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책을 꽤나 많이 보던 한 친구가 무심코 말했다. 복학생, 한창 어른이 무엇인지 고뇌하던 시기에 들은 이 한 마디가 머릿속에 강한 울림을 주었다. 인기도서라 무려 2주를 기다려 도서관에서 빌리게 된 책. 바로 최초의 정치학 도서라고 알려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었다.
친구가 말한 어른이 되었다는 표현은, 어린 시절 당연하게 여겼던 '도덕적인 삶'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로렌초 디 메디치에게 바친 일종의 백서로, 당시 혼란한 이탈리아의 상황에 기반하여 군주가 가져야 할 여러 가지 덕목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 여러 가지 덕목을 알아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인류사에 이 책이 남게 된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안전하다'. '술책은 진실을 이긴다'. '필요하다면 전통적인 윤리 관념을 포기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인 '착하게 사는 것이 과연 군주에게 옳은 것인가?'를 인류에게 던진 것이다.
최근에는 '군주에게'라는 단어를 '리더에게'로, 나아가서 '삶에서'로 확대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불리는 세상의 정신이다. 이때 도덕은 철저하게 수단으로써의 가치만 지닌다. 예를 들어 불우이웃 성금을 내는 이유가 '연말정산 또는 절세를 위해' 또는 '선행을 하는 자라는 평판을 쌓기 위해서' 하게 된다. '실제로 도덕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인 척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군주론의 구절을 따르는 이러한 행위를 바로 '위선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결론은 결국 위선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적어도 그건 아니라는 것이 나의 견해다. 군주론의 문장들을 천천히 보다 보면, '마키아벨리즘'적인 문장 앞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유명한 비유 중 하나인 '사자와 여우의 덕목'을 살펴보자. 저자는 군주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계략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필요한 경우 짐승의 자질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도 함께 존재한다. 모든 상황에 대해서 사자와 여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폭력과 계략을 한정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 다른 문장들도 존재한다. 저자는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고, 무자비한 것을 덕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은 얻을 수 없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잔인한 조치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거에' 저지른 후 유익한 조치로 바꿔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들을 볼 때, 마키아벨리가 말한 참된 군주는 필요할 때만 도덕적인 척하는 '위선'이 아니라, 필요할 때에 한하여 잔인하고 교활한 '위악'을 잘 이용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군주론>에 대해서는 이후에도 만날 기회가 정말 많았다. 독서토론 동아리에 들어오는 신입회원마다 이 책을 읽고 싶어 했고, 정치학 수업에서는 아예 한 학기의 절반 동안 <군주론>을 교재로 쓰기도 했다. 회독을 거듭하며 내가 생각한 결론에 끝없이 질문을 던졌고, 대답을 구했다. 그럴수록 생각은 확고해졌다. '험한 세상을 버티기 위해 나쁘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냉정해야 한다'라는 생각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군주론>이 책으로 말한 것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부도덕한 자신의 탐욕을 명분으로 포장하는 사람,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권모술수와 처세라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는 달콤함에 매료된 이들에게 사람들은 경멸을 보냈다. 경멸보다는 두려움, 두려움보다는 사랑을 위해 짐승의 방법을 최소한의 방어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내린 '참된 어른이 되는 법'에 대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