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를 많이 운영하면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3~4년 전쯤 당장이라도 자동차들이 모두 전기차로 전환될 것처럼 떠들썩하던 시기가 있었다. 배터리 회사들의 주가는 연일 치솟았고 여기저기서 공장을 지어달라는 로비가 넘쳐났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무색하게도 전기차 보급률은 10% 남짓한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전기차를 원하던 사람들은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아 머뭇거리면서 대안으로 하이브리드를 찾고 있고, 이유를 찾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캐즘이라는 용어를 가져와서 얼리 어댑터를 넘어서야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진짜 전기차가 왜 안 팔리는지를 이해하려면 전기차가 많이 팔리고 있는 나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전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는 노르웨이다. 그 뒤를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잇고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인 중국은 27%가 넘는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NEV 기준으로는 40%를 넘어섰다. 그에 비해 유럽 본토는 15% 정도, 한국과 미국은 10%가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중 1위인 노르웨이는 전기차 보급에 진심인 나라다. 노르웨이에서 전기차를 사는 사람에게는 취등록세와 25%에 달하는 부가가치세가 모두 면제된다. 노르웨이의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인 페리 요금과 고속도로 통행료도 할인받을 수 있고 버스 전용차선 주행도 가능하다. 게다가 수력발전으로 값싼 전기를 얻는 노르웨이에서는 가정용 충전기의 충전 요금도 아주 저렴하다. 대신에 내연기관차에 대해서는 가혹한 정책들이 적용된다. 각종 세금들을 모아 보면, 차를 살 때 내야 하는 세금이 50%에 달한다. 산유국이지만 기름값에 세금을 높게 매기다 보니 휘발유 가격도 높다. 차를 구매할 때 세금도 많이 내는데 유지비도 몇 배나 많이 들다 보니 사실상 전기차를 안 사면 바보인 수준의 혜택을 제공하는 셈이다.
중국은 어떠한가? 2023년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했다가 전기차 판매가 크게 위축되는 것을 본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이구환신이라는 소비 촉진 보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오래된 차를 폐차 또는 교체 후 신차 구매 시 보조금을 주는 이 제도를 통해 30%에 달하는 전기차 보급 비중에도 꾸준히 전기차를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기차가 가장 비싼 이유 중 하나인 배터리 산업에 대한 지원이 엄청나다. 공장을 짓는 기업 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양극재와 리튬 등 소재의 공급도 정부가 관여한 루트를 통해 다른 나라보다 저렴하게 수급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이미 반값 수준을 달성했다. 저용량의 소형 전기차의 경우 보조금을 포함하면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하고 거기에 대도시에서는 번호판 발급이나 주차장 등록 등에 있어 전기차에 우선순위를 주고 있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기차를 더 선호하게 된다.
이렇듯 전기차가 특별하게 많이 팔리는 나라들의 비결은 바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있다. 그럼 노르웨이와 중국은 왜 전기차를 그렇게 절실하게 지원하는 걸까? 친환경 국가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혹은 미래 산업에서 앞서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두 나라의 전기차 보급률과 일치하는 수치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전기를 만드는 발전 용량 중 친환경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피요르드 지형으로 유명한 노르웨이는 수력 발전이 주력이다. 사용하는 전력의 90% 이상을 수력 발전을 통해 만들 수 있다. 남는 전력은 인근 국가에 수출도 한다고 하니 에너지원으로서 전기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전체의 58%에 달하는 발전을 화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지만, 중국은 빠르게 수력/풍력/태양광 등 친환경 발전의 비율을 2024년 기준 30%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 두 나라가 전기차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남아도는 전기 에너지를 이동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친환경 발전은 발전양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바람이 언제 불지 모르고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친환경 발전을 통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하려면 평균적인 수요보다 전력 생산량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과잉 생산되어 남는 전기를 어떻게든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는 전력 그리드 상에서 훌륭한 버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가정용 충전기에서 심야에 충전하는 전기차는 남아도는 전기를 담아주는 창고 역할을 한다. 쌍방향 충전기를 이용하면 한낮에 필요한 전력이 피크일 때는 부족한 양을 전기차에서 가져다 쓸 수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충전했다가 비싸게 파니 오히려 돈을 벌어서 좋고 국가는 친환경 발전량을 최적화할 수 있어서 좋다. 중국과 노르웨이는 국가 경영을 위해 전기차가 필요했고 사람들이 원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공식은 다른 나라에도 적용된다. 북대서양의 파도와 바람으로 친환경 발전이 유리한 서유럽은 15~20% 남짓한 친환경 발전 비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전기차가 보급되고 있다. 셰일 가스로 인해 원유량이 남고 친환경 발전이 10%가 채 되지 않는 미국은 전기차 보급률도 10% 미만이다. 한국은 올해 친환경 발전이 10% 근처에 겨우 달성했고 전기차 보급률은 상반기에 딱 11% 수준에 도달했다.
결국 전기차보다 친환경 발전이 먼저다. 전기차가 많이 팔리려면 전기차가 많이 보급될수록 유리한 지형이 만들어져야 한다. 캐즘의 한계는 정부가 지원하면 풀 수 있다. 한국도 만약 석유가 리터당 4천 원이 되면 아무리 전기차가 천만 원 이상 비싸도 지금보다 몇 배는 많이 팔릴 것이다. 관건은 전기차를 많이 운영하면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다. 친환경 같은 와닿지 않은 가치보다 실제로 국가가 얻는 이익이 있어서 예산을 투입할 수 있고 그래야 사람들을 전기차로 이끌 수 있다. 다만, 지리적으로 풍력/조력/수력/태양광 등 친환경 발전을 늘리기에는 제한이 있는 여건을 감안하면 전기차 보급률도 결국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도 개인도 이득이 되어야 변화를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자동차 산업 동향 전문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전기차는 확실히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성장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은 실제 국익에 이득이 있어야 속도가 붙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