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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rdoc Sep 27. 2018

해외여행 예능 연대기

'꽃보다 시리즈' 이후부터 해외여행 예능들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기록


전국의 수많은 예능 방송 프로그램을 애정 하는 시청자 중 한 명으로서, 예능 프로에 대한 나의 하고 많은 말들은 수많은 예능 참견러들의 말들 중에 묻히고 말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행 예능은 특히 더 좋아하는 프로다 보니, 현재의 수많은 여행 프로가 범람하기 전 이슈와 시청률을 먹지 못하던 장르였을 때부터의 모습을 눈 한 켠에 저장하고 있다.


천재적인 기획으로 해외 여행 예능의 신기원을 연 <꽃보다 할배> 시리즈

그중 해외여행 예능을 논하는데 나영석 PD의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빼놓을 순 없다. 그 전에도 부산 MBC의 좌충우돌 만국유람기 등의 준수한 여행 예능은 있었고, 무한도전 등의 메이저 공중파 예능에서 여행 컨텐츠는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재료였긴 하나, <꽃보다 할배>가 남긴 기획의 참신함과 주목도는그 궤를 달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꽃보다 할배>에서 느낀 특별함은, 그전부터 해외여행 예능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 치명적인 약점을 기획으로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약점이 뭔가 하면 ‘질투심’이다.


사실 지금도 어느 여행 예능이 런칭하면 이와 같은 댓글들이 달린다

"내가 왜 돈 많은 연예인들이 출연료 받아가며 해외여행하는 걸 보고 있어야 하나..."


해외여행 예능에서 담을 수 있는 여행지에서의 멋진 풍경과 출연자 간의 에피소드라는 큰 장점이 있지만,


흔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이란 시간과 돈이 여의치 않은 여가의 기회이기에, 나보다 몇 배 몇십 배 잘 버는 연예인들이 출연료도 받고 해외여행 가는걸 내가 "왜" 보고 있어야 하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난 해외여행 예능은 이걸 넘는 명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2013년에 첫 방영된 <꽃보다 할배>는 이 부분을 정말 기가 막힌 설정으로 넘었다. 일단 주인공이 할배들이란 설정으로 '효도 여행'의 요소를 집어넣음으로 질투심이 희석되게 만들었고, 고령층의 출연자로만 구성될 경우에 활력이 떨어질 수 있는 부분을 이서진이란 젊은 캐릭터를 짐꾼이란 포지션으로 넣음으로, 이슈를 만들면서도 질투심이 개입될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린, 정말 기획의 천재라고 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 결과 유럽 풍경들을 할배들의 인생 스토리와 엮으면서도, 중간에서 '고생하는' 이서진의 캐릭터까지 확실히 부각되며 레전드 예능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첫 <꽃보다 할배>를 시청하며 느낀 감정은 '편안함'이었다. 나는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출연료 받으며 해외여행하기 보고 있다는 불편함도 없고, 할배의 스토리와 이서진의 캐릭터 사이에서 유럽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몰입이 가능했다.


