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는 언제부터 화면만의 일이 되었을까

표면(UI)이 아닌 구조(IA)에 집중하라

by 원빌더

"이 버튼 색, 좀 더 트렌디하게 바꿔주세요."

"색을 좀 더 눈에 띄게 바꿔주세요."


디자인 리뷰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버튼의 색상, 폰트의 무게, 카드 레이아웃의 라운딩 값.

논의는 대부분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눈에 보이니까 쉽게 의견이 나오고, 의견이 나오니까 수정이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팀 전체의 에너지가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겉모습을 다듬는 데 집중되게 된다.



그런데 한 발 물러서서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고 하자.

버튼의 UI가 바뀌었을 때,

사용자의 이탈률은 정말 변했을까.
폰트 교체 작업 후에도 만족도 지표가 유의미하게 움직였을까.
화면은 매끄럽고 보기 좋게 완성되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동일한 불만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지는 않은가.

문제는 화면 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의 행동을 이끌고 경험을 설계하는 '구조' 자체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UX가 표면으로 축소된 순간


UX(User Experience)라는 단어는 본래 '사용자가 제품을 통해 겪는 경험의 총체'를 의미한다.

화면을 보는 순간뿐 아니라,

제품을 알게 되는 시점부터 떠나는 시점까지의 모든 판단과 행동의 흐름이 UX의 영역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UX는 UI(User Interface)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UX 개선"이라고 하면 화면 레이아웃을 고치는 일로 이해되고, "UX 디자이너"라고 하면 피그마를 다루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본질이 표면으로 축소된 것이다.


UX는 본래 구조부터 고려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아웃풋 중 하나로 화면(UI)이나 프로토타입이 나오게 된다. 이때 화면은 눈에 보이지만 구조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발생되는 것이다.


사람은 보이는 것에 의견을 내고, 보이지 않는 것은 간과한다. 조직 내 의사결정권자 역시 마찬가지다. 시연 화면에서 버튼의 위치는 바로 지적할 수 있지만, 사용자가 그 버튼에 도달하기까지의 판단 흐름이 설계되어 있는지를 묻는 사람은 드물다.


그 결과, 표면은 점점 세련되어지는데 구조는 여전히 낡은 채로 남는 제품이 양산된다.

겉은 최신이지만 속은 10년 전 그대로인 시스템. UX가 화면의 일로 축소된 조직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패턴이다.



구조란 무엇인가 — IA의 진짜 역할


UX 안에는 보이지 않는 뼈대가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IA(Information Architecture) ¹⁾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IA를 단순히 메뉴 트리나 카테고리 구조 정도로 이해하지만, 실제 IA의 역할은 훨씬 깊다.

IA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룬다.

사용자가 이 제품에 들어왔을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봐야 하는가.

어떤 정보는 생략해도 되고, 어떤 정보는 반드시 노출되어야 하는가.

이 기능은 누구의 권한 아래 있으며, 승인 흐름은 어디서 분기되는가.

오류가 발생하면 어떤 단계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이것은 화면 정리가 아니다. 권한, 책임,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다.

IA가 부실한 제품은 화면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용자가 헤맨다. 반대로 IA가 탄탄한 제품은 화면이 투박해도 사용자가 목적지에 도달한다. 원칙 2에서 이야기했던 "지도가 너무 많아서 길을 잃는" 현상이 제품 안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기능이 넘쳐나는데 구조가 없으면, 사용자는 정보 과잉 속에서 판단을 포기한다.


제품이든 삶이든, 본질은 같다.

기능을 추가한다고 좋은 제품이 되지 않듯, 선택지가 많아진다고 좋은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능의 수가 아니라, 그 기능들이 어떤 판단의 위계 안에서 조직되어 있는가. 즉, 구조다.



AI가 드러낸 구조의 민낯


이 문제가 특히 선명해진 계기가 있다. AI의 등장이다.

AI 시대가 되면서 화면을 만드는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프롬프트 몇 줄이면 와이어프레임이 나오고, 코드가 생성되고, 프로토타입이 하루 만에 완성된다. 하지만 화면이 빨리 만들어질수록, 구조는 더 쉽게 건너뛰어진다. "일단 화면부터 만들고 나중에 정리하자"는 관성이 AI의 속도와 결합하면서 가속화된 것이다.


그런데 AI는 화면만 빠르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AI는 제품의 판단 흐름 한가운데에 들어온다.

추천, 예측, 자동 분류, 요약. 이 모든 기능은 본질적으로 '사용자 대신 판단하는 일'이다.

