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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Jan 31. 2024

피싱, 당해보니 공익광고 <시민덕희>

시민덕희 (2024) - 박영주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관적인 해석 또한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잘못 아니야. 절실한 사람들 등쳐먹는 놈들이 잘못한 거야.”


    영화는 김덕희(라미란)가 받은 전화 한 통으로부터 시작된다. 대출이 가능할 거 같다는 손 대리(공명)의 전화였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세탁소를 운영하던 덕희. 어느 날 세탁소에 화재가 일어나며 덕희는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고, 앞날이 막막하던 때에 대출마저 받을 수 없다는 은행의 통보를 받는다. 위태롭게 세탁 공장을 다니며 아이들을 책임지던 덕희에게 손 대리의 전화는 유일한 희망이다.


    영화는, 간절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보이스피싱의 정석적인 스토리를 제시한다. 덕희는 돈이 절실하고, 손 대리도 돈이 절실한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모두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한 인물이다. 덕희는 먹고살기 위해, 손 대리는 살아남기 위해. 결국 둘의 생존을 꽉 쥐고 있는 매개체가 돈이다. 


    덕희는 결국 손 대리의 보이스피싱에 완벽히 낚이게 되며, 없는 형편에 사채까지 써서 바친 수 천만 원을 통째로 잃어버린다. 만약 영화가 단순히 돈을 잃은 소시민이 범인을 잡기 위한 영화였다면 개연성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영화들과 다를 바 없는 보이스피싱이 주제인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작은 덕희가 모든 걸 잃었을 때 시작된다. 


    경찰서를 오가며 수사를 재촉하던 덕희에게 또다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바로 자신에게 보이스피싱을 했던 손 대리. 고함을 토해내는 덕희에게 손 대리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자신이 직접 보이스피싱 조직을 제보하겠다는 것. 손 대리는 덕희에게 사과하며 자신을 살려달라고, 제발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영화의 특이점은 바로 이 장면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손 대리가 많은 피해자 중 덕희를 뽑은 이유. 그것은 덕희가 가장 빠르게 돈을 송금하고 행동한 사람이며 절실한 정도로 다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 


    영화의 초반 부분만 봐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잘 드러난다. 덕희는 수천만 원을 8번에 나눠 보내라는 터무니없는 요구에 응하여 돈을 보내고 피싱을 당한다. 이는 현재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늘어나는 이유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장면이다. 현대 사회는 고도의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끊이지 않고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소액결제 통지부터 가족 사칭, 택배 사칭 등. 매일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보이스피싱 피해자도 생겨나는데, 과연 피해자들은 정말 보이스피싱의 존재를 몰랐을까. 알면서도 당하는 보이스피싱. 사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피싱이 결국 덕희와 같은 결과를 초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김선 감독의 영화 ‘보이스(2021)’가 떠올랐다. 영화 보이스가 전형적인 범죄물 클리셰를 가지고 가며 액션을 중점으로 보이스피싱을 다룬 영화라면, 시민덕희는 코미디 요소를 절묘하게 섞어 진입장벽을 낮추고 다소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두 영화 모두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주인공이 직접 가해자를 잡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보이스는 액션 위주의 폭력적인 장면이 다소 많은 편이고, 시민덕희는 덕희가 끝까지 폭력 한 번 쓰지 않으며 기발하고 유쾌한 방법으로 총책을 잡는다. 보이스피싱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다뤘지만, 두 영화는 결 자체가 다르고 장르 또한 갈라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결말이다. 사실 이런 장르의 영화 결말이 매번 정해져 있는 느낌이고 그걸 벗어나는 연출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총책이 비교적 쉽고 허무하게 잡혔으며 권선징악의 결말을 연출하기보다는 실화와 비슷하게 연출하여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까지 다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돈 터치, 뻐큐, 오케이?”


    영화 <시민덕희>는 영화 <1킬로그램>, <선희와 슬기>등을 연출한 박영주 감독의 첫 상업 영화이다. 박영주 감독은 단편영화 <1킬로그램>으로 칸에 다녀온 전적이 있으며, 첫 장편인 <선희와 슬기> 역시 호평을 받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예테보리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강한 인상을 남긴 감독이다. 사실 <시민덕희>는 2017년부터 작업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상당히 밀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자 속앓이를 꽤나 했겠지만, 그 사이에 배우 염혜란, 안은진, 이무생 배우가 출연한 각각의 작품이 연달아 대박을 치며 체급과 폼이 17년도와 다르게 훌쩍 커버렸다. 이로 인해 완벽한 전화위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배우진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주인공인 라미란 배우는 각종 수상경력을 겸비하고 여러 주연과 조연을 맡으며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손 대리 역할의 공명 배우도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천만 배우에 이름을 올린 인물답게, 손 대리라는 인물을 잘 보여준다. 덕희(라미란)와 함께한 세 명의 배우 역시 인상적인데,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라 해도 손색이 없는 염혜란, 영화에서 감초 역할을 잘 수행한 장윤주, 개성 있고 매력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안은진. 마지막으로 카리스마를 겸비한 묵직한 연기를 보여준 최종빌런 이무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배우진이 스크린을 빛내준다. 영화 중반 부분까지 등장하는 이주승도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크게 일조한다. 라인업만 봐도 실패하기는 힘들 정도이다. 


