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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Nov 08. 2016

헬싱키 TOMMI의 에어비앤비

예술 감각이 가득한 헬싱키의 숙소


북유럽 여행에서 후반부에는 에어비앤비를 많이 이용했다. 물론 연말 특수로 많은 호스트들이 거절을 하는 통에 무척 마음에 드는 좋은 곳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에어비앤비가 이렇게 시즌을 많이 탄다는 것은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다들 가족을 만나러 고향에 가는 통에 집을 빌리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와 다른 이색적인 매력 그리고 연말의 나 홀로 여행자를 선선히 받아들여준 마음씨 좋은 호스트들 덕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호텔 로비처럼 나와 같은 여행자를 마주칠 수 없기에 더 고독한 시간도 있었지만 호텔에서 지냈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사진들이 남아있기에 공유해볼까 한다.





헬싱키 TOMMI의 에어비앤비는 나 혼자 쓰기엔 좀 너무 과한 것이 아닐까 고민이 될 정도로 좋은 곳이었는데,  오전에 헬싱키에 도착하는 야간열차를 타는 내게는 당장 아침부터 짐을 풀 숙소가 필요했다. 그런데 호스트 TOMMI는 너무나도 선선히 오전 체크인이 가능하다며 확답을 해주었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이 예약을 했다. TOMMI 에어비앤비 근처에 영화 카모메 식당에 나온 수영장(사우나)이 있다고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이 수영장이 누드 수영장이기에 요일에 따라 남녀 출입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 게다가 시간도 여름, 겨울 다르고 또 돈도 내야 하고 생각하다 보니 골치 아파서 패스했다. 하지만 분명 이색적인 경험이라고 하니, 핀란드 식 사우나를 체험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할만하다. (전 오울루 호텔에서 이미 했기에 패스했지요.)



야간열차를 타고 헬싱키 역에 도착하니 길에 사람도 드문 이른 오전이라 어떻게 체크인을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TOMMI왈 헬싱키 역 앞의 건물의 데스크에서 자신의 이름을 대면된다고 하지 뭔가. 그래서 어찌어찌 헬싱키 역 코 앞의 건물을 찾아가는데 길은 녹아내리는 눈으로 덮여있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심지어 건물 외부 출입문도 최소한만 빼고 다 잠가져 있으니 이게 맞나 계속 걱정도 들었다. (여행 능숙자가 아니라면 에어비앤비를 비추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짐도 정말 많았고 심지어 머리는 아직도 졸려서 띵한데 무섭게 생긴 경비원에게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하려니 곤혹이었다. 나를 미심쩍게 보는 고급스러운 오피스텔 건물의 경비원에게서 TOMMI가 내게 주라고 맡겼다는 봉투를 전달받고 나니 일단 1차 미션을 해결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대체 호스트는 뭘 넣어둔 걸까 하고 열어본 봉투 안에는 스파이에게 전달된 비밀문서처럼 집 열쇠와 집까지 찾아가는 방법이 적혀있었다.



호스트 TOMMI, 너 이렇게 좋은 건물에서 사는 거야?
그런데 나는 도보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니!


빈부격차를 온몸으로 느끼며 추위에 맞서며 폰으로는 구글맵을 켜 주소를 찾고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며 당장 숙소에 들어가면 잠부터 잘 거야 라고 중얼거렸다. 심지어 설상가상 산타마을에서 핀번호 락이 걸린 내 신용카드는 1일 교통패스를 구입하는 것부터 문제를 일으켜서 더더욱 짜증이 났다. 친절한 듯 무뚝뚝한 트램 운전기사는 탑승하려는 내게 기계에서 1일 패스를 구매해오라고 말해서 서운함을 일으켰지만 내가 탑승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소소한 친절함으로 내게 감동을 줬다.


여긴 그나마 밝은 편


물론 더한 시련이 내게 있었는데, 글로 길게 남기려니 너무 슬퍼서 패스한다. 건물을 코 앞에 두고 주차장 문인 줄 알고 1시간 동안 길에서 허튼짓을 했던 기억은 추억이 결코 되지 못했다. 하지만 혹시 헬싱키 TOMMI네 집을 예약하려는 분들께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창고라고 생각했던 철문이 안쪽 건물 단지로 들어가는 현관일 수도 있다는 헬싱키 깨알 팁을 드리고 싶다. 나만 이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두운 아침에 본 그 철문은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술 취한 언니가 얼음판에서 넘어지는 걸 보고도 안면 몰수하고 다가가서 이 주소가 그 현관으로 이어지는 거 맞냐고 물었다가 술 취한 언니의 그 주소 이 현관 아니라는 싸늘한 대답을 듣고 진짜 힘들어 죽기 직전에야 시도해볼 수 있었다. 엉엉


특이하게도 안쪽 건물이 따로 있다.


내가 아시안적 건물 구획 방식이나 미국식 건물 구획 방식에 익숙해져서인지 '앞의 건물의 복도식 통로를 통해 뒤의 건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이 뒤의 건물의 앞 건물과 완전 별개의 건물입니다'라는 독특한 중정 공유형 건축 방식을 처음 봐서 체크인 멘붕을 무려 1시간 겪었지만 그렇게 들어온 중정은 무척 고요하고 사적인 공간처럼 아늑해서 왜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녹초가 되었는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내가 직접 이고 지고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힘들었지만 쉬겠다는 일념 하나로 계단을 올랐다.


