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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인 Feb 23. 2022

정치와 종교, 기독교인들의 선택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정치 이야기는 삼간다. 모든 일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해석하는 정치병 환자들 때문에 피곤하다. 정치병 환자들은 재주가 참 좋다. 모든 이야기를 정치로 연결하는 재주 말이다. 그들은 경제 이야기를 해도 정치로 연결하고 역사 이야기를 해도 정치로 연결하고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를 해도 정치로 연결한다. 아마 날씨 이야기를 해도 정치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정치가 좋으면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면 될 텐데 그건 또 안 한다. 할 능력이 없는 게지. 안타깝다. 열정을 쏟을 곳이 고작 정치판밖에 없으나 정치판에 뛰어들 능력은 없는 그들의 비참한 현실이 대단히 안타깝다.




정치병 환자들은 자꾸만 나를 특정 정당이라는 틀에 가두려고 한다. 참으로 한심하다. 정치 성향은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이야깃거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바퀴만 보고서 자동차 전체를 파악할 수 없듯이 정치 성향만 보고서 한 사람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이는 정치를 업으로 삼는 정치인에게도 해당한다. 노무현하면 민주당이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당만으로 노무현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민주당원이기 이전에 돈 많이 버는 변호사였고 대통령 재임 중에는 민주당에 버림받기도 했다. 박근혜하면 새누리당이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누리당만으로 박근혜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새누리당원이기 이전에 비극적으로 부모를 잃은 자식이었고 대통령 재임 중에는 새누리당에 버림받기도 했다.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이들도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성향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데 정치를 업으로 삼지 않은 일반인을 그 조그마한 틀에 가둬놓고 파악하려 하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정치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지만 종교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가치는 내 정체성이다.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은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해야지'라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틀 안에 가둬진다. 그 틀을 벗어나는 생각과 행동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려 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이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치는 내게, 아니 모든 기독교인에게 그 무엇보다 큰 영역이다.




이따금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칭하면서도 기독교 가치보다 다른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돈이나 권력, 집이나 자동차, 직장이나 스펙, 음식이나 예술, 사람이나 사랑 등. 오해하면 안 될 것이, 기독교는 이것들을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신이시며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를 가르치셨다. 인간에게 먹을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기에 하나님께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길 때 발생한다. 예를 들면 돈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기독교 가치를 저버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상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진정한 기독교 가르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기독교 가르침은 (예를 들어)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지만 기독교 가치를 오해하고 심취하여 가족을 부양할 돈까지 내팽개치지 말라는 것이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우선으로 삼되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것들도 저버리지 않는 적정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간혹 기독교인들은 공직자 투표를 할 때 후보의 정당보다는 종교를 더 신경 쓴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고 그리해서도 안 된다. 공직자는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므로 당연히 나랏일을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을 20년 한 사람과 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를 20년 한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나랏일을 잘하겠는가. 당연히 지방자치단체장 경험을 가진 사람이 나랏일을 더 잘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후보자의 종교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일왕처럼 스스로 신이 되려 한다거나, 공산당 혹은 나치처럼 종교를 탄압한다거나, 반기독교적 성향이 뚜렷한 후보는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절대 뽑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뽑힌 윤석열은 여러 의혹을 받고 있다. 그가 온갖 미신에 빠져 있고 무당이니 법사니 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천지와 연계되어 있다는 소문이 돈다. 윤석열 측은 이 의혹들을 전부 부인했다. 하지만 명쾌하게 해소되지는 않고 있다. 나는 이 의혹들이 모두 헛소문이길, 절대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미신과 사이비 종교에 빠진 자가 대한민국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리 없다. 우리나라 정당 수준이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정말 슬플 것이다. 




화가 난다. 저질 의혹을 받는 자가 유력 대선 후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기독교인이라면, 특히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지금 상황에 강력히 분노해야 한다. 윤석열에게 의혹을 명쾌히 해소하라고 요구해야 하고 그것이 안 되면 후보를 사퇴하라고 압박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침묵하고 있다. 기독교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물론 그들의 내심은 알 수는 없다. 윤석열에게 표를 던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침묵해서는 안 된다. 지금 침묵은 비겁한 침묵이고 해선 안 될 침묵이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썩어가지 않도록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 쓴소리를 하면서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침묵이라니,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에게 맡기신 역할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같잖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어원은 '사람 꼴 같지 않다'이다. 누군가가 하는 짓이 사람 꼴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니 '같잖다'를 굳이 현대 말로 풀자면 '사람이 아닌데?' 정도가 될 것이다. 지금 보수 정당을 지지하면서 침묵하고 있는 기독교들은 내가 볼 때 기독교인 같지 않다. 같잖은 기독교인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당신들은 기독교인이 아닌데? 정도가 되지 않을까.






구약성경에 선지자 엘리야가 나온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갈멜산에 불러 모은 후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기독교냐 정치냐.


이제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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