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동방순례>

나를 지워야만 닿을 수 있는 곳

by 아무것도아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언제나,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기록하려는 욕망은 결국 실패한다. 소설 속 헤르만 헤세가 그토록 찬란했던 동방순례의 기억을 복원하려 애쓸수록, 진실은 자취를 감춘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공동체’의 경험을 ‘나의 영웅담’으로 가두려 했으니까. 과거를 소유하려는 집착, 자신이 그 여정의 중심이었다는 오만. 그것이 기억을 왜곡하고 눈을 가린다. 결국 책이 말하는 건 여행기가 아니다. 쥐고 있는 펜을 내려놓아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쓰기의 무력함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다.




하인 레오의 존재는 내 안의 오래된 착각을 허문다. 짐을 나르고 허드렛일을 하던 그가 사라지자 순례단 전체가 와해되었다는 사실. 그것은 뜻밖의 진실이다. 흔히들 리더가 앞에서 깃발을 흔드는 사람이라 믿지만, 권위의 실체는 묵묵히 뒤에서 짐을 지는 자에게 있다.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 그가 곧 동방순례를 이끄는 주인이었다.




자신을 지워야 비로소 대상이 살아난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창작의 영역에서도 유효하다. 헤세는 묻는다. 왜 예술가는 반쪽짜리 인간처럼 보이고, 그들이 만든 캐릭터는 그토록 생생한가. 답은 명확하다. 작가가 자신을 죽이고 작품을 섬길 때만 생명력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젊음이 자신을 채우는 시기라면, 성숙은 나를 비워내는 시기다. 내가 흐릿해져야 내 안의 진실이 선명해진다. 내 자아가 꼿꼿하게 버티고 있는 한, 글은 그저 나의 아류로 남을 뿐이다. 진정한 걸작은 작가가 투명해질 때 탄생한다.




그 길의 끝에서, 목적지는 자연스레 재정의된다. 순례의 끝은 동방이라는 장소가 아니다. 헤르만 헤세와 레오가 하나로 합쳐지는 그 결말처럼, 나의 작고 보잘것없는 자아가 거대한 질서 속으로 녹아드는 과정이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다. 나를 고집하는 애씀을 멈추고, 더 큰 흐름에 기꺼이 나를 맡기겠다는 다짐이다. 내가 사라짐으로써 완성되는 세계. 헤세에게 늙음이란 바로 이 소멸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쇠락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음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기술인 셈이다. 이제 증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기꺼이 투명해질 것. 그것이 내가 가야 할 동방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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