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서 살아야 했던 저에게 아내와 처갓집은 낯선 서울에서 늘 따뜻한 집이었습니다. 남자 친구이던 시절부터 찾아가면 따뜻한 밥으로 반겨 주셨고 바깥 손님이라고 어렵게 대하는 모습에 아내가 어이없어하기도 했었죠.
아이들이 태어나고 손이 필요할 땐 30여 년 사시던 집도 정리하고 저희 곁에 와 주셨습니다. 집에 들르시면 늘 현관의 신발을 정리하시면서 신발이 가지런해야 복이 들어온다고 잔소리를 하셨지만 말만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늘 당신이 직접 움직이시고 필요한 일은 직접 하셨습니다.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긴 재활 기간에도 휠체어에 의존해서 재활 병원과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어머니는 품위 있으셨어요. 늘 도와주시는 분들께 따뜻하게 존댓말로 대하시고 힘든 재활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죠. 재활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같이 계셨던 도우미 분들의 눈물이 아직 기억이 납니다.
너무 황망하게 하루아침에 저희 곁을 떠나셨지만, 저는 저희가 지근에서 찾아뵙고 모셨던 지난 3년이 소풍 같습니다. 가물가물해지는 기억들 속에서도 늘 좋은 것만 기억하시고 같이 꽃도 보러 가고 맛난 것도 먹으러 다니는 시간들은 저희 가족 마음속에 고스란히 쌓여 있습니다.
아내는 어머니 모시고 마지막 자리에서 "제가 가진 좋은 것은 다 엄마에게 물려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어머니 보시기에 잘했다 하실 만한 결정을 하고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아도 괜찮다 해 주실 거라 믿고 하루하루 살아가겠습니다. 막내 사위 손을 늘 따뜻하게 잡아 주시던 어머니가 벌써부터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