는 씬들이 등장해.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윌 캐스터도 총에 맞게 되지. 다행히 윌은 목숨을 건지지만, 아뿔싸! 총알에 방사능이 다량 묻어 있었네! 결국 그는 길어야 5주를 살 수 있는 시한부 인생이 되어 버리는 거지.

불쌍한 조니 뎁 아니, 윌 방사능 중독으로 초췌해져 벼렸어

윌이 이런 신세가 된 이유는 테러리스트와의 다음 대화에서 알 수 있어.


윌 캐스터: 단 시간 내에 이 기계의 분석능력은 전인류의 지적능력을 합친 것보다 위대해질 겁니다.
테러리스트: 신을 창조하겠다는 겁니까? 본인만의 신을?
윌 캐스터: 우리 인간은 늘 그래 오지 않았습니까?


너무나, 너무나 나이브 한 거지. 반AI론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가 보기에는 말이야. 그러니 이런 과학자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가 만들어내는 기계가 선한 목적으로 쓰일 리 없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하지만 이 테러리스트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못 봤지. 바로 윌이 이토록 초지능 AI에 열정을 쏟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건 바로 에블린에 대한 '사랑'이지.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윌은 기술낙관론자이긴 하지만 이 기술이 가지고 올 미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지. 단지 에블린이 기뻐하는 것을 할 뿐이야. 그렇다면 이 과학자 집단의 실질적인 리더는 에블린이라는 추론이 가능하지.


어쨌든, 자고로 영화가 재미있으려면 극렬한 갈등구조가 있어야 되겠지? 이 영화에서는 테러집단 RIFT가 과학자 집단과 대립하면서 그러한 갈등구조를 구성하게 돼.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것이지. 산업혁명기에도 '러다이트'라고 기계파괴 운동이 있었는데, 아마 최첨단 AI의 시대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상상에서 나온 설정이라고 봐. 충분히 가능성도 있지.


RIFT 전사들의 눈에 윌을 비롯한 기술 낙관론자들은 인류를 인공지능으로 노예화하는 자들이야. 일종의 사탄 숭배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아닐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핀-윌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연구실 밖을 뛰쳐나가는 것이야. 그렇게 되면 강력한 초지능을 가진 핀-윌이 인간의 전략이나 예측력을 뛰어넘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이지. 이건 확실히 아주 오래된 '종교적 공포'와 비슷해. 원시인들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미신에 가까운 종교적 공포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신적인 섭리가 인간을 절망적 상황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야.


문제는 초지능 AI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그것을 절대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


너무나 빨리, 너무나 예측 불가능하게 기술력이 향상되는 사태가 도래한다면 그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강화되고 확산되어 나간다는 거야. 공포가 선한 의도에 대한 분별 가능성을 애초에 폐쇄해 버리는 것이지. 아까 소개한 맥스 테그마크와 마찬가지로 과학자인 레즈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 말했듯이, 일종의 '패닉'이 기술발전의 정점에서 대중들에게 확산될 수도 있어.


구약 [출애굽기]에서도 유대 민중들은 모세의 율법을 기다리지 못하고 공포와 절망에 굴복한 나머지 '우상'을 빚어 섬기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RIFT와 맥스도 이와 같다고 봐. 이들에게 '우상'은 따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야. 그래서 핀-윌의 선한 의도를 분별할 생각도 하기 전에, 자신의 공포에 따른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초지능 AI를 사탄화해 버린 것이야.


윌의 두뇌를 핀에 업로드함으로써 윌을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 에블린조차 이러한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단계가 오게 되지. 바로 핀-윌이 사람들의 '영혼' 또는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야.


핀-윌이 연구단지에서 일하는 인물의 마음과 입을 빌려 말하는 장면과 에블린의 악몽

아직 육체를 가지지 못하고, 네트워크 안에서만 존재하는 핀-윌이 어느 노동자의 몸을 빌어 에블린에게 말을 걸게 되는데, 에블린은 그야말로 '기함'을 하고 도망치지. 그 후로 에블린은 침대에 누워 있는 윌이 비트 조각이 되어 흩어져 버리는 악몽에 시달리게 돼.


