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 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지난 가을에 아내가 예전에 함께 봉사했던 수녀님이 계시는 수녀원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강의 봉사를 하러 간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수녀님은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맞아 주셨죠. 단풍이 예쁜 수녀원 옆 솔뫼 성지를 한 바퀴 돌고 차담을 하는데, 저희 근황을 들어주시던 수녀님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남편 회사 그만둔 거 시부모님은 괜찮으시대?"
"네? 그럼요. 잘 선택했다고 좋아해 주셨어요."
"그래? 정말 다행이다. 나는 소식 듣고 걱정했잖아."
올 한 해 저는 20여 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다른 속도로 채우고 있지요. 아내와 함께 운동하고 글 쓰고 공부하고 강의 준비하고 아이들 챙기고 하면 시간이 금세 갑니다.
특히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친구와 보이는 모습과 성적이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아이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죠. 남들이 다들 가는 길이니 나도 따라가야 하는데 혼자만 늦은 것 같으면 순간순간 불안할 거예요. 그래도 인생은 길고, 저마다 다 길은 다르고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말로 전해도 지금 아이들 귀에 들어갈 리가 없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지금 자기가 보는 세상이 전부니까요. 운이 좋게도 편한 시절에 태어나 잘 살아온 부모의 조언은 오히려 부담입니다. 그러니 다른 수가 있나요. 그렇게 살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새로운 일상이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어제 제부도 둘레길을 도는데 큰 딸이 그러더군요. "나는 아빠가 이렇게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바다 보러 자주 오자고 웃는 모습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할 수 있게, 늘 지지해 주고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씀드려도 걱정되는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잘 됐다고. 수고했다고.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신 덕분에 저는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보고 배운 대로 그런 지지와 응원을 나누고 살겠습니다. 어수선하고 마음이 무거운 연말. 모두의 마음에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