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기차 시장은 아직 더 커질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해외 진출하려면 든든한 본진이 필요하다.

by 이정원

트럼프 관세로 미국으로의 수출이 줄어들면서 울산 현대 공장이 일시 생산 중단에 들어간다는 뉴스가 들린다. 특히 미국이 전기차 보조금 등 지원도 끊기면서 전기차 수요가 줄어 수출물량이 줄어들었다. 거기에 현지 생산한 전기차가 더 경쟁력이 있다 보니 조지아에서 생산을 시작한 모델들은 더 이상 한국에서 가져올 필요가 없어졌다. 큰돈을 투자해서 지은 공장이 놀고 있으니, 자동차 회사도 배터리 회사도 모두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이미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는 미국을 시작으로 시작된 무역 전쟁은 생산 기지의 현지화를 강제화하고 있다. 수출의 첨병으로 국내 경제를 이끌어 왔던 우리나라 자동차 공장에게 닥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수 시장에서 버텨 주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2025년 상반기 적어도 전기차 시장에서는 이런 회복세가 눈에 띈다.


그림1.jpg


KDI에서 공개한 4월까지의 자동차 시장 동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내수 판매는 3.8% 늘었지만, 수출량이 4% 감소하면서 전체 생산량은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미국 보편 관세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 5월임을 감안하면 상반기에 전체 자동차 생산량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내수 시장 특히 친환경 차량의 판매량 추이를 보면 분위기가 다르다. 작년부터 이어져 오던 하이브리드 강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5월에는 전년 대비 전기차가 46% 증가했다는 보고도 나오는 것을 보면, 순수 전기차 시장은 올해 상반기에 2024년 대비 40% 이상 성장할 것이 확실하다.


그림2.jpg


개별 모델들의 판매량 순위를 살펴보면, 국산차들의 선전이 반갑다. 5월까지 국내 판매 전기차 순위를 보면, 기아의 소형 SUV EV3가 10,641대로 1위를 차지하고, 그 뒤를 아이오닉 5가 5,142대로 뒤따르고 있다. 동급인 EV6가 4,081대로 3위인 가운데 경차인 캐스퍼 EV와 레이 EV가 3,902대와 3,229대로 뒤를 잇고 있다. TOP5에 늘 이름을 올리던 테슬라 모델들이 사라진 것을 보면, 국내 전기차 시장도 실용적인 차량들이 위주로 판이 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작년 여름 인천 청라에서의 전기차 지하 주차장 화재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나면서 중고차로 전기차가 싼값에 나오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소비자들의 불안한 마음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은 화재에 대응하는 안전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면서 홍보에 나섰던 성과가 조금씩 전기차 시장 활성화로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 보조금을 받으면 3천만 원대 초반에 구입 가능한 준중형급의 국산 전기차 모델들이 연이어 출시하면서 작년의 위기를 딛고 새롭게 활력을 찾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부쩍 늘어난 전기차 택시도 한몫을 하고 있다. 길을 가다 보면 예전과는 달리 전기차 택시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택시 기사님들에게 여쭈어 보면 연료비가 LPG 대비 3분의 1 정도밖에 들지 않고 정차 대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정숙해서 좋다는 평이 많다. 거기에 오일 교환하고 냉각수 등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들지 않아서 더 경제적이라며 아이오닉으로 주문했는데 물량이 없어 코나로 받았다고 아쉬워하시는 이야기도 들었다. 응답성이 좋아 운전하기 편한데,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손님들이 오히려 전기 택시를 선호한다고 한다.


길 위에서 차와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기사님들의 인식 변화는 일반 소비자들의 선택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다. 예전 삼성자동차 초창기에 SM5 차량이 처음 나왔을 때, 일반 소비자들은 생소한 브랜드에 주저하자 택시 기사님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직접 운전해 보고 관리해 본 기사님들로부터 고장 없는 차라고 소문이 나자 매출이 뒤늦게 올랐던 것처럼 전기차도 그렇게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낯설어서 망설이던 사람들도 간접적으로 겪어 보면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림3.jpg


이런 성장세를 반영하듯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전기차 구매에 제공하는 보조금들이 고갈되었다고 한다. 판매량으로만 보면, 상반기 내수 판매량에 9% 밖에 판매되지 않았는데 이미 보조금이 고갈되었다면 이대로 두면 2025년 하반기 전기차 판매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기차 무한 경쟁 중인 중국은 차치하더라도 15%에 달하는 유럽과 전기차에 각종 혜택이 사라지고 있는 미국도 8.7% 수준은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전기차 내수 시장은 우리나라 전기차 산업의 수준에 비해 너무 규모가 작다.


어떤 사업이든 든든한 본진은 확장의 기본이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높아져 가는 국제 정세를 감안하면 든든한 내수 시장은 우리 기업들에게는 성장을 위한 보험처럼 도전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 준다. 전기차를 만드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만드는 세계적인 회사를 셋이나 보유하고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회사도 다수 보유한 나라에서 내수 시장의 10%도 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은 내연기관차에 비해 비싼 전기차의 가격을 감안하면 빠른 추경을 통한 전기차 보조금 예산 확보가 필요해 보인다. 거기에 전기차 충전금액을 절약할 수 있도록 심야 전기 충전료를 인하한다거나, 공공 충전 시설을 더 늘린다거나 도심을 다니는 대중교통이나 업무용 차량의 전기차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환경뿐 아니라 경제를 위해서라도 새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을 기대한다.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은 아직 더 커질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자동차 산업 전용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올린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전세계에 자동차를 직접 만드는 나라도 드물지만, 전기차를 잘 만드는 나라는 더 희귀합니다. 이 희소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이 좀더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https://autowein.co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희토류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중국을 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