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해서만 만져지는 세계

올리비아 로젠탈,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2014

by 달리

프랑스 작가 올리비아 로젠탈의 연작소설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소설의 메인 테마는 '죽음', 그리고 '살아돌아옴'이다. 이는 삶 또는 생존 그 자체와는 별개의 개념으로서, (부활에 가까운) 어떤 극적인 경험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 세계관에서 죽음은 사라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설은 죽음을 통해서만 만져지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정한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 주제를 작가는 임사체험(죽은 것으로 판정되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험)이라는 소재를 중심에 두고 풀어나간다.


이야기는 낯선 방식으로 전개된다. 장르를 특정하기는커녕, 문학이라는 크고 애매한 범주 안에서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낯선 개념과 서술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실제 임사체험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쓰인 기록들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같이 극도로 사실적인 동시에 문학적으로 단단하게 구축된 독자적인 장르를 연상시키지만, 당연하게도 완전히 포개어지지는 않는다. 올리비아 로젠탈의 소설 안에서는 서사의 일관된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서사의 굵은 줄기를 따라 흐름을 파악해나가는 데에 익숙한 많은 독자들에게 평소보다 많은 집중력을 요한다.


소설은 분명 문장 단위로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한 편의 완성된 서사로 이해하기는 상당히 어려운데, 그 이유는 죽음이라는 소재와 이야기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에 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는 작가가 자신의 서술 방식을 소개하는 짤막한 글이 실려 있는데 그중 소설의 전반적 흐름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만한 내용이 있어 인용한다.


십여 년 전부터 저는 특정한 주제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얼 찾고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어렴풋하게 갖고 있던 생각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요.
(……)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명쾌하고 비판적이며 정확한 접근 방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아주 매혹적인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신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작가라도 혼자서는 지어낼 수 없을 만한 것들이었지요.
(……)
또한 우리는 죽음이 극단적이고 결정적인 단절이라고 배웠지만, 사실 죽음은 느린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한 방향만이 아니라, 죽음에서 삶으로 오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견고하고 완전한 경계가 있다는 선입견을 재고하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대화하며 그들 고유의 특성과 존재 방식을 교환하는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올리비아 로젠탈,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알마, 9-10쪽


이 책이 어떤 주제-이를테면 죽음과 같은-에 대해 매우 관념적인 서술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작가가 그 자신도 '무얼 찾고 있는지 확실히 모르는' 생각의 출처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수집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러 임사체험자들과의 인터뷰는 이 소설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재료다. 이야기 구조의 다자성(多者性)은 작가가 죽음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생의 끝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가역적 사건으로서의 죽음이라는 차가운 개념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죽음은 그렇게 단일한 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는 현상인가. 작가는 대안적 개념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예컨대 교환 가능한 형태의 죽음, (삶의 부재가 아닌) 존재 방식으로서의 죽음, (한 순간의 단절이 아닌)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으로서의 죽음, 다시 돌아오기 이전 상태로서의 죽음, 임상학적, 생물학적, 영적으로 각기 다른 상태의 죽음에 대해 조망한다.


이 책에는 순서대로 「도주」, 「집에서」, 「추격」, 「내 친구들」, 「귀환」이라는 다섯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일반적으로 '도주'는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추격'은 뒤쫓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귀환'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죽음'과 '살아돌아옴'에 관한 이야기도 이런 형식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 이 소설은, 제 몸을 떠나 죽은 자의 영역으로 건너가는 사람과, 그의 흔적을 좇는 사람과, 이들이 다시 만나 삶과 죽음이 접촉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과정이다.렇듯 형식적으로 안정감 있게 배치 구조를 통해 독자는 예민하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쓰인 다섯 개의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파악 수 있게 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이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탈락되었을 언어의 결과 그에 따라 함께 누락되었을 감각과 정서들이다. 예컨대 이 책의 문장들은 때로 한 작가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변적인데, 극단적으로는 187쪽부터 191쪽까지가 한 문장으로 쓰인 것과 200쪽 한쪽이 약 50개의 문장으로 쓰인 부분이 그렇다. 나는 아마도 한국어로 번역된 텍스트 곳곳에서 올리비아 로젠탈이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나에게 불어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고 자료에 접근할 기회가 있다면, 원어로 쓰인 문장을 뒤져보는 것이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죽음을 매력적으로 다룬 소설은 많지만, 이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쓴 책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언어를 포함한 온갖 난해한 개념들의 장벽에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