기억하는 사람은 적지만 뉴욕편은 나름 재미가 있었던 <둘이서 세계로>

물론 이런 기획의 힘이 아니더라도 그런 질투심이 배제된 예능은 있었다.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겠지만 2014년 MBC에서 방송된 <둘이서 세계로>라는 프로가 있었다. 2 번의 여행 에피소드로 사라진 비운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첫 편은 봉만대 감독과 배우 여현수가 뉴욕으로 간 에피소드였다. 그때만 해도 봉만대 감독이 ‘라디오 스타’ 출연에 이은 예능 패널로 왕성히 활동하기 전이고, 여현수도 배우로서 입지가 애매한 시점이다 보니, 그냥 평범한 사람들과 겹쳐 보이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주 무대 중 하나인 뉴욕에서 두 영화인들 그 촬영지의 스팟들을 돌며 옛 영화의 추억을 기억하는 것은 스토리 있는 컨텐츠였다. 영화 <존 윅>의 촬영지에서 키아누 리브스를 기다리며 자신은 영화감독이라 꿀릴 것 없다고 허세를 부리다 막상 키아누 리브스와 맞닥뜨리자 즉각 허리가 90도로 굽혀지는 봉만대 감독의 캐릭터는 이후 여러 예능에서의 활약을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위 같은 사례처럼 해외여행 예능은 시청자들의 '질투심'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그래서 '공감'의 영역으로 어떻게 진입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여행 예능들은 '한정된 여행비'란 장치 등으로 어떻게든 ‘짠내’를 자아내려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시도하는 그 장치가 매번 작동하지 않는다는 건 한계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정규화된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나혼자산다’에서 김광규의 이탈리아 여행 에피소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부분을 넘어섰던 것 같다. 전혀 생각 못한 패턴이었는데, 보통의 우리가 아는 해외여행은 빡센 조사와 대단한 준비 끝에 교통 숙박 미식 관광까지 완수하는 한국식의 ‘유격 여행’인데 반해 , 영어를 못해서 가는 곳마다 버벅대고, 요즘은 잘 안 가는 여행지를 굳이 가서 삽질을 반복하는 김광규의 이탈리아 여행은 전혀 새로운 패턴의 재미를 뽑아냈던 것 같다. 여행으론 실패였을지 몰라도 예능으론 합격이었다고 느꼈다. ‘완벽하고 대단한 여행’ 패턴을 그대로 답사한 같은 프로의 노홍철의 스위스 여행 에피소드와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꽃보다 청춘>은 페루 편, 라오스 편, 아이슬란드 편, 아프리카편으로 이어지며 '꽃보다 시리즈'의 한 장을 차지한 성공적인 예능이다. 페루 편의 경우 정말 방송 한 회 한 회 본방을 고대하며 시청하던 기억이 난다. 유희열, 이적, 윤상이란 캐릭터가 너무 좋았고, 페루란 매력적인 여행지를 캐릭터와 동행하며 즐길 수 있었던 멋진 예능이었다. 음악인 3명의 대화를 엿듣는 재미도 있었던 게, 유희열과 이적의 대화 중 자막에도 나오지 않은 부분을 반복해서 들은 끝에 <Sound City>란 멋진 다큐를 알게 돼서 뜻하지 않은 소득이 있었던 방송으로도 기억한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은 페루에 비해 충분히 가볼 수 있는 여행지인 라오스를 알리며 그 파급력이 컸다. 라오스 편의 위력을 몸소 실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난 공교롭게도 꽃청춘 라오스 편이 방송되기 1년 전에 라오스 방비엥 여행을 갔던 경험이 있었다. 저렴한 항공권을 득템 해서 갔던 곳인데 식당마다 장기체류자들이 미드 프렌즈를 보며 널브러져 있는 극한의 여유로움에 반해 친구와 다음 휴가를 라오스로 가자고 약속해놨었다. 그런데 여행 두 달 전에 꽃청춘 라오스 편이 방영되더니 그 여파가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라오스 방비엥에 한국인 여행객 군단이 몰려갔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 실체를 처음 느낀 건 여행을 출발하는 인천 공항에서였다.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행객이 비어라오 기념품을 들고 있길래 “저기.. 혹시 지금 방비엥 어떤가요?”하고 물으니 대답 없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반응에 아 정말 심상치 않은 상황이구나 하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도착한 방비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 조그만 촌동네에 온 골목이 한국인으로 덮여있었는데, 1년 전 방비엥에서 서양인 50%, 현지인 30%, 한국인 10~20%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불과 1년 후 방문한 방비엥은 한국인 80% 서양인 10% 현지인 10%로 그 비율이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매우 주관적인 느낌) 그 때의 방비엥은 영어를 쓸 필요가 없던 게, 길가다 어디서나 "여기 잘하는 마사지집이 어디에요?"라고 한국말로 물으면 지나가던 한국인이 "저기가 잘해요."라고 가르쳐 주던 상황이었으니,  강촌 방비엥이란 말도 지나친 게 아니었다.