    이 영화가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실화기반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영주 감독이 인터뷰에서 직접 말하기를, 이 이야기(실화)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다루기로 결정했다고 하였다. 


    영화의 주 모티브가 된 실화는 2016년 화성시 김성자 씨 사건이다. 하지만 실화는 영화가 주는 통쾌한 감동과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다. 제보를 받은 김성자 씨가 경찰서에 이를 알렸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비웃었으며, 총책의 본명과 인적사항, 총책의 입국 날짜 등 각종 자료를 전달했음에도 경찰서는 이를 무시했다. 김성자 씨는 결국 직접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총책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들을 수집하여 경찰서에 제출, 경찰에서는 이 자료를 토대로 총책을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가 정말 가관인데, 경찰서에서는 검거 사실을 김성자 씨에게 알리기는커녕, 신고 보상금 1억 원 또한 누락시키고 이 사건을 취재하던 방송사한테는 바빠서 까먹었다며 핑계대기 바쁜 자세를 취한다. 뒤늦게 경찰 측에서 김성자 씨에게 10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지만, 김성자 씨는 이를 거절하고 경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실화를 알고 보면 결말이 더 아쉽게 다가오며,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스피싱의 가해자는 분명히 총책과 일당들이지만, 피해자를 무시하고 덮기에 급급했던 경찰 또한 2차 가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를 다루지만,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과 일침 또한 가볍지 않게 담겼다면 무게감 있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가 됐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랬다면 감독이 연출한 코미디적 요소가 어중간하게 떠다녔을 것이며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이는 이런 공익적 영화의 부수지 못한 한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비교적 호평이 많은 추세이다. 시사회 때부터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으며, 사실적인 묘사들과 조직의 세부적인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코미디 요소 또한 준수한 편이다. <시민덕희>라는 영화 제목과 어울리게 덕희 일당이 총책을 잡아내는 장면도 유쾌하게 풀어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결말 부분이 아쉬운 것 빼면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편. 


    개봉 1주가 지난 시점, 흥행 또한 평탄하게 이어가고 있는 편이다. 기존에 상영하고 있던 영화들이 스크린에서 내려가고, 기대작인 <웡카>가 개봉 이전인 점을 감안하여 개봉 시점 선택은 탁월한 편. 대부분의 개봉예정작들이 설날을 겨냥하고 있다면, <시민덕희>는 설 이전, 스크린이 비었을 때 관객수를 사로잡는 선택을 한 셈이다. <시민덕희>와 개봉한 <도그맨>, <세기말의 사랑>에 비해 긍정적인 지표를 띠고 있으며, 손익분기점 넘기기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야 이 개XX야. 대한민국 경찰이 다 너 같을까 봐 겁난다.”


    이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든 생각 하나. ‘피싱, 당해보니 공익광고.’ 재밌고 흥미로운 소재, 화려한 배우진, 적절한 개봉 시기. 삼박자를 아울러 영화관에 던져진 <시민덕희>라는 미끼. 미끼를 덥석 물고 영화를 보니 끝은 공익광고였다. 낚이는 순간 맛있는 미끼에 기분이 좋았지만 결말이 슴슴하여 아쉬웠던 영화. 코미디 요소가 많이 섞인 이 영화라면 엔딩 장면도 훨씬 더 재밌게 풀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권선징악에 이어 감성적인 무드가 섞인 엔딩 장면은 한참 재밌게 보다가 맥이 탁 끊겼다. 그럼에도 영화는 전체적으로 재밌었다. 정말 딱 가볍고 편안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나온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기에 감탄을 자아냈고, 중간중간 나오는 코미디 요소가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자칫하면 무겁게 빠지기 십상이고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나온 보이스피싱 주제로 잘 소화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뭔가 정말 재밌게 잘 만든 공익광고 한 편을 본 느낌.      


    ‘범죄물 + 공감(현실적) + 권선징악’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들어가면 공익광고가 되는 건 이제 피할 수 없는 공식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실제로 관객들은 최종빌런을 잡는 것에서 통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권선징악의 장면을 연출해야 찜찜하지 않게 정의가 승리한다는 여운을 준다. 때문에 결말이나 전개에서 낯설게 하여 도박을 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일 터. 공익적 영화의 한계이자 아쉬움이 남는 점이다.  


    쿠키 영상은 없다. 당연히 단편으로 끝날 내용이고, 굳이 나온다면 덕희의 후일담 정도였다. 영화가 끝나면 크레딧에 박수를 한 번 보내고 바로 상영관을 나오면 될 거 같다. 




    좋은 배우들로 보기 좋게 잘 만든 공익광고 영화 한 편. 피싱, 당해보니 공익광고라는 한 줄 평을 남기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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