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코스모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가슴 한편에'책 하나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대비한 책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교훈과 감동을 갖춘 책들을 몇 권 생각해두고 있다. 그런데 진짜로 영업하고 싶은, ‘읽고 나서 좋았던 책’은 따로 있다. 뭐가 좋은지 물어보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저 생각만 해도 책을 읽을 때의 감동과 희열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다.
이 책을 막 추천하지 않는 ‘벽돌 같은 두께의 과학책'이 주는 막연한 공포 때문이다. 396쪽을 자랑하는 페이지를 마주하게 되면, 이걸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막막함이 먼저 생긴다. 표지는 또 어떠한가? 큼지막한 제목 아래 우주 사진이 놓인 모습을 보면, 몇 번을 봐도 이해되지 않던 전공책이 절로 떠오른다. <인터스텔라>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얼마나 어려울지 눈앞이 캄캄하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강매하다시피 영업을 한 덕택에 겨우 읽을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겨내고 첫 페이지를 넘기면 기대와 전혀 다른 일이 생겨난다. 우리의 우주여행을 도울 가이드, 칼 세이건의 안내를 따라 그 경이로운 세계로 흠뻑 빠져든다. 태양계를 떠난 보이저 형제들을 비롯해, 인류가 쏘아 보낸 관측선들이 보내준 소중한 사진들이 기다린다. 게다가 걱정이 무색하게 말랑말랑한 텍스트를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덧 우주라는 무한의 공간이 독자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것을 깨닫는다. 티끝 만한 공간인 이 지구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덤으로 느껴진다.
이 책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평안하게 해 준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별들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다. 수십억 년이 지나면 태양은 적색거성으로 팽창한다. 그 영향으로 지구는 물과 대기가 사라진 죽은 행성이 된다. 태양뿐 아니라 모든 별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이 만들어낸 티끌과 먼지가 모여 새로운 별이 태어난다.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에도 별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렇게 끝없이 반복되는(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 끝날) 영겁의 순환에서 우리의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적어도 40억 년 뒤에는 이 공간에서 사라질 것이다'라는 생각은 삶과 선택에 대한 부담을 오히려 줄여준다.
책이 발간되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새로운 발견으로 변화된 과학 이론도 있을 것이고, 특히 제임스 웹 망원경 덕분에 우리는 더 정확하고 깨끗한 우주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코스모스>를 읽지 않았다면, 그 경이로운 우주의 비밀에 대해 호기심 이상의 감정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말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좋았던, 그래서 굳이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책. 나에게 있어 그런 책은 바로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