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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도 아이들이 내 목소리를 기억할까요

(13) 글은 기억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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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님과의 스토리 마이닝 과정을 복기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 글이 기타를 좋아하고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깃을 넓히는 구체적인 디테일을 찾아야 했다.


"S님, 기타에서 처음 어렵다 싶었을 때는 언제예요?"

"악보에 샾이랑 플랫이 나올 때죠."

대한민국 의무 교육에서 음악 수업을 들었고 피아노를 배운 나는 기타는 초보초보여도 악보는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전 국민이 음악에 관심 있는 건 아니니 더 친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요, 청취자들이 모두 악보 읽기아는 건 아니니까 샵과 플랫을 좀 풀어주면 좋겠어요."

"음... 뭐가 좋을까요?"

"샵은 반올림인데 우물 정자(♯) 모양으로 생긴 거고, 플랫은 반내림인데 알파벳 소문자 b(♭)처럼 생겼다. 이렇게 넣어주면 독자들이 모두 쉽게 이해해요."

이 문장이 불필요하다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독자들의 사랑과 완독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샵, 플랫 정리는 되었고, 그다음 이 두 음악 부호를 어떻게 기타 치는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에 녹여낼지 생각할 때다.

"샵이 반음 올리는 거면 인생에서 우리가 즐겁고 기쁘고 보람 있는 순간에 비할 수 있잖아요. 그런 순간들 기억 나시죠?"

S님이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 태어난 순간이죠. 우렁찬 울음소리 들었을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샵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붙기도 하죠? 그런 아주 더 강력하고 통쾌한 순간도 생각해 보시겠어요?"

"아들이 뚱뚱해서 초등학교 때 놀림을 많이 받았는데, 초등학교 축구시합에서 골을 두 개나 넣었어요. 그날 이후 친구들의 장난이 뚝 멈췄죠. 진짜 기특하고 통쾌했어요."

S님의 얼굴은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아, 또 있어요! 아이들이 태권도 검도 배우며 꽤 잘 참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자. 그럼 이제 플랫으로 들어갈 순간이다.

"반음 올리고 그다음엔 내려 볼까요... 플랫, 인생에서 마음 아프고 다운되었던 때도 기억 나시죠?"

"아들이 5살 때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때도 그렇고.. 아들의 고등학교 진로로 고민했던 모습도 기억나고요. 일에 미쳐서 흔한 가족여행도 간 적이 없었던 때. 아버지로서 함께해주지 못했던 순간들... 너무 많습니다."

"아들들 키우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참 많으시겠어요. 저는 딸 하나여서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요. 더 알고 싶어요. 뭔가 더 말로 표현하지 않은 무엇이 있을 것 같고."

"좋은 기억들은 사진으로 남고, 힘들었던 기억은 가슴속에 남는다고 하잖아요. 아버지들은 더 그렇죠."


아, 여기서 내가 놓치면 안 될 지점이 있었다.

"샾과 플랫을 아들들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신 건 처음이에요?"

"네, 오늘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참 신기하네요."

그리고 이 순간 나는 확신했다. S님의 이야기가 개인적인 회상을 넘어선다는 것을. 독자와의 접점, S님의 기타가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는 성찰 한 조각이 있다는 것 말이다.

"기타를 치다 보니 알게 됐어요. 올라가는 기억과 내려가는 기억이 모두 아름다운 멜로디가 될 수 있다는 걸요."


"S님이 기타를 통해 아들들에게 전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요?"

"이젠 이 멋진 악기로 아이들에게 '아들, 오늘 어땠어?'라고 말도 건네고 같이 듣고 싶어요. 그리고... 내 목소리와 멜로디를 듣는 순간만큼은, 이 무뚝뚝한 아버지도 그들 삶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받길 바라요."

"주인공까지는 안될 것 같은데요..."

"그럼 조연?"

"그냥 벽지"

"그럼 배경 음악"

한동안 농담을 주고받으며 수업이 끝났다.


샾과 플랫이라는 음악 기호에 아들들의 성장 과정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아버지, 기타와 노래를 통해 아버지로서의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간절함...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들의 속마음과 겹쳐진다.


나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독자의 이야기로 확장한 글 <기타와 두 아들>의 스토리마이닝 사례다. 이렇게 해서

구수한 부산 사나이의 중후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샾과 플랫 이야기가 독자와 만났다. 두 아들이 평생 간직할 아버지의 디지털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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