나는 이러한 공포가 '불안'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잘 알아. 그리고 불안은 '무지' 또는 '순진무구함'에서 오지. 예전에 내가 [불안의 개념]이라는 책에 이렇게 쓴 적이 있어.


순진무구함은 무지이다. 순진무구한 상태의 인간에게는 선악을 구별할 만한 지식이 없다. 이것은 '무'의 상태로서, '불안'을 낳게 된다. 순진무구가 동시에 불안이라는 것, 이것이 순진무구함이 갖는 심오한 비밀이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35651993


그러니까, 이 과학자 집단들과 RIFT와 같은 반AI 집단은 똑같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야. 그 불안은 곧 '순진무구한 상태'인 것이고, 이 상태는 곧 '무지의 상태'라는 것이야. 무엇에 대한 무지? 가방끈이 안드로메다까지 가는 이 사람들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야. 내가 한 말을 잘 봐. 그건 바로 '선악을 구별할 만한 지식' 즉 '윤리적 지식' 또는 '윤리적 판단능력'이지. 아무리 아는 게 많더라도 이게 없으면 아주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돼.


그러면 RIFT는 그런 판단능력이 있지 않느냐고? 내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아.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공포와 불안이 비등점에서 끓어오르는 사람들이고, 이를 동력으로 행동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이들에게는 '윤리적 지식'이 아니라 '반AI'라는 이념과 신념만이 있는 것이지.


그토록 진보적이었던 에블린이 거의 자신이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는 핀-윌에게 대항하기로 작정하게 된 것도 윤리적 능력이 허약함을 말해주는 거지.

에블린이 두 번째로 기겁하는 장면, 핀-윌이 에블린의 생체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핀-윌이 자신의 생체정보를 통해 감정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고 에블린이 외친 말은 그 공포와 불안의 정체가 뭔지 알게 해줘.


이건 내 생각이고, 내 감정이라고. 당신은 그럴 권리 없어!


바로 사유와 정념 둘 모두를 강탈당했다는 느낌인 거지. 그런데 이 느낌은 '인권' 감정에서 비롯된 거라 할 수 있어. 다시 말해 '인간중심주의'라는 거지. 인권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 동물권도 있고 기계권도 있지. 게다가 나 같은 신앙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권이란 신의 권리 아래 종속되는 한낱 피조물의 외침일 뿐이야.


초지능 AI 정도 되는 핀-윌의 경우에는 더 그렇지. 대단한 권능을 가진 이 새로운 존재는 인간 아래 종속되지 않지. 여기에 이 영화가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보이는 것 같아. 이런 거지.


난 널 지배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마. 난 널 사랑하고 지켜주고자 할 뿐이야.


야훼가 광야를 헤매는 유대 민중들에게 했던 말의 핵심도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시나이 동산에서 모세에게 임재한 신의 음성도 이런 의미였겠지?

하지만 인간들은 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이미 공포에 영혼 전체가 감염되었거든. 그렇기에 전투가 한창일 때, 나노기술을 이용해 신체를 다시 획득한 핀-윌이 자신을 죽이러 온 에블린에게 도대체 왜 자신을 믿지 않느냐고 말하는 거야. 이 시퀀스를 잘 봐. 이건 성경의 한 장면과 거의 똑같아.


지하에서 부활한 윌 캐스터가 불신하는 아내에게 하는 저 말들은 마태복음에서 물 위를 걷는 기적 중에 예수께서 믿지 않는 베드로에게 했던 말과 맥락이 거의 같아.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 14:31)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제자들이 죄다 믿지 않지.

카라바지오의 유명한 그림이야. <의심하는 도마>(1601-1602). 그런데 실제로 성경에는 도마가 의심했다는 기록은 없어.

