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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Nov 05. 2024

대환장파티에서...8화 통증의 새로운 이름

동네의사의 환자일기

OOO님은 통증분야의 우등생이다.


사실, 통증일기 쓰기는 그 자체가 대단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드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환자분들 중 잘해내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쓰는 버릇이 들지 않아서 대체로 말로만 나에게 호소하지 실제로 혼자서 써보지 않는다. 선생님의 수업도 듣는 것만으로는 자기 지식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스스로 써보고 풀어봐야 자신의 지식으로 변환되는데 다수의 학생들이 실제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달갑지 않아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다. 많은 환자분들이 그 심한 고통 속에서도 좋은 습관을 들이기가 어려운 것도 비슷한 이치다. 


OOO님의 큰 장점은 일단은 해본다는 것이다.


비록 낯설더라도 일단은 해본다. 그리고 꾸준히 쓰기를 이어가면서 스스로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의미와 재미를 발견하고 있었다.


아직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지만 넘어지는 빈도도 많이 줄고 표정도 좋을 때가 많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휠체어를 타기도 하고 넘어지면 수치스러움에 몸둘 바를 몰랐던 사람이 제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대환장파티에서... 8화 통증의 새로운 이름




나)


"이번주는 몇 번 넘어지셨나요?"



OOO님)


"10번 이네요!"


"원장님, 통증일기 너무 도움돼요. 학회 갔다와서 친구들에게도 강추했어요."



나)


"잘하고 계시네요. 아직 좀 힘들텐데 꿋꿋하고 용감하게 해내고 계시네요."



OOO님)


"경찰서 가서 한 번 더 되풀이 하느라 속이 시원했지만 괴롭기도 했어요."



일 주일에 10번 넘어지고도 이렇게 밝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워낙 솔직하고 정이 많은 분이라 주변에 도움이 되는 친구분들이 많은 것 같다. OOO님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친구들에게 고스란히 좋은 영향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참으로 감사했다. 의사가 한 사람을 잘 치료하면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이 감정적으로도 영향을 받고 지금 이 분과 같이 그분들도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팁을 얻을 수 있다. 이럴 때는 SNS가 발달한 현대사회가 좋은 에너지를 확산시키기에 참 좋은 것 같다. SNS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사회적 통로로 어떤 컨텐츠가 전달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나는 '용기있다, 용감하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자주 쓰곤 했다. 이 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분의 치료 중 상당부분은 언어치료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문장은 지금 돌아보니 좀 바꾸었으면 어떨까 싶다.


"경찰서 가서 한 번 더 되풀이 하느라 괴롭기도 했지만 속이 시원했어요."


사람은 중간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마지막에 방점을 두면 그 상황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OOO님)



통제불가 통증 : 통이


짱나게 쩌릿하고 욱씬 : 짱이


쿡쿡 찌르는 통증 : 쿡이


너네가 와도 민망하지 않게 반겨줄테니 너무 오래 있지는 말아주라!!


하루 5분 통증에 집중해 보기


소리의 시발점이 어디인가!



제 통증 이름 귀엽죠?



정말로 내 강의대로 귀여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통증에게다가 이름을 짓는 것은 이미 내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통증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것에 대한 저항은 현실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내게 찾아온 현실을 그대로 보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시험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선택지는 주어진 현실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다. 불편하지만 있는 그대로 보아야 정답을 맞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불편하다고 외면하면 정답과는 더 멀어지기 마련이다.



다양한 통증의 특징에 따라 귀여운 이름들을 붙여주면 통증에 대한 저항감이 사라진다.


아래의 예시는 통증에 대해 내가 그린 캐릭터이고 각각의 통증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이분은 감사일기 까지 쓰고 있었다.


통증일기의 시작은 감사일기다.


통증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살아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분은 집에만 있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바꾸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청소도 하고, 미뤄둔 공부도 하고 책도 보게 되면서 몸이 불편해서 외출할 수 없는 현실을 나름대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것이 생명의 작용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불편함(스트레스, 붓다의 표현으로는 고통이지만 인도어에서의 고통은 '두까'라고 하는데 이것은 뜻대로 안되는 모든 상황을 말하는 것이기에 불편함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특별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이것이 생명현상의 중요한 특징이다.



식물은 바람이 불편하겠지만 그 덕분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동물은 포식자가 있어서 더 빨리 달리는 법을 배운다.


인간은 고통이 있어서 내면을 보는 법을 배운다.




OOO님)



감사일기도 쓰고 슬프고 화는 일기도 써요.


'바라보는 나'에 스며들어서 이제 넘어져도 창피하지 않아요.



참 원장님이 사모님과 유부초밥 잘 드셨다고 해 주신 덕분에 요즘 요리해서 나눠먹는 한 가지 재미가 추가 됐어요.


쓸모없는 나는 이제 없답니다.




이 와중에 OOO님은 집에서 유부초밥을 싸와서 건네 주셨다.


집에서 아내와 맛있게 먹고서 OOO님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더니 재미가 한 가지 더 늘어났다고 ㅎㅎ


"쓸모없는 나는 이제 없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소중하게 자신을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은 의사가 혼자서 환자를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상처받은 자신을 더 높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가 의사와 함께 치료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시쳇말로 플라시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플라시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방대한 이야기라 따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플라시보는 화학자들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뇌과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바라보는 자'를 치료에 참여시키는 특별한 치료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


"통이, 짱이, 쿡이

정말 귀여운 이름이네요."



OOO님)


그쵸 ㅎㅎ


체화될 때까지 불러줄 거예요.


정신과 약의 순응도가 낮았는데 일주일 저를 지켜보니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다녀와서 뵈러 갈게요.


더 힘이 빠지지는 않겠지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러고보니 OOO님은 우울, 불안과 관련된 정신과 약물을 복용중이었다.


이제까지 약이 제대로 듣지 않았는데 아마도 약을 새로 바꾸실 모양이다.


요즘의 정신과 치료 패턴이 워낙 약물 위주의 치료라서 개인적으로는 썩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꼭 필요할 때는 도움을 받기는 해야 한다. 부디 정신과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살펴서 너무 약을 세게 쓰지는 말았으면 하고 기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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