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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Feb 21. 2022

한국에서 워케이션 도입이 어려운 이유

휴식도 '생산성'의 연장선상으로 편입되고 있다

직장인 인맥관리 앱 '리멤버'의 요청으로 '일과 여행을 한 번에, 워케이션 해보셨나요?' 칼럼을 기고했다. 다양한 직종과 직책의 직장인이 보는 게시판이기 때문에, 심층적인 분석글이 아니라 최대한 쉽고 간단한 내용으로 썼다. 이 칼럼에서 한국은 워케이션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비교적 낮거나 부정적이라는 점을 짧게 언급한 대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코로나19 이후 노동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한 미국의 경우, 임금을 삭감하더라도 원격 근무 가능한 회사를 선택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다는 소위 '대(大) 퇴사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워케이션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반면 한국에서는 워케이션이 전반적인 기업 문화에 널리 도입되는 추세로 섣불리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워케이션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왜 빠르게 대중화되지 못하는 것일까?



워케이션에 대한 기업과 노동자의 선명한 입장차

한국에서는 워케이션이 기업 문화에 널리 도입되는 추세로 보기는 어렵다는 대목에 대해, 해당 칼럼의 댓글 토론을 통해 두 가지 확연한 입장차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바로 기업과 피고용자(임직원)의 입장차다.


먼저 기업(경영진)의 입장은 또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원격 근무가 가능한 회사를 선호하는 MZ세대 근로자의 니즈를 놓치고 있었다는 자각이다. '경영자로서는 (이런 변화가) 다소 섬뜩하고, 경계해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근로자의 니즈가 바뀌고 있으니 회사의 접근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며 인식 재고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또 다른 입장은 워케이션을 허용해야 하는 동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워케이션 제도 도입에도 비용이 적잖이 드는데, 그에 비해 가시적인 이익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아마도 대다수 기업이 취하는 스탠스가 후자에 속할 것으로 본다.


노동자 입장도 둘로 나뉜다. 먼저 워케이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과 호기심을 보이는 이들이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업무와 일상이 뒤섞이는 혼란과 답답함을 탈피할 수 있고, 얼리 어답터들의 워케이션 후기가 늘어나면서 일종의 '이미지'(환상)이 생겨나는 점도 한몫한다. (그러나 브런치를 검색해보면 개인형 워케이션, 즉 프리랜서나 노마드의 워케이션 경험기가 많다. 애초에 상사의 지시를 받지 않는 자율형 원격 근무라는 얘기다.)


워케이션의 출현 자체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워케이션의 출현은 휴가지에서까지 노동자에게 끊임없이 일을 시키기에 딱 좋은, 철저한 기업형 논리라는 것이다. 코시국의 재택근무도 보안과 생산성 문제 등을 들어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한국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서, 기업형 워케이션은 기업과 노동자 양측에게 일종의 '꼼수'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유럽은 휴가 중 접속 차단 권리(right to disconnect)가 보장되지만, 미국과 한국은 always-on culture, 상시 대기 모드가 일반적이다.


'생산적인' 휴식, 진짜 휴식일까? 기업형 워케이션의 한계

워케이션의 이해관계 주체는 크게 개인과 기업, 정부(지자체)로 나뉜다.(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 연구, 2021.12) 만일 기업형 워케이션이 활성화된다면 가장 확실하게 이득을 보는 주체는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얻는 정부라고 본다. 프리랜서의 개인형 워케이션이 활성화되어도 지자체는 같은 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업형 워케이션에 대한 노동자와 기업의 이익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워케이션 관련해 많은 설문조사와 데이터가 보도되고 있으나, 대부분 특정 기업이나 이익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유럽에서 말하는 워케이션은 주로 '개인형 워케이션', 즉 장기 체류와 관광의 혼합이다.(2022.1 skift) 유럽에서 워케이션은 삶의 방식 중 하나다. 창의적인 일로 소득을 창출하는 개인의 자기주도적 라이프스타일이자 환경 선택권이라고 보는 것이다. 유럽 각국이 고소득자 외국인에게 앞다투어 발급하고 있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는 기업의 허가를 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소득과 고용 상태를 직접 증명하고 발급받는 형태다. 바야흐로 전 세계가 자국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으면서도 소비는 많이 할 원격근무 여행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개인이 선택한 장기 체류에서는 스스로 일과 휴식의 균형을 설계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선도 사례를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앤레스토랑의 최근 워케이션 분석 기사) 이 두 나라는 모두 기업형 워케이션이 대세다. 미국은 기업이 주도하는 인적 관리로서의 워케이션이고, 일본은 인구 소멸 지역으로의 분산형 오피스를 활성화하는 정부 주도형 워케이션이다. 기업 주도형 워케이션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주도적인 워케이션 플랜을 설정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한국에서는 재택근무 중에 워케이션을 해야 할 경우 사측의 허가를 받거나 그마저도 반려되는 사례가 소셜미디어에 종종 올라오곤 한다. 여행 미디어에서 워케이션 콘텐츠를 써야 하는 기자도, 기획안이 통과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게 K-워케이션이다.(srt 매거진 안동 워케이션 후기) 놀러 간 것도 아니고 5일 내내 일만 하다 오는 워케이션인데도 말이다. 휴양지에서 상사의 지시와 카톡을 받으며 시간 맞춰 화상 회의를 하는 기업형 워케이션이 마치 워케이션의 스탠더드처럼 자리 잡는 것은 자못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책 <리추얼의 종말>에서 저자 한병철은 '신자유주의 체제는 생산을 전체화한다. 그리하여 삶의 모든 분야가 생산에 종속된다.(중략) 휴식도 생산에 장악되어 휴가로, 회복을 위한 중단으로 격하된다'라고 말한다. 또한 '자본은 휴식하지 않는다.(중략) 인간이 관조적 휴식의 능력을 잃으면, 그만큼 인간은 자본과 유사해진다'라고 역설한다. 자칫 워케이션은 자본의 논리와 이익을 이행하는 도구로 변질되어, 얼마 안 되는 노동자의 휴식마저 침범할 수도 있다. 워케이션은 생산성을 위한 도구나 휴식의 대체재가 아님을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으며, 업무 환경에 대한 새로운 선택권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어야만 양측의 니즈가 맞닿을 수 있다.  


올해 워케이션의 기술 강의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각 주체가 모두 윈윈 하는 워케이션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에 있다. 기업이 워케이션의 우수 사례를 다 일일이 찾을 수도 없고, 또 어떤 워케이션이 바람직한지 가치판단을 하기도 어렵다. 또한 스타트업과 중소, 대기업이 워케이션에 접근하는 방식은 달라야 하고, 각 기업이 워케이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 또한 모두 다르다. 그래서 워케이션을 개인형, 그룹형 등 목적과 효용에 따라 나누고 여기에 맞는 워케이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를 교육하는 입장에서, 양쪽 주체가 좀 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연결점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워케이션 또한 이러한 연결점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다영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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