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반응이론과 개츠비

로이스 타이슨, 『비평이론의 모든 것』 6장 - 「독자반응 비평」

by 달리

해석에는 정답이 없다. 얼핏 터무니없어 보이는 해석에도 일말의 타당성은 있다. 독자는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차 텍스트에 대한 자기만의 설명을 만들어내고, 이 설명은 적어도 그 자신의 인식 안에서는 안정되게 성립한다.


그러나 모든 타당한 해석이 동일한 정도로 진실에 부응하지는 않는다. 이는 진실이 일차 텍스트 안에 박제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텍스트를 매개로 하는 인간 삶의 진실이 보기보다 허약하고 유동적이며 상황의존적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진실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해석도 그에 맞추어 변해야 한다. 10년 전에 처음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처음과 완전히 다른 감상을 갖게 되는 것은 흔한 걸 넘어서 당연한 일이다.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7살 때의 해석과 40살 때의 해석이 같을 수 없는 이유는, 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는 삶과 세상에 관한 진실이 수십 년 시간 동안 꾸준히 바뀌고 재정립되어왔기 때문이다.


독자반응이론은 이처럼 텍스트를 대하는 독자의 서로 다른 반응이 어떤 식으로 성립하는가에 대해 유용하고도 흥미로운 준거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제각기 주관적으로 형성하는 해석에 주로 어떤 요인이 개입하는가에 대해서도 실험해 볼 만한 가설을 던져준다. 이론에 따르면 텍스트는 그 자체로는 완성된 문학이라고 볼 수 없다. 문학은 텍스트가 독자의 반응을 일으킬 때에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독자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작품 안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는 독자의 반응을 기다리는 텍스트이자 해석을 요하는 부호가 된다.


이는 '걸작도 읽혀야 문학'이라는 식의 농담과는 결이 다르다. 통상 문학의 담론 구조에서 독자의 지위는 작가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며, 독자 개인의 감상은 그것이 작가나 텍스트가 지정한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지는 순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독자반응이론은 이러한 관습적 구도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읽기 행위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의 이론적 토대가 되어준다. 간단히 말해, 독자의 읽기 행위는 작가의 쓰기 행위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제멋대로 쓸 권리가 있다면 독자에게도 제멋대로 읽을 권리가 있다. 작가의 쓰기 행위가 텍스트를 낳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독자의 읽기 행위도 텍스트를 낳는다. 그러므로 둘은 동등하게 해석하고 연구할 만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되며, 두 텍스트가 만났을 때 비로소 문학이라는 사건 또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독자의 읽기 과정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독자반응이론에 깊은 영향을 받은 연구자는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에 상대적으로 민감할 것이다. 표면적 독해와 심층적 독해를 촉발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독자가 작품에 건조하게 나열된 사실 너머의 의미를 숙고하고, 고도로 개인적인 메시지를 읽어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 여러 번 읽었을 때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같거나 다른 까닭은 무엇인가. 정보량이 거의 없는 텍스트가 독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면 이때 일어난 일은 문학적으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기록한 진술은 (정작 텍스트가 아닌) 독자 그 자신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는가.


이제 『위대한 개츠비』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개츠비는 덧없는 아메리칸드림의 화신일 수도 있고, 철없고 낭만적인 순애보의 은유일 수도 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개츠비를 특정한 가치를 투영한 존재로 간주하기까지 독자 안에서 일어난 의식적·무의식적 과정이다. 화자인 닉은 개츠비에 대해 긍정적일 때도 있고 부정적일 때도 있는데, 이렇듯 양가적인 태도는 정작 독자로 하여금 개츠비에 대한 판단을 유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독자는 이 작품을 다 읽은 뒤 개츠비에 대해 일정한 결론을 내리게 될 텐데, 그 결론은 이를테면 독자가 닉의 진술을 얼마나 신뢰했는지, 그리고 닉의 수많은 진술 중 주로 어떤 것을 채택하고 기각했는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당연하게도 개별 독자의 읽기 전략과 패턴화된 읽기 습관에 대한 관심을 요한다.


또는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누군가를 미친 듯이 사랑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각각 『위대한 개츠비』를 읽을 때 평균적으로 보이는 해석의 차이가 존재할까. 조사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지만, 심리적 독자반응이론에 따르면 문학 텍스트에 대한 반응은 독자 자신의 일상적·심리적 반응과 밀접하게 연결되므로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집착을 이해하는 범위도 두 집단에서 평균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리라 기대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같은 문학작품이라도 주로 어떤 독자층에 읽히는가가 중요한 연구주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20세기 미국인과 21세기 한국인의 평균적인 해석차가 존재할 수 있다. 아마도 확실히 존재할 것이다. 사회적 독자반응이론에 따르면 이는 우리가 텍스트를 대할 때 적용하는 해석 전략이 주로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는 기준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즉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사회, 문화, 역사적 요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그러므로 문학 연구는 작품이 쓰인 시대뿐만 아니라 읽히는 시대의 맥락 또한 중요하게 다루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문학 연구는 이런 작업들을 꾸준히 활발하게 해오고 있다. 그건 독자반응이론이 학계에서 특별히 중요한 취급을 받기 때문은 아니고, 그저 여러 이론의 가능성과 한계를 두루 탐색하고자 하는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흐름일 뿐이다. 어떤 이론도 모든 문학 담론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읽기 과정을 구체적으로 되짚어보는 작업은 텍스트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그로부터 촉발되는 문학적 숙고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한동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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