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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가 Jun 25. 2020

웨딩촬영, 생각했던 그림이랑 좀 다르네

스드메 삼각편대의 프로정신을 추억하며

웨딩촬영 날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아침 일찍 메이크업 샵에 들렀다. 미용실이라 부르기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샵 한 구석에 겸손하게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한산했던 새벽의 대로변과 대비되는 샵 안의 북적이는 공기가 생소했다. 오늘 찍는 사진이 모바일 청첩장과 예식장 포토테이블을 채우고, 신혼집 거실과 책장을 장식할 거라고 생각하니 새삼 결연해졌다. 오늘만큼은 최선을 다해 잘생겨지겠다고 다짐했다. 전날 인터넷을 뒤져 찾은, 스위트한 외모에 밝은 갈색 머리를 한 모델 사진을 핸드폰 사진첩에 담아 갔다. 모델의 앞머리는 약 5.5 대 4.5의 섬세한 비율로 갈라져 편안하게 컬이 들어가 있었다. 긴 대화는 필요 없었다. 이대로 해주세요.


가위컷으로 몇 군데 정돈한 뒤 바로 세팅에 들어갔다. 쉴 새 없이 드라이어를 돌리며 무슨무슨 도구에 몇 호, 몇 호 롤을 준비해달라고 지시하는 디자이너와 그에 보조를 맞추는 어시의 능숙하고 기민한 합이 믿음직스러웠다. 두 사람 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어시가 지시를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해 세팅이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곧바로 디자이너의 싸늘한 말이 가시 돋쳐 날아왔다. "못 들은 거예요, 못 들은 척하는 거예요?", "내가 인터폰 친 거 안 들렸어요?", "들렸는데 왜 대답 안 해요?", "기분 나빠요?", "그렇게 멍 때리고 하다가 사고 나면 책임질 자격은 돼요?" 고객인 내가 다 송구할 지경이었으니 당사자였던 어시는 참으로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허둥대는 어시가 안쓰러우면서도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고객 입장에선 단 한 번뿐인 웨딩촬영인데 샵에 맡긴 스타일링이 기대에 못 미치면 불만도 그만큼 강해질 테니. 그 디자이너 말마따나 느슨하게 일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고객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힐 게 뻔했다. 그들의 대화와 팀워크를 1열에 앉아 관람하며 '아, 이렇게 또 하나의 프로의 세계를 접하고 가는구나.' 따위의 실없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그들 사이에 오가는 날 선 말들은 나에게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가져간 사진 속 모델의 헤어스타일과 거울 속 내 머리 모양이 분초 단위로 서로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내 앞머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쥐고 양옆으로 질끈 잡아당긴 채 반나절을 보내면 딱 이렇겠다 싶은 느낌으로 스타일링이 굳어가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를 속으로 몇 번인가 되뇔 때쯤 디자이너님이 예의 그 서늘한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고객님 헤어랑 두상이 사진 속 모델 분이랑 많이 달라서요. 이 정도까지는 맞춰드렸는데 어떠세요?"

"네. 좋은 것 같아요."

"그럼 이대로 픽스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꼬박꼬박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앞머리 가르마가 홍해처럼 이마를 가로지르는 형국이었다. 대답이라도 똑바로 안 하면 이 모세의 기적이 어디까지 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다시 해달라고 하면 혼나겠지? 아니지. 내가 왜 이러나. 혼나다니. 그냥 추가 비용이 붙겠지. 아니지. 예약 인원이 이만큼 밀려있는데 다시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가능하겠구나. 그럼 그냥 내가 다시 만져볼까. 아니지. 돈이 얼만데. 그렇게 동그마니 앉아 의식의 흐름대로 넋을 띄워 보내던 와중에 메이크업을 마친 아내가 돌아와 내 머리를 보고는 한 마디 했다.


"오. 괜찮은데?"

"아 그래? 너무 이상하지 않아?"

"아냐. 아주 좋아. 나만 믿어."


믿든 안 믿든 일단 시간 맞춰 스튜디오로 갔고, 그곳 매니저가 아내의 웨딩드레스에 커피를 쏟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지만 어찌어찌 수습되었다.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기 전 긴장한 내 모습을 알아챈 사진작가님이 현란한 멘트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알고 보니 스튜디오에서 어색해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웨딩촬영을 주업으로 하는 사진작가는 다들 우쭈쭈 스킬과 멘트를 다양한 레퍼토리로 준비해서 다닌다고 했다. 직접 체험해보니 정말 효과가 좋았다. 그날 촬영하면서 멋지다, 핸섬하다, 눈빛 좋다, 모델 같다, 젠틀하다, 시크하다, 완벽하다 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다. 나에게 이렇게나 다양한 매력이 숨어있었던가. 그래. 너무 꽁꽁 숨어있어서 미처 몰랐던 거겠지. 자신감 차원을 넘어 자존감마저 높아지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 작가님은 메이크업 샵에서 만난 분들과는 또 다른 느낌의 프로페셔널이었다.


커플 촬영 사이사이마다 배치된 아내의 단독샷 촬영은 자연스럽게 나의 휴식시간으로 이어졌는데, 그때마다 거울 앞에 가서 헤어스타일을 짧게 점검했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썩 괜찮아 보였다. 작가님한테 하도 칭찬을 많이 들어서 아주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응삼이 아닌가 싶다가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구한말의 결기 어린 시인이 얼핏 보였다가, 또 다르게 보면 금세 시크한 차도남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스튜디오 쪽에서 내 메일로 보내온 작업 결과물을 볼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모두 내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된 착시였음을 깨달았다. 사진을 넘겨보다 본의 아니게 빵 터지고는 남은 미소와 함께 생각에 잠겼다. 역시 프로는 프로야.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날 늦게까지 프로정신을 발휘해주신 숨은 공로자 한 분을 빠뜨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바로 드레스 샵에서 출장 나오신 헬퍼님. 원래는 아내를 서포트하기 위해 오신 분이지만, 긴 시간 촬영이 이어지면서 미세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한 내 앞머리도 손을 좀 봐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단단히 세팅된 내 머리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한두 가닥씩 이마 앞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머리카락들에겐 불행하게도 우리를 따라오신 헬퍼님은 약간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스페셜리스트였다. 한 가닥 두 가닥 내려오는 족족 거침없이 도로 빗어 올려버리는 그분의 단호한 빗장수비 덕분에, 나는 끝까지 대쪽 같은 깻잎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꼭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결과적으로 우리 부부의 웨딩사진은 충분히 훌륭하고 만족스럽게 나왔다. 다만 그날 만난 스드메 삼각편대 분대장들 중 한 분만이라도 프로정신을 조금만 덜 발휘해주셨더라면, 내 헤어스타일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는 IF가 없다지만, 과거에 대한 사소한 아쉬움은 항상 부질없는 가정법과 함께 불현듯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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