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건 마음의 무감각
나는 매일 아침, 호주의 지붕 위에 올랐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위태로운 지붕 위에서 떨어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감정조차 점점 무뎌졌다.
이제는 지붕 위에서 중심을 잃고 프레임에 한 팔과 한 다리를 걸쳐 매달리는 상황이 와도 내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지붕 위에서 사장의 모욕은 수위를 높여 갔고 감정은 쓰레기처럼 쌓여만 갔다.
나는 그저 한숨으로 그 쌓인 무게를 털어내고 다시 올라가서 못을 박고 톱질을 했다.
지붕 위에서 자칫 실수라도 하면 밑에서는 벌을 받듯 무거운 나무를 나르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체를 쓰는 일에는 정신을 곁들이면 안 됐다.
정신이 살아 있으면 오히려 내 감정과 생각은 몸을 더 망가지게 했다.
몸은 계속 움직였지만 생각과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따라오지 않았다.
감정과 생각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감각과 무의식이 점점 채워나갔다.
그렇게 의식적인 행동은 내 머리속에서 밀려나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도 함께 데리고 사라졌다.
어느 순간, 지붕 위의 시간은 늘 멈춰 있는 것처럼 아니면 인생에서 삭제된 시간처럼 느껴졌다.
감정과 생각이 시간을 만들기에.
나는 그 시간이라 흐름에서 점점 밀려나 있었다.
매일 점심엔 호주의 맑은 하늘 아래, 넓은 들판, 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200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항상 멍하니 전날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음식의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입맛도 감각도 함께 사라져 있었다.
그저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연료를 보충하듯 목구멍에 음식을 밀어 넣는 기분이었다.
다 먹은 빈 도시락통을 보며 점심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아니면 어제 도시락을 싼 게 맞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내 마음의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지붕 위. 여전히 같은 하늘, 같은 지붕.
그리고 기억속에서 삭제된 시간.
굳어버린 마음으로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
일이 끝나고 퇴근한 뒤에도 지붕 위의 습관처럼 나 스스로에 대한 감정과 생각조차 멀리 밀어냈다.
나는 감정과 생각을 진짜 잃어버린걸까.
집에 돌아오면 샤워를 하려다 화장실 문 앞에 엎드려 눕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그제야 하루 종일 눌러뒀던 감정들과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부정적으로.
거울안의 나는 몸도 마음도 늘 더러워보였다.
‘이걸 몇 년 하고 나면 난 정말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그렇게 불안과 걱정이 시작되면 신체로 뻗는 통증도 따라왔다.
그제서야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고 언제 생긴지도 모르는 상처가 쓰라렸다.
팔과 다리에는 하루하루 생기는 상처와 흉터들이 지붕에 쓰이는 못의 개수보다도 더 많아 보였다.
거울속 나의 흐릿해진 눈을 마주보려했지만 거울밖의 나는 시선을 피했다.
부정적인 감정과 잡생각은 애써 버리려 했다.
그래야 상처가 따끔거려도 샤워는 할 수 있으니까.
내 몸의 더러운 겉부분은 씻어내도 내 몸안쪽의 멍들어 있는 생각과 감정은 씻어내지 못했다.
나는 몸의 상처와 흉터보다 마음의 무감각이 더 무서워졌다.
매일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언제까지 지붕 위로 올라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