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책 톺아보기> 프롤로그
위편삼절(韋編三絶), 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서 책의 가죽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고사성어다. 단 한 권의 책이 가진 모든 것을 흡수하기 위한 노력이자, 속독과 다독에 치우친 독서습관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나의 속도에 맞춰 책을 읽었다. 한 번 재미있는 책은 몇 번이고 붙잡고 읽어나갔다. 한 권에 한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었다. 서재 한켠에는 마르고 닳도록 가지고 놀다 너덜너덜해진 책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책 누더기'들이 버려지는 일은 있어도 새로 생기는 일은 없어졌다. 수능도, 대학도, 회사도 짧은 시간에 많은 텍스트를 소화하는 것을 요구했다.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였기에 시대의 요구를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책 하나에 집중하는 즐거움보다,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없는 기회비용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세상의 속도를 맞춰 책들을 읽어 '해치운 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 과잉 섭취한 텍스트 덕분에 나는 속독가, 다독가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공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게으름이라는 고질병이 합쳐지니 읽은 책에 대한 기록조차 남겨두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너무 늦기 전에 처음 책을 접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정독의 의미를 되찾기로 했다. 훑어가며 지나간 그 찰나의 순간에도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던 책들. 기억을 더듬어가며 다시금 천천히 읽어보려 한다.
이미 한 번 본 책과 다시 만난다는 것. 마치 오래전에 친했던 친구와 연락이 닿아, 약속을 잡은 그날 아침인 것만 같다. 다시 본다는 반가움이 크지만, 함께 있는 걱정도 숨길 수 없다. 책은 변함없이 서가를 지키고 있었지만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나도 겪고 있는 세상도 달라졌다. 교환학생 시절 무리해서까지 밀라노와 피렌체를 오가는 기차를 타게 했던 <냉정과 열정 사이>를 다시 읽는다면, 그 마음을 다시 떠올릴까? 아니면 실망하게 될까? 물론 걱정을 이유로 만남을 취소할 생각은 없다. 처음 읽을 때와는 다른 마음이더라도,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작가와, 그리고 인물과 대화할 것이다. 또한 그들로부터 느낄 감정의 변화는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쓰기 첨삭을 받다가, 지금의 다짐에 어울리는 문장을 배웠다. 인생책을 다시 톺아보는 독서여행을 준비하는 격언이자, 혹시나 중간에 방황하게 되면 다시 기준을 잡을 이정표로 삼고자 한다.
스쳐 가는 타인의 운명에도 깊이 동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도 모두 문학에 몰두한 덕분이 아니겠는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삶에 동승하고 그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 나는 점점 더 생생하게, 점점 더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책을 읽으며 누린 셀 수 없는 기쁨의 순간을 떠올렸다.
- 슈테판 츠바이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