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강작가 Jun 25. 2020

결혼의 가격, 일생에 한 번인데

낭만적 결혼과 그 후의 책임

이 글의 부제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패러디하였습니다.



결혼에는 돈이 든다. 그것도 아주 많이. 곱씹을수록 뭔가 이상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겠다는데 웬 돈이 이렇게나 많이 드는가.


'스드메'가 수백, 수천 단위의 돈이 우습게 떨어져 나가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의 준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신선하게 놀라웠다. 고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웨딩 산업의 특징이 업자와 소비자의 언어에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60분 남짓하는 시간 동안 치러질 본식 예식장의 대관료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현실을 눈앞에서 목격했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때마다 필요한 계약서를 작성하러 찾아간 웨딩 사업장 곳곳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책의 권 수를 헤아렸다. 음. 이 돈이면 내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둔 수백만 원어치 책들을 한 큐에 쓸어 담을 수 있겠군. 그러고도 남는 돈으로는 컴퓨터를 바꾸고. 그다음에는…….


인터넷을 뒤져보니 적은 비용으로도 아름답고 뜻깊은 결혼식을 이뤄낸 야무진 커플이 많았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저 많은 걸 하나하나 따지고 챙길 만큼 세심한 성격도 못 되거니와, 기본적으로 로맨틱한 이벤트를 연출하는 감각 자체가 많이 처지는 내겐 아무래도 버거운 미션이었다. 역시 돈이 많이 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식장은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좀 비싸긴 해."

"어차피 비용에 큰 차이 없으니까 스튜디오는 여기로 하자."

"드레스 투어 한 번만 더 하자. 아직까지 딱 맘에 드는 게 없어."

"메이크업은 여기가 잘한댔어. 나랑도 제일 잘 맞을 거 같고."

"일생에 한 번인데 너무 아끼다가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해?"


많은 예비부부가 결혼 준비 과정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여러 대화를 나누게 되겠지만, 특히 저 마지막 말은 일종의 마법의 주문과 같다. 망설여지는 게 있다면 가만히 눈을 감고 조용히 일곱 음절만 읊조리면 된다. "일생에 한 번인데……." 그러면 방금 전만 해도 깊이 고민하던 문제가 인생의 장엄한 스케일에 짓눌려 납작해지면서 원하는 방향(돈이 좀 더 드는 방향)으로 결정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물론 결혼에 대해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과 색깔이 있어 모든 결정을 일사천리로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이런 주문이 필요 없다. 하지만 뭔가 긴가민가, 갈팡질팡, 애매모호한 상황에 빠졌다면 분명 저 주문이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결혼 준비 중 맞닥뜨릴 그 어떤 문제도 인생만큼 중요하진 않으니까. 다들 그렇게 풀옵션 아반떼 사러 갔다가 어리둥절하게 벤츠 한 대씩 몰고 나오는 거다.


결혼을 한 번 할지 두세 번 할지 어떻게 아느냐는 농담 섞인 반론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저 주문의 효력은 절대 바래지지 않는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고, 주문은 그 일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더해줄 뿐이다. 일생에 결혼을 두세 번 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은 주문의 디테일을 살짝만 손봐주면 된다. "일생에 고작 두세 번인데……." 또는 "일생에 처음 하는 결혼인데……." 간단하고 효율적인 것이, 근사하고 낭만적인 웨딩마치에도 아주 맞춤하게 어울리지 않나.


결혼식은 이 모든 명시적인 노력과 비용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그 노력과 비용의 절대적 크기보다 중요한 건, 그것들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후회와 미련을 최소화해야 결혼의 순간이 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저마다 자기네 스타일대로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버진로드를 지나오면, 이후부터는 진짜 결혼의 값어치가 얼만큼인지 깨닫는 시간이 찾아온다. 어쩌면 결혼 전에 지불한 가격이 조촐하게 느껴질 만큼 묵직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질지도. 결혼 이후에는 돈이 아니라 삶이 통째로 그 안에 실린다. 내 생각에는 결혼식 이후에 청구되는 책임의 무게가 결혼의 진짜 가격이다. 그 가치에 맞는 책임을 꾸준히 감당하며 딱 그만큼의 행복을 일궈나갈 수 있기를, 스스로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쇼핑, 뭐 그렇게 힘들 거 있나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