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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지붕 위에서 자존심을 박았다

망치질에 부러진 존재감

by 석탄


비에 젖어 미끄러운 어느 호주 지붕 꼭대기.

나는 바들바들 떨며 지붕 프레임 위에 위태롭게 발을 올리고 부속품처럼 서 있었다.
비에 젖어 추운 건지 아래를 내려다본 게 무서웠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밑에 있던 호주인 사장 스티브가 외쳤다.
“야! 거기 못 박아!”

나는 두 발을 프레임에 고정하고 한 손으로 지붕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허리춤 벨트에 걸린 길고 묵직한 망치를 꺼냈다.

어디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몰라 나는 망치를 중간쯤 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못을 향해 망치를 내리쳤다.

쾅.

못을 ‘박는다’기보다는 못을 ‘때리는’ 것에 가까웠다.

스티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못 하나 제대로 못 박냐? 남자 맞아? 목수 때려쳐.”


그 말에 나는 사람이 아니라 쓸모없는 기계 부품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딱딱한 억양, 거친 발음, 말끝마다 내 자존심이 갈려나갔다.

못 하나 제대로 못 박는 내 손. 그리고 모양도 자세도 힘도 어정쩡했다.


작은 못 하나에 내 존재감을 걸듯 나는 계속해서 내리쳤다.

정확히 치려고 할수록 힘이 약해져 못이 안 들어갔다.
그래서 더 세게 더 깊게 내리쳤다.

결국 빗맞은 못은 휘어져 버렸다.

그 순간 나는 못을 잘못 박은 게 아니라 ‘나’ 자체가 부러진 기분이었다.


스티브가 휘어진 못을 보더니
“에휴.. 야! 그냥 내려와서 나무나 옮겨!”

맞는 말이었다. 무거운 나무를 옮기는 게 못을 박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도망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이상하게도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 못 하나라도 제대로 박고 내려가고 싶었다.

“No. I’ll fix it.”


잘못 박혀 휘어버린 못은 결국 뽑아야 했다.
못은 나무를 단단히 물고 있어 쉽게 빠질 리 없었다.

그리고 휘어진 못을 다시 뽑는 일은 박는 것보다 두 배는 힘들었다.

‘이거 또 못 빼면 한 소리 듣겠지.’
못을 박지도 뽑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 휘어진 못을 망치로 내리쳤다.

쾅. 쾅. 쾅.
그 소리가 내 속마음이었다.

그 지붕 위, 그 못 앞에서 나는 한없이 더 작아졌다.

항상 ‘손재주 있다’, ‘눈치 빠르다’는 소리 듣던 내가 여기선 매일 실수하고 지적당하고 한숨을 삼키며 아래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망치질을 끝내고 지붕에서 내려올 때 기술을 못 배웠다는 사실보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그 의심이 더 아팠다.

지붕에서 내려와 무거운 나무를 옮기는 와중에도 망치질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무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못이 너덜너덜해져 떨어지더라도 ‘이번엔 제대로 박아보자’는 생각에 나는 다시 지붕 위로 올라갔다.

내가 진짜 싸우고 있던 건 못이 아니라 '나는 무능한 존재는 아닐까?'라는 두려움이었다.

그 망치질은 내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한 번에 못 박지 못해도 휘어버려도 다시 펴서라도 박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못이 아니라 내 자존심을 다시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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