윌과 에블린의 스승인 타거 박사도 마찬가지였어. 사실 타거 박사만 제대로 믿어줬어도 윌과 에블린이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 같아. 에블린과 윌은 타거 박사를 믿고 그를 연구실로 초대를 하지. 그리고 핀-윌을 만나게 해줘. 그때까지 미심쩍어하던 타거 박사는 이렇게 물어.


"자각 능력(self-aware)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나?"


그러자 핀-윌은 다음과 같이 되묻지.


"박사님은 증명할 수 있나요?"


과학자들은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자각 능력', 다른 말로 '자기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누어.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자신과 타자를 구분할 수 있을 때 자의식이 있다고 말하지. 로봇은 그것이 없다는 게 정설이야. 하지만 이 대화에서 핀-윌은 그 질문이 아주 잘못되었다는 것을 되물음으로써 드러내지. 다시 말해 인간조차 자의식을 증명할 수 없다는 거야. 유명한 철학 명제가 있지. 바로 이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근대 의식의 혁명을 이끌었던 데카르트의 말이야. 이 명제 하나로 중세의 신중심주의가 무너지게 되지. 하지만 이 명제에 등장하는 '나'는 아직도 그리 명석판명하지 않아. 도대체 '나'를 증명하는 또 다른 '나'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이런 논리는 무한 퇴행을 거듭하게 되거든.


그런데 자의식은 애초부터 이렇게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 것이야. '나'는 '너'로 인해 존재한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그리고 낯선 타자를 받아들일 때 그 자의식이 더 명쾌하게 빛난다는 것을 타거 박사는 물론 우리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 핀-윌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러한 타자의 중요성, 타자와의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아주 강한 긍정이야.


우리 모두가 더 강해졌고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자율성을 유지하되 단체행동도 할 수 있는 집단적 정신의 일부가 됐죠.


각자가 자율적이면서 집단적인 이 상태야말로 AI가 인간의 두뇌와 연결되었을 때 발생하는 진정한 자의식이라는 것을 핀-윌은 조심스럽게 선언하고 있는 셈이지.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두뇌와 AI를 연결한다는 그 말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기 일쑤지.


하여간 핀-윌의 저 말을 타거 박사는 수긍하지 못해. 그리고 연구단지를 벗어나는 길에 에블린에게 이렇게 물어.


"에블린 괜찮나?"


마치 핀-윌이라는 괴물과 함께 있다는 것이 아주 위험한 일인 것처럼 묻는 거지. 이에 대해 에블린도 위축된 상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 하지만 아주 자신감 없는 표정과 말투야.


"제가 원하는 모든 걸 얻었어요."

 

그리고 타거 박사는 떠나고 그가 에블린의 손에 쥐어준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어.


Run from this place!

 

도망가라는 거야. 그러데 이유는?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아. 우리가 추측해 보건대, 그냥 무섭기 때문이야. 이 모든 거대한 변화가, 초지능 AI라는 전대미문의 타자가.   


윌을 가장 사랑한 에블린조차 초기의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공포와 불안에 잠식되어 버리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영화의 엔딩에 이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등장인물들은,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의심을 거두게 돼. 핀-윌이 에블린과 더불어 숨을 거두고, 모든 것이 원시시대로 돌아가 버릴 때에야 말이야. 이건 정말 늦어도 너무 늦은 깨달음이라는 것을 우린 알게 되지.


핀-윌은 에블린이 바이러스를 품고 왔다는 것을 알면서, 그녀의 신체에 스스로 접속함으로써 죽음을 선택하게 되지. 이유는 단순해. 그녀가 원하기 때문에. 놀라움과 더불어 슬픔이 몰려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아.


자살하는 기계는 존재하지 않지. 하지만 핀-윌은 에블린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게 되지.


