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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웨터 Nov 29. 2022

나는 왜 글을 쓰는가 (2014.03)

과제 김현영수업

모든 일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나는 그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음악 선곡을 바꾸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옆 차선의 차가 갑자기 앞으로 끼어 들었다.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싶었는데, 과연 J가 속도를 급하게 그렇게 줄일 수 있을까 걱정스레 바라봤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갑자기 파바박 하고 두 차가 부딪혔다. J가 급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으며 속도를 줄여봤지만, 어느 순간 우리 차는 앞 차를 들이받고 오른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 충돌의 순간 어이없게도 나는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저 머릿 속이 하얘졌을 뿐. 영화나 드라마 속에만 보아오던 그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내가 그 차 안에 있다니. 그저 순간적으로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거대한 충돌의 힘에 이끌려 앞으로 튕겨져 나갔을 뿐. 앞으로 튕겨져 나가던 그 짧은 순간,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뇌리 속을 스쳐갔다. 

다음 순간 다행히 안전 벨트의 힘으로 나는 앞으로 튕겨지다 말고 다시 강력한 힘에 이끌려 뒤로 거세게 튕겨져 나가서 조수석에 부딪혔다. 그 순간 몸 안에 무언가가 부서지기라도 한 것처럼 끔찍하게 아파서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아아… “


난생 처음 맛보는 그 끔찍한 고통이 나를 엄습했다.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 고통이 몇 분간 내 몸을 관통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어느 정도 그 살을 에는 듯한 고통에 익숙해진 뒤 나는 호흡을 가다 듬고 내 상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했다. 몸을 조금씩 움직여보니 어디 크게 다치거나 부러진 데는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지금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뒤로 튕겨져 나가면서 부딪힌 고통이 심할 뿐.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가 내게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구급차 바로 부를게. “


그리고는 보험 회사에 연락을 하고 차 문을 열고 나가 앞 차 사람과 상황 수습을 하는 동안 나는 차에 혼자 남겨졌다. 


박살이 난 차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채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 속에 떠올랐던 장면은 어이없게도 단 하나. G의 차에서 다른 여자가 내리던 그 모습. 그 때도 나는 그저 머릿 속이 하얘졌을 뿐. 아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내 앞에서 펼쳐지는 구나. 내가 그동안 그토록 욕하면서 봤던 드라마가 아주 허무맹랑한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었을 뿐. 순간 머리가 멈춰 버렸다. 한편으로는 내 머리를 멈추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닐꺼야, 아닐꺼야, 내가 지금 본 게 사실이 아닐꺼야 하고. G를 만나 자초지종을 캐묻고 진실의 뚜껑을 열고 충격에 휩싸인 그 순간에도 나는 실감이 안 났다. 자꾸만 내 몸에서 내 정신이 분리되어 내 정신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단 한번도 미래를 약속한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저 현실의 나를 좋아하고 현재에 충실하다는 소리로 나를 위로했을 뿐. 그래도 내 인생의 중요한 어느 시절을 함께 해오며 성장해오며 많이 기대하고 의지해왔던 사람이었다. 부족한 점 많지만 그래도 나를 향한 일편단심 그것 하나만 믿고 만나왔었다. 그랬던 그가 나를 이렇게 처절하게 배신하다니. 


그 끔찍한 이별 이후 나는 그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바로 다음주 휴가를 내고 어떻게 해서든 마감 직전의 여행 상품을 예약하여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으며, 

어느 주말 잠도 덜 깬 동생을 이끌고 꾸역꾸역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속초 바닷가를 보고 왔으며, 난생 처음 스페인어 강좌에 등록을 했으며, 목청이 터지도록 노래를 불렀으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데 힘겹게 성공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별의 그림자는 자꾸 내 뒤통수를 쳤다. 한 달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봤지만, 결국 나는 너무 아팠다. 어느 밤 외출에서 돌아오던 버스 안, 나는 가만히 앉아서 떠올렸다. 내 심장이 햇볕이 내리 쬐는 땡볕 아래 놓여서 힘겹게 펄떡 펄떡 대는 장면을. 


그리고 몇 개월 후 정말로 내 심장이 튕겨져 나갈 뻔 한 것이다. 



내 인생에 더 이상 최악의 일은 없을 거라 자만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여지없이 내 기대를 무너뜨렸다. 서른 살 인생에 이렇게 드라마틱한 일을 몇 개월 새에 두 가지나 겪다니. 남들은 살면서 한 가지도 한 번도 안 겪을 법한 일들을. 


이 정도면, 이제는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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