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영 nonie Dec 04. 2017

 소비적인 여행을 그만두고 싶다면

새로운 책을 골라 보세요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여행이 예전만큼 저를 설레게 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여러 모로 소비되고 있다는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떠날 때는 좋은데 막상 돌아오면 나의 현실은 여전하고, 그렇다고 여행이 원래부터 대단한 동기부여로 삶에 큰 역할을 하나? 하는 의문도 들거든요. 그러는 사이 저도 모르게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으로 소비적인 여행에 지쳤나 봅니다. 
여행을 조금 더 생산적으로 바라보고,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17, 11월 어느 독자분의 메일) 


얼마 전 강의 문의와 함께 사연을 보내주신, 한 직장인 분의 질문을 다듬어 보았다. 이런 질문을 마음 속에 품은 이들이 이 분만은 아닐 듯 하다.


여행업계에 기자로 입문하던 10여 년 전에는, 해외여행이 특별한 '자랑거리'였다. 싸이월드(!)나 블로그에 출장 사진 몇 장만 올려도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곤 했다. 근무하던 회사에서 국내 최초의 LCC '제주항공' 기내지를 창간호부터 제작했으니, 그 즈음이 본격 해외여행 시장이 열린 원년이라 봐도 무리가 없다. 당시만 해도 평범한 일반인의 짧은 여행 경험을 담은 감성 에세이가 큰 인기를 끌었다. 감성 충만한 풍경사진에 눈물 뚝뚝 떨구는 아련한 문장 몇 줄을 곁들인 '예쁜 여행' 이미지만 묶어내도, 그럭저럭 팔리던 때였다. 어쨌든 자주 가지 못하는 여행을 '대리만족'하기 위해 콘텐츠를 소비하던, 마지막 시절이다.


2010년대에 들어 해외여행이 크게 대중화되면서, 여행은 '과시를 위한 소비'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SNS의 발달과 함께 여행경험을 실시간 공유하면서, 여행이 새로운 자기과시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니 '남이 하는 거 나도 다 하고 오는' 여행을 해야, 손해보지 않은 여행이었다. '남들 사니까 나도 사는' 명품 가방이나 구두가 경험 상품으로 대체되었을 뿐, 여행에 대한 거창한 의미나 본질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때 필요한 여행정보는 '남들이 하는 여행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안내서나 블로그다. 80년대 일본에서 출간되던 여행서 시리즈를 모태로 한 종합형 가이드북은, 지금도 여전히 스테디셀러이며 이 시장의 메이저다. 즉각적인 휴양에 만족하는 여행자가 아직도 대다수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최근 3~4년 간 소비적 여행을 반복적으로 누적해온 이들의 성향은 이미 새로운 변곡점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당일치기 항공권으로 일본에 간다는 사람이 2년 전보다 7배가 늘었을 만큼(관련 기사), 항공 비용의 급격한 하락으로 해외여행의 '진입장벽'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너도 하고 나도 하는 해외여행은 더이상 '과시형 소비'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여행에서 뭔가 다른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날까? 그러다 보니 브런치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올라오는, '여행에 꼭 거창한 의미가 필요한가?'와 같은 자문도 누구나 한 번씩은 거쳐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여행서를 (여행지만큼) 까다롭게 골라야 하는 이유

만약 여행을 좀더 생산적으로 꾸리고 싶거나, 내 삶에 자극을 주는 새로운 방향으로 기획하고 싶다면 여행정보를 선택하는 기준에 변화를 주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이 얘기도 몇 년 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여행서를 선택할 때는 그렇게 큰 고려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그 이전에 '내 욕구'를 끈질기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여행이 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니 기성상품(가이드북)에 의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우연찮게 여름에 출간된 <베를리너 Berliner>를 읽었다. 이 책은 여행서도, 베를린을 소개하는 책도 아니며 힙스터에 대한 책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삶의 다양성'을 다룬 책이다. 그냥 여행으로 가면 만날 수 없는(하지만 꼭 만나보고 싶은) 베를리너 20명을 운좋게 소개받는 책이다. 베를린을 상징하는 20가지의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그들의 베를린 추천 장소는, '지역 별로 나열하는 관광명소'와는 접근법부터 다르다. 과거에도 유학생이나 현지인 인터뷰 에세이는 흔했다. 이 책의 차별점은 베를린에 모여든 이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을, 저자의 개인적 서사와 맞물려 드러내는 지점이다. 그 결과, 베를린은 '여러 삶의 방식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도시'로 포지셔닝되었다. 이것은 과거 10년간의 진부한 여행 콘텐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리한 기획이다. 


사회적 빵집 직원이 추천하는 빵집, 동물 권리 운동가가 가는 비건 레스토랑 등 삶의 철학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로컬이 간다는 장소를 쭉 보면서, 다가올 여행시장의 변화를 엿보게 된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려는 가치는 무엇일까? 남들 가는 곳만 가는 소비적인 여행이 지친 이들은, 다른 나라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내 삶을 반추하고 발전시키는 주관적인 여행으로 옮겨갈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걸맞는 '관점'을 제시하는 좋은 책은 종종 주목받지 못하고 묻힌다. 이 책 역시 마케팅 타이밍도 한참 지났고, 판매지수도 높지 않다. 반면 절박한 직장인(의 지갑)을 겨냥해 '퇴사', '한달살이' 류의 키워드를 내세운 단편적인 경험이 손쉽게 소비된다. 하지만 지속적이고 생산적인 여행을 기획하고 싶다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이들의 시각을 빌려서 여행 '테마'의 힌트를 먼저 잡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를린에서 3년이나 거주했으며,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특수성 답게 예술과 도시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다. 새로운 시각의 프리즘을 거친 '로컬의 삶의 방식'을 미리 공부하고 나면, 현지에서 가볼 곳과 해볼 것의 리스트는 아주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어떤 도시를 관광명소의 프레임에서 '찾아가기 쉽고 유명한 곳' 위주로 선별하는 책보다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자신만의 시각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책/정보를 계속 권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다른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여행정보가 아닌, 아예 다른 관점의 새로운 정보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중요성은 더욱 대두될 것이다.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의 격차가, 언어능력 + 생각하는 힘의 유무로 엄청나게 벌어진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이 좋은 사례다.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해라(Live like a local)"와 같은 카피를 흔히 본다. 그렇다면 로컬의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가는가? 현지인의 삶에서 어떤 자극을 얼마나 받고 오는가? 현지인의 아파트에서 머물기만 하면, 살아보는 여행인가?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한달살이는, 과연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직업적 전문성도 없이 외국생활만 오래 하면, '생산적인' 디지털 노마드가 저절로 되는가? 앞으로 떠날 수많은 여행을 통해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면, 이러한 질문에 온전히 자신만의 답을 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 여행법'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여행 전문가.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한국 시장에 알립니다. 또한 한국인의 해외 자유여행 트렌드를 분석하고 강연합니다.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


매거진의 이전글 삶과 여행 사이, 균형이 필요한 시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