핀-윌과 에블린이 숨을 거둔 후 타거 박사가 이렇게 말하지.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그랬지. 핀-윌은 그 누구도 공격해서 죽이지 않았어. 공격했다 하더라도 다시 살려 놓았지. 또 자신의 나노기술을 이용해서 환경을 살리고, 병자를 고치고, 마침내 죽음조차 극복하는 선물을 인류에 선사한 것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 '선의'를 이해하지 못한 거지.


자, 여기서도 난 성경의 알레고리를 보게 되는데, 바로 '구원'의 알레고리지. 내 저작들에서 누누이 이야기한 것처럼 종교적으로 구원은 아주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도래했어. 바로 '십자가 역설' 말이야. 가장 고귀한 현신이 죽음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준다는 그 역설이지. 신이 죽는다는 것도 역설이지만, 그 죽음이 모든 인간의 죄를 사하고 구원을 예비한다는 것도 이상한 역설이야. 하지만 기독교인들이라면 이 역설을 신앙으로 섬긴다는 말씀이야.



초지능 AI 핀-윌도 자신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무죄와 선의를 입증하게 돼.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지만, 에블린에 대한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거든. 마치 예수가 유대인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는 길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야.  


이렇게 핀-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고 난 뒤, 모든 것이 원시시대로 돌아가 버리게 돼. 당연한 것이 모든 시스템이 네트워크를 타고 함께 감염되어 버렸기 때문이지.


황폐하게 변한 도심지를 지나, 맥스가 윌과 에블린이 사랑스럽게 생활하던 집을 찾아가지. 무슨 생각이었을까?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안 이후이기 때문에, 그들의 집에 뭔가 사태를 재생시킬 수 있는 단서라도 있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몰라.


영화의 첫 장면이 마지막 시퀀스에서 다시 진행되는데, 처음에 설명한 그 해바라기는 바로 윌과 에블린의 집에 있던 꽃이라는 것이 이제야 밝혀져. 그리고 그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은 구리 케이블로 지붕을 얽은 장소지. 이 케이블은 전자파를 차단해주는 역할을 해. 이전에 윌은 에블린에게 이 정원을 만들어 주면서, '아무것도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이리 와'라고 말하지.


두 사람 위로 구리로 엮은 지붕이 있어


결국 모든 생명체들이 바이러스로 인해 황폐화되어 버린 후지만, 이 좁디좁은 환경은 오염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래서 해바라기가 피어난 것이고 말이야.


그런데 영화의 이 엔딩에 우리는 놀라운 예언 같은 것을 듣게 되지. 저 물방울 말이야. 모든 환경이 오염된 상태에서도 해바라기가 살아 있게 된 이유를 우리는 알게 돼. 물방울이 떨어지는 깨진 도자기 조각을 클로즈 업 하면서, 카메라는 반짝거리는 입자를 잡아내는데, 바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나노입자인 거야. 윌이 엮어 놓은 구리 지붕 덕분이야.


저기 반짝거리는 입자들 보이지?


관객 입장에서 보면 엔딩 장면은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지. 오염되지 않은 나노입자를 활용하면 핀-윌 같은 초지능 AI를 다시 창조해낼 수 있지 않은가에서부터, 또다시 악몽이 되풀이될지도 모르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말이야. 어떤 상상이든 우리 인간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그것을 뛰어넘게 될지도 몰라.


다만 영화에 입각하자면, 최소한 '공포'와 '불안'만은 벗어던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해 보이는군.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문명은 시작도 되기 전에 폐허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거지. 이 정도면 영화 속의 핀-윌이라는 대단하고, 낯설며, 전지전능한 새로운 타자가 인류에게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 적어도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테크노포비아를 성찰할 기회를 주었으니까 말이야.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예수께서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 지금 이 단어를 발음해 보니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군.


다 이루었다
משׁלמ



예수가 죽은 지 수천년,

이제는 누가 다 이룰 것인가?

초지능AI?

우리는 불안해하지 않고 준비되어 있는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ul7rN7NMC8Q

Transcendence: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Official Preview - Mychael D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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