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회사가 함께 키우는 것이라는 마음가짐
독신이라는 선언이 무색하게 친구들 중 가장 빨리 결혼을 하고, 내 인생에 아이는 없을 거라는 다짐과는 달리 가장 먼저 엄마가 되었기에, 육아, 워킹맘 즉 일하는 여성에게 아이가 생긴다는 것과, 주변에 워킹맘 생활에 대하여 알려줄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내느라 좋은 책이나 참고될만한 자료도 찾아볼 생각도 못했기에, 맨땅에 헤딩하듯, 무식하게도 온몸으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나는 일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고, 우리 부모님은 여자라고 못할 것이 어디 있냐는 생각으로 나를 키우셨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여자가 일하면서 아이 키우기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왜 이런 걸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이 힘든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다고?”
내가 다닌 회사는 전체 직원 중 여성의 비율이 5% 정도라는 업계의 특성도 있지만, 여자 ‘과장’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과장이 되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 회사를 떠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보다 결혼 후 퇴사 비율은 줄어들었고, 출산 후 퇴사 비율도 예전보다는 줄어들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특히 초등학생 나이가 되어갈수록 퇴사를 결심할 확률은 커지고, 왜 그런지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흉흉한 뉴스를 보면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쉽게 맡길 수도 없고, 유치원, 어린이 집을 보내기는 쉽지도 않을뿐더러, 거기서도 사고가 많더라.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점심 먹기 전 또는 점심 직후에 하교를 하게 되니, 여리고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위한 시간을 내는 일 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기관에 맡길 용기가 부족하여, 아이를 지방으로 보내 외가에서 지내게 하였다. 이 때는 엄마로서 직접 내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힘들었다. 아이가 조금 커서 말도 하고 뛰어다닐 정도가 되어 함께 살게 되면서, 주변 도움 없이 아이와 우리 부부가 모두 9-to-6 생활을 하게 되자,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데려오는 그 시간만큼은 빈틈없이 맞추어야 하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돌볼 시간을 마련해야 하는,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매우 자주 연출되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아이가 아픈데 출근해야 하고, 출장 가야 하고, 하루에 얼굴 마주치는 시간이 고작해야 3-4시간 정도라서 아이에게는 어떤 영향이 미칠까 생각하다 보면, 당장 내가 일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를 자책하던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어찌어찌,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견디며, 지난 10년간 워킹맘으로서 살아오고 지금도 회사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에서 선입견, 뒷말, 꼰대와 혼자만의 싸움을 하면서 소소한 변화를 도모하고자 했던 나의 발버둥과, 한결같이 나를 지지해준 가족들 덕도 크지만, 8할은 워킹맘인 나를 배려해준 나의 보스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딸기(딸의 애칭)는 우리 회사가 같이 키우는 겁니다.”라는 보스의 말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보스는 이 말씀에 그치지 않고, 말이 살아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딸이 열이 난다, 유치원에서 일이 있다, 병원에 가야 한다 등 나와 내 가족에게 일이 있어 내가 회사를 당장 박차고 나가야 하는 순간에도, 갑자기 결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지금 나가야 한다, 연차를 써야 한다, 쉬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 보스 앞으로 가서 서는 순간, 말을 꺼내자마자 이유도 묻지 말고, 이유도 말하지 말고 그냥 ‘그러시지요’ 하셨다.
회식도 일 년에 두세 번 갈까 말까 였다. 당연히 회식은 선택이라 생각하겠지만, 회사에서 그렇지 못한 상황도 매우 많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보스와 동료들은 나는 그냥 디폴트로 빠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정말 중요한 것만 한 두 개, 나의 의사를 물어본다. 내가 회식에 참가함으로써 딸의 하원부터 그 이후 루틴이 깨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를 배려해준 것이다. 물론, 이렇게 저렇게 회식에 빠지는 것에 대해 보스와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빠질 수 있는 나의 뻔뻔한 성격도 매우 도움이 되었다. (업무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도록 일했고, 출장은 당연히 마다하지 않고 다녔음을 덧붙인다.)
회사가 직원의 자녀를 같이 키운다는 것은, 육아는 어찌 됐든 그건 알아서 하고 회사에서는 회사에 충성을 다하라는 싼 마인드가 아니라, 육아의 중요성을 공감하면서, 직원의 가정이 안정되어야 회사에서의 효율성도 올라간다는 발상의 전환이자 인간존중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를 우리 회사가 키워준다는 말은 나에게 회사가 잘 되도록 열심히 일하는 동기가 되고, 회사와 보스, 다른 동료들과 연대감을 느끼게도 해주었다.
지금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아이는 정말 우리 회사가 같이 키워줬구나. 이것이 노사 상생협력모델이라 할 수 있겠고, 이러한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한 나는 이 모델이 모든 기업에도 널리 적용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