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착한여성들 Mar 18. 2023

이렇게 된 이상, 해보겠습니다!

'이상'에 대하여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몇 달 전 SNS에서 본 ‘어떻게든 해내는 여성들 모음’ 영상에서 배우 박은빈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30초 남짓한 짧은 영상에는 박은빈 외에도 태연, 아이린 등 우리가 TV에서 자주 보는 연예인들이 등장했는데, 하기 어려운 일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그래도 해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이겨 내고자 하는 모습들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었다.      


  순간 '이미 유명해진 연예인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 나태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려면 하기 싫은 일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구나. 쉽게 포기하는 마인드는 버려야겠구나. 저런 사람들은 꾸준히 이겨 냈으니까 지금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멋진 여성이 된 거구나. 영상을 보는 30초 동안은 짧게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 사람들과 달리 귀차니즘과 무기력이 바탕으로 깔려 있는 나는 눈떠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전날 계획을 세우고 자도 다음날 일어나면 도루묵. 10분만 더 자야지, 하다가 대낮에 일어나 버려서 전날 세운 계획을 절반 정도 날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도 함께 밀려온다. 늦장 부리는 일 없이 제시간에 벌떡 일어나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운동도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는 삶을 언제나 꿈꾸지만 성공하는 날은 극히 드물다. 이런 삶이 나에게는 이상적인 삶이다.     

 





  이런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한 노력도 해보지 않고 ‘난 저런 사람들이랑 달라... 난 절대 못 해’라며 징징거리는 사람은 아니다.

  원래도 나태하게 뒹굴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지난 2년간 코로나까지 겹쳐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점점 나태하게 사는 것도 지루해질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는 아침 루틴도 적어 보고, 밖에 나가서 운동도 해 보고, 매일매일 계획을 세워서 알찬 하루를 살아 보려 했다.      


  그때 나의 최대 단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건 바로 ‘욕심 과다’와 ‘의지박약’.

 욕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적다 보니 계획을 다 달성하려면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매일매일 반복할 루틴을 만들려고 해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보니 결국 전부 달성하지도 못한 채 작심1일로 끝. 한번 계획을 망쳤다고 생각하니 그다음부터는 다시 도전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을 하루 만에 전부 놓아 버리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그닥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계획을 놓아 버린 것에 홀가분함을 느꼈다. 이후로는 당일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만 메모장에 적어 놓고 살았으니, 하루를 알차게 살 생각을 하기보다는 방에 틀어박혀서 비대면 강의를 듣고 과제를 완성하는 데만 열중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일주일 안에 강의와 과제를 다 끝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늘 다 못 하더라도 ‘내일로 미루면 돼’라고 생각하면서 비대면의 이점을 제대로 써먹었다.

    

  그러다 이런 무계획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전공 특성상 작품 하나를 암송하는 영상을 찍어 교수님 이메일로 과제를 제출하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그 영상 하나를 찍는 게 너무나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제출 마감일 오후에 찍기 시작했다. 5분도 안 되는 영상이니 금방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일단 촬영을 시작했는데, 어, 이게 웬일이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쉬워 보였던 작품이 외워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찍기 직전에 한두 번 읽어 본 게 끝이니 못 외우는 게 당연한 건데, 당시에는 자신감이 엄청났는지 이 정도쯤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너무 당연하게도 다 외우지 못한 채로 그냥 메일을 썼는데, 영상 크기가 커서 전송이 안 돼 인코딩하느라 몇 분 지체해서 결국 10분 늦게 제출했다. 아예 안 낸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대학 생활에서 첫 지각 제출을 해 버렸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잘하고 싶었던 만큼 나에게 돌아오는 실망감도 컸다. 이 일을 계기로, 이후로는 절대 무계획으로 살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     



  이번 주의 주제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이상'이라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 있을까 싶어 국어사전에 검색해 보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내가 좋아할 만한 이상의 뜻을 발견했다.  

   

이상 [3] 이미 그렇게 된 바에는.  ex)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해야 한다.     


  예문까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쉽게 그만두는 건 어떻게 알고. 나한테 하는 잔소리인 줄 알았다.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해야 한다. 대부분의 상황에 들어맞는 말이지만, 정말로 시작한 이상 끝을 보는 끈기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당장 의지박약이라는 최대 단점을 가진 나도 그렇지 않나. 그래서 이 말을 새로운 좌우명으로 삼게 되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항상 삶의 태도를 저렇게 바꾸고 싶었으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상적 삶에는 이상으로 대처하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상 마인드'가 적절히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나태해져서 집안일이 쌓여 버렸을 때는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일단 책상부터 천천히 치워 보지, 뭐." 너무 어려워서 하기 싫은 과제가 생겨도 "이미 나한테 과제가 주어진 이상... 어쩔 수 없다. 분량이라도 채워서 내야지." 등등.     

  말의 힘은 대단하다지만, 이렇게 외치면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날도 있다. 너무 무기력해서 외치는 것조차 하기 싫은 날. 이런 날에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이용할 만한 방법은 없을까? 며칠 전 읽은 <나는 하루 5분만 바꾸기로 했다>라는 책에서 이 경우에 대한 조언을 얻었는데,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그 내용을 짧게 소개해 보려 한다.      

  완벽주의를 덜어내자. 책에서는 욕심내지 말고 적절한 수의 루틴만 만들어야 루틴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루틴으로 만들고, 조금 어려운 루틴이 있다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준비 루틴’을 만드는 것도 추천한다. 예를 들어 ‘매일 15분 운동’ 루틴을 만들었는데 시작하기가 너무 귀찮을 때, ‘매트 깔기’ 또는 ‘운동복 입기’부터 루틴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시작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은 다음 날부터 준비 루틴을 만들어 보았는데, 나에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평소에는 운동을 다 했을 때만 완료 표시를 했는데, 이제는 준비 루틴까지 완료 표시를 하고 나니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끝낸 것 같아 뿌듯함도 배가 되었다.     



*


     

  “이렇게 된 이상 해 보자”라는 말은 여러 상황에서 쓰일 수 있다.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를 하듯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을 때, 이렇게 된 이상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서 해야만 할 때 쓰일 수도 있고, 시간의 여유가 남아 있지만 내가 세운 하루 계획을 빨리 끝내고 마음 편히 쉬기 위해 쓰일 수도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쩌겠어. 나에게 주어진 일은 내가 끝내야만 하는 거니까, 일단 해야지!’ 이런 말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생각날 때쯤이면 데자뷔처럼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본 ‘어떻게든 해내는 여성들’ 영상! 과거의 나라면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라고 말하던 여자 연예인들처럼은 절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어느새 “그래도 일단 해야지”를 외치며 할 일을 해내다 보면 점점 그들과 닮아 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언젠가는 끝내야 할 일이고, 무시해서 될 일은 아니라는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늘부터는 '이렇게 된 이상, 해 보자!'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가뿐하게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이 글을 읽은 이상, 우리 같이 한번 해 보자.



체이 작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