그래서 AI가 탑재된 제품에서는 이전에는 감춰져 있던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 추천은 어떤 기준으로 나온 것인가. 자동화된 판단이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사용자는 이 결과를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거부할 수 있는가. AI의 판단과 인간의 판단이 충돌할 때, 최종 결정권은 어디에 있는가.

예전에는 UI가 화려하면 구조의 허점이 가려졌다. 하지만 AI가 판단 흐름 안에 들어온 순간, 구조가 설계되지 않은 제품은 즉시 혼란에 빠진다. "이 모델이 틀리면 누가 책임집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예쁜 화면은 아무런 답이 되지 못한다.

AI가 디자인을 어렵게 만든 것이 아니다. AI가 구조의 부재를 더 빠르게, 더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원칙 3에서 다뤘던 암묵지의 문제가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수십 년간 경험으로 쌓아온 판단 기준이 시스템으로 번역되지 않은 상태에서, AI가 내놓는 추천은 숙련자에게 위협으로 느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AI 모델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AI의 판단이 어떤 위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설계하는 의사결정 구조다.



표면의 문제와 구조의 문제는 다르다


그렇다면 구조를 설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일인가.


핵심은 이것이다. 사용자가 말하는 불편함과, 실제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부분 다르다.

표면에 드러난 증상이 아니라, 그 아래에 숨어 있는 맥락. 행동의 이유, 판단의 흐름, 때로는 감정과 두려움까지를 파악하는 것이 구조 설계의 출발점이다.


몇 가지 내가 경험했던 사례를 통해 확인해보자.


Case 1. 어떤 조직에서 구매 담당자들이 이렇게 말했다.

"매번 구매 내역을 문서로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고 승인받는 과정이 불편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승인 프로세스가 번거롭다'는 UI 개선 요청이다. 하지만 실제로 관찰하고 인터뷰해 보니,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승인받은 메일이 시스템에 자동으로 보관되지 않아 감사 시점에 누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 불편한 것은 입력 화면이 아니라, 기록이 휘발되는 구조였다.


Case 2. 건설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업자들이 설치한 결과물을 모바일로 촬영해서 관리자에게 전송해야 하는 프로세스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사진 전송 기능이 불편하다'는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에는 전혀 다른 감정이 있었다. 사진으로 자신의 작업물이 검증받는 과정에서 전문성이 의심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리적 저항감. 이 경우 해결해야 할 것은 UI가 아니라, 신뢰의 구조였다.


Case 3. 반대 방향의 사례도 있다. 온라인에서 고가의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사용자들을 관찰했더니, 대부분 단순히 '구매 버튼을 빨리 누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스펙을 상세하게 읽고, 여러 유통 채널의 가격을 비교하며, 충분히 납득한 뒤에야 결제를 진행했다. 이 경우 전환율을 높이는 해법은 CTA 버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상세 스펙 정보와 비교 기능, 가격 정책의 투명한 제시. 판단을 도와주는 정보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세 사례 모두 공통점이 있다.

화면 위에 보이는 불편함을 그대로 해결했다면, 진짜 문제는 그대로 남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표면의 증상이 아니라 이면의 맥락을 파악했을 때, 문제의 정의 자체가 달라지고 해결 방향도 근본적으로 바뀐다.


이것이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의 일이다. 사용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생각과 감정을 인터뷰하고, 그 안에서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판단의 흐름과 심리적 맥락을 읽어내는 것. UX가 화면의 일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역할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다.

알고리즘은 데이터 속 패턴을 찾아주지만, 사용자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의 맥락, 그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두려움이나 기대까지를 설계에 반영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결과물이 아니라 흐름부터 설계하라

원칙 1. 우리는 흔들림의 원인이 설계의 부재에서 온다.
원칙 2. 정보가 많아질수록 기준이 필요하다.
원칙 3. 그 기준이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제 원칙 4에서 한 가지가 더해진다.

그 시스템은 보이는 표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조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

결과물을 만들기 전에, 그 결과물에 도달하는 흐름을 먼저 그려야 한다.

제품이든 삶이든, 설계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그 보이지 않는 흐름을 어떻게 가시화할 수 있는가. 다음 원칙에서 다룬다.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설계합니다. 비즈니스, 기술, 사람 — 셋의 교차점에서 일합니다.

Invisible to Visible. © Novah



주석

¹⁾ IA(Information Architecture) — 정보 설계. 제품 내에서 정보의 조직, 분류, 탐색 구조를 설계하는 분야다. 단순한 메뉴 구조를 넘어, 사용자가 어떤 순서로 정보를 접하고, 어떤 경로로 목적을 달성하며, 어떤 권한 아래에서 행동하는지를 결정하는 뼈대 설계에 해당한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