너무나 반가웠던 헬싱키 에어비앤비 현관문



간결한 현관문에 키를 돌려 열고 들어가자 예쁜 발코니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에어비앤비답게 현관 맞은편 작은 테라스에 보이는 중정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방 한구석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트리는 독특하고 아름다웠고, 창문에도 귀여운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껏 연말의 느낌을 더해주었다. 트리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어느새 밝아져 있었다. 한 시간이나 밖에서 씨름을 해서인지 숙소에 들어온 시간은 오전 9시였다. 내 계획대로라면 9시라면 잘 씻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푹 잠을 자고 있었을 텐데.



체크인한 숙소는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게다가 누군가의 아틀리에로 쓰이는 모양인지 벽면에는 독특한 장식이 되어있고 아이가 만든 것처럼 서툴러 보이는 공예 작품들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나무 사다리 계단을 올라가니 곰돌이 인형과 함께 푹신한 요가 깔려있었다. 화장실에는 수건과 비누가 하나 놓여 있었다. 수건은 참 예뻤지만 날씨 탓인지 아니면 주인이 오랫동안 방치해서인지 꿉꿉한 냄새가 나서 결국 내가 가져간 수건을 사용했다. 연말이니까 수건쯤은 괜찮았는데 몽롱한 정신에 화장실을 나서다 화장실 문 앞에 설치된 체력 단련봉에 눈과 코를 호되게 부딪히고는 정말 슬퍼졌다.



야간열차에서 잠을 자고 눈이 쌓인 도로에서 진땀을 흘리며 체크인 때문에 고생해서인지 몸에 감기 기운이 오슬오슬 돌았다. 심지어 내일도 새벽 4시에는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데 걱정이 돼서 아침은 미역국으로 챙겨 먹었다. 가져간 테라플루도 챙겨 먹었다. 인스턴트를 좋아하는 입맛인데도 신기하게 해외에 나오면 인스턴트가 맛이 없다. 그래서일까 아껴둔 것인데도 감흥이 덜했다. 만약 여행지의 음식을 즐기는 편이라면 북유럽 물가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인스턴트는 적당히 챙겨 와도 좋을 것 같다. 일단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이 맛이 있어야 하는데 진짜 돈 아끼려고 먹는다는 마음이 팍팍 드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아침 좀 챙겨 먹었더니 해가 떴다. 겨울의 북유럽은 해 뜨는 시간이 정말 짧다. 10시쯤 해가 났다 싶으면 3시도 되기 전에 져버린다. 4시쯤 되면 이미 생체시계는 밤 8시쯤 되었거니 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자꾸 끼니를 놓친다. 밥이라도 요령 있게 설렁설렁 먹었다간 자연광 아래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을 모조리 놓치고 마니깐.



마지막 남은 헬싱키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나는 피곤해진 몸을 위해 아껴둔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그리고 야간열차에서 먹다 남은 호밀빵을 마저 다 먹기로 했다. 냄비가 마땅한 것이 없어서 제일 큰 냄비에 끓였는데 라면 국물을 먹어도 힘이 안 났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따끈한 피자라도 먹을까 싶어도 몸이 너무 피곤했다. 오븐에 데운 호밀빵은 딱딱해서 라면 수프에 적셔 먹었다. 호밀빵이 상어 지느러미처럼 그릇에 우뚝 섰다. 나는 웃겨서 사진을 찍었다.



힘들게 짐을 다 꾸리고 나서, 나는 이 예쁜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남겨보자 했다. TOMMI의 에어비앤비는 실용적인 가구보다 디자인 가구가 많아서 지낼 때는 불편했지만 막상 사진을 찍고 보니 정말 예뻤다. 게다가 다시금 TOMMI의 예술 감각에 놀라움을 느꼈달까. 트리 옆에 커다란 1인 소파를 둔 건 정말 환상적인 배치였다. 오래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가죽 소파가 이렇게 멋질 줄이야.

1895년에 세워졌다는 오래된 집의 창틀과 히터도 소파와 한 몸처럼 잘 어울렸다. 그 뒤 어떤 숙소를 가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옆에 둔 내 사진만큼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없었다.



TOMMI의 에어비앤비의 총평


화려하고 예쁘지만 은근 뭐가 없는 에어비앤비 되시겠다.

요리를 하려고 보니 적당한 냄비도 없고, 주거용 공간이 아닌지 와인잔과 파티용품이 그득했다. 욕실에도 샴푸랑 린스가 없어서 비누만 덜렁 둔 TOMMI의 대범함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혼자 사색을 즐기며 조용하고 분위기있게 헬싱키를 느끼고 싶다면 괜찮은 선택임은 분명하다. 호스트인 TOMMI는 겁나 쿨한 호스트이고, 집도 그만큼 쿨하니까.


TOMMI의 에어비앤비 링크

https://www.airbnb.co.kr/rooms/1627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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