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 출산과 육아로 나를 포기했던 삶에서 벗어나기로 했다_
20대가 인생이 망가질까 봐 두려워 좌충우돌하던 시기였다면, 30대에는 망가진 인생조차 수리할 수 있는 마음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텅 빈 폐허에서조차 과감하게 인생의 주춧돌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삶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 막 떠나보낸 나의 30대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정여울/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中
결혼 후 출산을 하며 30대의 길에 들어섰다. 임신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도 다반사였다. 당시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나는 임신 초기 지독한 입덧과 절박유산을 거치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2년이 보장된 회사를 내 손으로 사표 쓰고 나와야 했다. 출산 후 4개월 만에 나는 다시 취업을 했고 워킹맘이 되었다. 당시 남편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나는 경제적인 책임을 갖고 있었고 도움을 받을 일가친척도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다. 결국 100일이 된 딸아이를 순천에 있는 시댁에 맡기고 6개월간 직장을 다녔다. 매주 아이를 보러 가기 위해 주어진 일을 마무리하려고 매일 야근을 했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횟수도 많았다. 아이를 보러 가는 금요일에 야근을 하게 되면 밤 10시까지 일을 마치고 11시 막차를 타고 4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순천에 갔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업무는 계속 넘어왔고 결국 아이를 보러 가는 토요일, 일요일마저 출근 대기를 요구받으며 주저 없이 사표를 썼다. 일은 중요했지만 내게는 가족이 더 중요했다.
이미 인생을 살아온 현자들의 인생에 대한 또 육아에 대한 조언이 담겨있는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라는 책에서는 아이와 평생 가는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오직 시간뿐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필요하다면 희생도 마다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요즘 자기계발서나 언론매체에서는 너무나도 육아와 일의 양립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를 과대포장(적어도 한국사회에서)하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마치 몇 년 전 나쁜 여자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나쁘게 사는 것이 훨씐 멋지다고 가장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일과 자존감 땔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이건 언제든 다시 내가 용기를 내면 시작해 볼 수 있다. 물론 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말이다. 그러나 흘러버린 아이와 부모 유대감 형성의 황금기인 유년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중요한 시간을 오로지 나만의 성취감만을 위해 살고 싶지는 않았다. 스스로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라는 단단하게 다졌던 벽을 무너뜨리며 그 자리를 아이를 위한 시간으로 내주었다.
회사를 그만둘 무렵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지금 그만두면 일자리를 구할 수는 있겠어요?'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은 생길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경력과 커리어를 보여주며 연봉은 줄이고 근무시간은 단축하여 지원했고 결과는 좋았다. 회사의 규모는 이전에 다니던 곳보다 훨씬 작았지만 오후 4시 30분에 퇴근이 가능 한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약 1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 일과 육아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었다. 이후 학생이었던 남편이 졸업을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사택에서 가족이 살아야 했다. 나의 직장생활을 유지하기에는 상황이 애매했다. 근처 어린이집은 3월에 입학이 가능해 약 3개월간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아이 어린이집 변경과 이사가 겹치면서 1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이후 경제적인 부담에서 벗어나 전업주부로서 육아에 전념하다 파트타임으로 육아를 병행했으나 갑작스러운 급성 위염이 찾아와 다시 일을 그만두었다. 위염으로 마지막 사표를 쓰며 이상하게도 어쩌면 이제 다시는 회사에 속한 구성원으로 일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9개월 동안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전업주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출산 이후 여자의 삶은 남자보다 더 다이내믹하다. 때로는 워킹맘으로 때로는 전업주부로 또다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육아를 하고 프리랜서가 되었다가 다시 전업주부가 된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근 10년간 같은 분야에서 쌓아온 커리어를 통해 '나의 성취감과 자존감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출산 후 만 3년의 시간을 바쁘게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그 무대가 나에게는 그럴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시작했다. 먼저 아이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애착을 만들고 싶었고, 지금까지 한번 보고 버려지는 소모적인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회의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대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할 수도 없던 30대의 길 위에 나는 서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전업주부의 삶이란 나를 포기한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의 출근과 아이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시키고,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그날 저녁은 무얼 먹을지 생각하고 미리 요리를 했다. 나를 위해 밥을 하는 건 귀찮아 점심은 대충 되는대로 먹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2시간가량의 여유시간이 주어지면 인터넷 쇼핑에 빠지거나 리모컨을 돌리며 예능프로를 봤다. 언제부턴가 내일도 똑같은 지금의 일상이 찾아올 것이 싫었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랬다. 30대 중반이 된, 나의 모습은 완벽하게 텅 빈 폐허가 되어 있었다. 꼭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은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업이라 여기던 그래픽 디자인에 매여있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모든 시간을 나의 도전을 위해서만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20대 젊은이를 위한 지침서는 많은데 30대가 되어 달라진 환경 안에서 그리고 20대에 세웠던 커리어를 과감히 버리고 제로 베이스에서 꿈을 찾으려니 막막했다.
두 개의 길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 길은 넓었고, 오간 발자국도 많았다.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었다. 20대의 길이었다. 다른 길이 보였다. 길은 좁았고 누군가 걸어간 흔적도 많지 않았다. 20대 때 열망했던 꿈들이 모두 사라지고 새롭게 30대가 되어 꿈을 꾸려하니 먼저 내 앞을 걸어간 이가 많지 않았다. 2017년 4월, 그날 이후 나는 무작정 서점에 가기 시작했다. 다시 꿈을 찾는 나의 마음에 한줄기 희망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 제 이야기는 <30대, 내 삶은 여전히 눈부시다 2>에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