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보다 일찍 하루에 도착.
이를 닦고 물 한잔, 책상에 앉는다
배가 고프구나.
양파를 찹찹 덮밥을 해볼까
아침을 먹은 후
블루보틀 머그잔을 꺼낸다
느리지만 확실한 브랜드 정체성에
오늘의 커피를 담아 마시는 일은
하나의 의식
소화할 겸
신문을 펼쳐보자
왜 이렇게 영화가 보고 싶지?
소설책 같은 영화가 당긴단 말이지
드라마도 봐야 하고
끙
어제 하다 만 구상을 계속하자
예원이는 누굴까 궁금하다
나도 궁금해 나만 알려줄 수 있어 그게 날 미치게 하는 동시에 살게 해
키보드로 타닥 한 문장이라도 써넣자 제발
그래야 이 생활이 의미가 있지
연필은 안 쓸 거지만 혹시 쓸지 모르니 전동연필깎이로
휘익 깎아둬 이미 뾰족하지만 소리가 좋으니까
휘이이잉 더 날카롭게 온 종이를 다 베어버릴 만큼 예리하게
검은색 연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쓰여 있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세이 사은품으로 받은
까만 연필, 쓸 때마다 소설이 써지는 기분
사각 사각 사각
연필 소리와 음악 소리가 좋아 온종일 음악을 틀어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한 또는 소설 속 무드에 어울리는
리듬과 색을 만들어주는 음악들
다른 빛과 소리는 싫어
창문을 끝까지 닫고 블라인드를 촘촘히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못하게
문득
외로워
외로워져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배부르니 커피를
카푸치노 커피잔을 꺼내
받침 접시에 나를 대접하자
카푸치노는 없지만
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무슨 음악을 들을지
고민하면서
커피가 바닥난다
오후에는 책을 좀 읽을까
졸리니까
잠도 푹 잤는데
점심을 간단히 챙기고
글은 언제 쓰지
써야지, 써야지
읽는다.
누가 나 방해 좀 해줘
하얀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나의 책
나의 깨끗한 소설책
기분이 뭉게뭉게 좋아진다
누가 뭐래도, 쓰길 잘했어
하루는 짧은데
밤은 참 느릿느릿 안 오는구나
얼른 해가 졌으면
그럼 못 이기는 척 슬금슬금
도수 낮은 맥주 하나 꺼내와서
일몰 라이브를 훔쳐볼 거 아냐
저녁 메인 요리는
레시피 수첩 안 보고
있는 재료를 얼른 소비해
수업이 있는 저녁에는
정신을 말끔히 하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 너머의 작가를 만난다
내가 배워야 하는데 말이지
가르치고 있다니
그것참 웃기는구나
그런데 썩 괜찮게 이 시간을
리드하는걸
모두 조금씩 성장하고 기뻐하는 모습
내 쓸모를 확인하고 안도한다
수업도 없는 날에는
오늘 뭘 했지
이거 정말 한량이 따로 없구나
종일 논 건 아닌데
계속 애썼는데 증명할 길이 없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더 느끼고 더 생각하고 더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떻게 증명서는 발급이 안 되나요
아니면 다크 초콜릿 한 조각이라도
내가
꿈에 젖어 삶을 무시하는 사람일까
꿈보다는 삶이 먼저라는
엄마의 말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음식을 만들었다
딸을 가만히 지켜보고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필요한 한 방울의 문장을 톡 떨어뜨려 주는
멋진 엄마, 세상에서 제일 강한 아빠
걱정이 없다 젊고 건강하시니,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그게 가장 어렵지만
그러던 중 밤은 찾아온다
내일이 걱정이 안 된다 걱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걱정이 안 되지 이상하네
좀 걱정을 하고 대책을 세우고 한심해하고 그래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나는
좋다
이거 정말 웃긴 글이 되겠구나
글? 글이라 해도 될지
사랑했던 이를 떠올리고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려
애쓰면서 마음을 청소하고 먼지가 쌓이지 않게
들여다보며 마침표를, 아니 쉼표를
아니 음표를 그리고
음표라고 생각하니 이제 연주만 하면 되겠다
제목은 셀린의 하루
짝짝짝 오늘 연주도 잘 들었어요
내일도 무겁겠지만
악기 들고 와서 연주를 해줘요
악기가 망가지면 노래를 불러줘요
노래를 하다 지치면 일기장에 편지를 써줘요
그 모든 게 쓸데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어
딴생각은 멈추고
이렇게
그대로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