정교한 기획을 짜임새를 갖춘 <짠내 투어>

<뭉쳐야 뜬다>(2016)는 패키지여행이란 익숙한 아이템으로 '나도 가볼 수 있는 여행'이란 요소가 공감을 자아낸 것 같다. 사실 패키지여행이 가장 익숙한 형식의 여행이기에 너무 특이하거나 복잡하지 않은 '나도 가볼 수 있는' 패키지여행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는지도 모르겠다.


성공적으로 안착해 지금도 방영 중인 <짠내투어>(2017)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시청자의 '공감'에 진입했다. 제한된 예산이긴 예산인데, 출연자가 돌아가며 일일 가이드를 책임지고 그 결과로 평가받는 방식은 단순히 제작진과 출연자 간의 예산 줄다리기가 반복됐던 패턴에서 진일보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1일 1업로드와 예산을 연동시킨 한 단계 높은 기획의 <이타카로 가는 길>

해외여행 예능은 계속해서 발전 중이다. 최근에 보이는 경향은 단순히 '여행'이란 지점을 벗어나 ‘생산성’ 컨텐츠를 입히는 경향이 보이는 듯하다. <비긴 어게인>(2017)과 최근의 <이타카로 가는 길>(2018)을 보면 음악인들이 여행지를 돌며 '공연'을 하는, 좀 더 진일보 한 여행 예능의 포맷인데, 특히 최근의 '이타카로 가는 길'의 경우엔 여행비를 매일 업로드한 공연 영상의 조회수와 연동시키는 굉장히 혁신적이고 트렌드와 맞춘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방송이 물결처럼 확산되는 시대로 가며, 많은 평범한 사람들도 컨텐츠를 '다운로드'하는 소비자에서 벗어나 '업로딩'하는 생산자의 포지션과 가까워지고 있다. 많은 유튜버들이 금언처럼 여기는 'Just Keep uploading'이란 문구가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와 닿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한 명으로서 '이타카로 가는 길'의 기획은 인상 깊었다.


여행에서 장사로 영역을 넓힌 나PD의 역작 <윤식당>

음악 외에 ‘음식’과 연결된 해외여행 방송들도 다양한 변화를 보인다. 여행에서의 미식 컨텐츠는 흔한 요소지만, 천재 방송인 백종원이란 캐릭터가 더해진 효과는 EBS의 <세계견문록 아틀라스>의 하노이, 자카르타, 청도 여행 다큐도 꿀잼으로 만들었다. 이에 힘입었는지 TvN의 <스트리스 푸드파이터>는 비슷한 구성으로 8부작 동안 2.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근 식당 예능 열풍을 해외에서 구현한 <윤식당>(2017)은 명불허전 나영석표 예능으로 엄청난 시청률과 이슈를 만들어내며 기염을 토했다. 전작들에서 이어진 나영석표 예능에 대한 신뢰가 좋은 연출로 홈런을 이어간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와 비슷한 <현지에서 먹힐까>(2018)도 최근 이연복 씨가 출연한 편은 이슈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그 외에 <무확행>(2018) 같은 예능에서도 이젠 해외여행에서 각자의 취향을 맞춘 컨텐츠에 초점을 맞춘 요소가 보인다. 요리를 좋아하는 이상민이 포르투갈의 피리피리 소스 생산지를 찾아가거나 하는 등은 진부함은 피했다고 생각하지만, 첫 회부터 의도적으로 ‘짠내’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과 출연자의 취향에만 맞춘 나머지 공감의 끈을 잃어버린다면 흔한 해외여행 예능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항상 여행에 대한 고픔을 안고 현실 세계의 먹고사니즘에 충실한 사람으로, 해외여행 예능은 삶의 환기구 같은, 애정이 있는 방송 장르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거나 인생의 아웃라이어같은 대박이 터지지 않는 한, 난 생계를 이어나가는 일상을 살아야 하므로 앞으로도 더 발전을 거듭하는 해외여행 예능들로 허기짐을 채워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여행 예능을 제작하시는 PD님, 작가님들 및 모든 스탭들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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