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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마지막 주 일기

by 이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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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고 나서 볕이 좋은 날을 알게 되었다. 그저 맑거나 흐린 날이 아니라, 공기가 가볍고 빛 알갱이가 하나하나 반짝이는 그런 날. 눈을 뜨면 볕이 좋은 날인지부터 확인한다. 겨울엔 확실히 그런 날이 적다. 우연히 만나는 그런 날은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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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알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할 수 없을 거 같은 일에 도전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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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어동호회를 갔다. 유난히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누군가는 꺼내기 힘든 자기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그녀에게서 단 한 번도 슬픔을 알아차린 적이 없었다. 눈물이 없는 편이지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머리가 띵하도록 마음이 아팠다. 많이 놀랐고, 선뜻 위로할 수도 없었다. 선택하지 않았고, 더 이상 선택할 것도 없던 그 상황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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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택시를 타고 한참 달렸다.

아저씨가 몇 번 말을 걸려다 눈치를 살피더니 라디오를 켰다.

어쩐지 밖을 내다보면서 총을 잘 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면서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했다.

사람을 쏘는 것은 무섭지만 가로등 전구를 하나씩 맞춰 꺼보고 싶었다.


한편으론 질문을 했다.

죽음을 많이 보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쏴 죽일 수 있을까.

죄책감이란 무엇일까.

만약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끊임없이 교육받고 자라난다면

사람들은 죽여도 아무렇지 않을까.

종이를 구겨버리는 게 엄청난 아픔이라고 가르친다면

종이를 구길 때마다 마음이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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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몇 살이 될진 모르겠는데 결국 자살할 거 같아.

- 아 그런 소리 할 줄 알았어 ㅋㅋㅋ

ㅋㅋㅋㅋ

- 98세 이런 때 아냐? 의미 없게 시리. 살만큼 다 살다가ㅋ.

응, 그럴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난 내가 스스로 죽을 거 같아. 역시 넌 웃으면서 들어줄 줄 알았어.

하지만 꽤 진지하단 거도 넌 알 거야.

- 응 알아, 너다운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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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오는데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끼룩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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