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스웨덴영화제] 영화 <더 걸즈> 후기
1968년 작 <더 걸즈>는 세 명의 스웨덴 연극배우들이 고전 희극 리시스트라타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그리며, 연극과 현실, 그리고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오가며 당시 사회 속 여성의 위치와 억압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페미니즘 영화이다. 곳곳에 숨겨둔 유머, 연극 대사 등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다소 급진적인 주제로부터 영화를 균형 잡은 마이 제털링 감독의 영리한 연출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속마음-대사 연출과 히틀러에 대한 오마주, 그리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를 연상케 하는 뮤지컬적 연출까지 장면 장면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연출적 시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세심하게 구성된 연출들은 연극과 현실, 내면세계가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오려지고 붙여지며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관객들에게 영화가 아닌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준다.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관객은 혼란스러움에 몸을 맡기며 영화와 접촉하고 메시지를 곱씹는다.
잉마르 베리만을 비롯한 여러 감독의 작품 속 배우 마이 제털링은 <더 걸즈>에선 카메라 앞에 서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감독으로서 마리안, 구닐라, 리즈라는 영화 속 세 배우에게 자신을 투영해 동료 남자 배우에게 “여자가 진지하게 하는 걸 본 적 있어?”라며 무시당하고, 쇼핑몰에서 팬들에게 쫓기기도 하는 장면들을 그려내며 그가 겪었던 여배우의 현실을 드러낸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연속적인 추상적 시퀀스의 향연은 감독이 겪은 인기 여배우로서의 삶, 그리고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리시스트라타' 공연이 끝난 후 리즈가 관객들에게 연극의 의미를 함께 논의하자고 요청하지만, 시체처럼 굳어 있는 관객들의 모습, 특히 여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비추는 장면이 있다. 이어 남자 배우가 “뭐죠? 또 다른 여성들의 반란인가요?”라고 말하며 상황을 가볍게 넘기고, 기자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는 모습은 사회와 대중 속에서 여성들이 마주해야 하는 복합적인 페미니즘의 한계와 장애물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더 걸즈>는 단순히 남성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과 같은 사회적 문제와 이러한 모든 상황을 방관하는 사람들까지 시선을 확장한,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 영화이다.
특히 빨리 비키라며 빵빵거리는 사회에 맞서 외치는 구닐라의 연설, 미래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마리안의 메시지, 여성들의 연대를 불러일으키는 리즈의 외침까지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광장 씬의 깊은 울림은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더 걸즈>는 개봉 직후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이후 2012년 역대 최고의 스웨덴 영화 25편 중 하나로 선정된 ‘시대로부터 평가를 박탈당했던 작품’ 중 하나라 생각한다. 당시 외면받았던 스웨덴의 영화가 57년 후 그들이 말한 미래의 여성들에게,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다시 상영된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닌다. 시대를 앞서간 영화 <더 걸즈>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여성에게 용기와 연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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