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10시가 되자, 레스토랑 '히말라야'의 영업시간이 종료되었다. 홀 담당 직원은 식당 테이블을 치우고, 주방에서는 조리사와 보조들은 조리도구를 닦고 식재료들을 정리했다. 카운터에서는 캐시어는 오늘 매출을 정산했다. 식당 밖의 주차관리원은 전등을 들고 주위를 돌아다니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살펴보았다.
"오늘도 무사히 영업이 끝났습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지배인 펑샤오는 레스토랑 직원을 모아 놓고 말했다.
"그리고 카운터에서 일하던 캐시어 미사 씨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어요. 음~, 그 자리에 아랑 씨를 임시로 배치하려고 합니다. 아랑 씨는 1년간 우리 레스토랑에서 홀 서비스를 잘했고, 바쁠 때 가끔 캐시어 보조를 너무 잘해주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구할 때까지 그렇게 운영하려고 합니다. 아랑 씨 괜찮죠?"
직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랑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식당에서 캐시어 업무는 내국인이 아니면 얻기 힘든 업무이며, 고객의 결제를 관리하고 예약을 받고 고객 불만을 해결하는 업무로 정신적으로 고되지만 육체적으로 덜 피곤하다. 더러 이주 노동자가 맡는 경우가 있지만 극히 드물다. 그만큼 이주 노동자에게는 선망의 업무였는데 그런 일을 아랑에게 맡긴 것이다.
"제가요? 저는 그만한 깜냥이 아니에요!"
아랑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무슨 소리, 아랑 씨라면 잘 해낼 겁니다."
함께 홀 서비스를 보는 다니엘이 큰소리로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캐시어 업무를 보는 얀센이 말했다. 그리고 아랑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모두가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다.
"아랑 씨! 많은 직원들이 제 의견에 동의하네요. 내일부터 미사 씨로부터 캐시어 업무를 인계받으셔요."
"그럼, 알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퇴근하셔도 됩니다. 내일 봅시다."
아랑은 출근복으로 갈아 입고 백팩을 멘 채로 식당을 나섰다. 함께 홀 서비스하는 니키가 뒤따라 왔다.
"축하해! 아랑!"
"고마워! 니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네."
"민망하게 왜 그래. 너는 지배인과 잘 되어가?"
그들은 나란히 걸으며 트램 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 아랑은 검은색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으며 아이보리색 아우터를 입고 있었으며, 니키는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늘어뜨리고 회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아랑! 이곳에 온 지 1년 되었지?"
"응, 벌써 1년이 되었네. 여기 올 때는 걱정이 많았는데 이곳에서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똑같은 일을 해도 우리는 내국인에 비해 절반밖에 안 받는데."
"그래도 이곳에서 받는 금액은 우리나라보다 3배야. 그거면 우리 가족들 충분히 살만해. 부지런히 돈 많이 벌어서 돌아가야지."
"가면 달라져? 너도 결국 이곳에 다시 돌아올 거야! 이곳에 영원히 정착할 생각을 해야지."
"이곳에 정착할 방법이 없어. 돈이 많거나 전문 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겐 몸 밖에 없잖아."
"아니, 이곳 사람과 결혼하면 정착할 수 있지. 그래서 내가 펑샤오를 꼬신 거야."
"난 모르겠어. 그러다 신세 망친 경우가 많아서 말이야. 괜한 꿈 꾸지 말고 몸이나 잘 간수해!"
트램이 들어오고 있었다. 심야시간이라 그런지 트램은 한산했다. 그들은 트램에 올라타고 빈자리에 앉았다.
"괜한 꿈이 아니야, 어제 지배인이 내게 고백했어. 사랑한다고."
"니키!....... 잤니?"
"두고 봐. 난 이곳에 반드시 정착할 거니까!"
아침 6시가 되자, 기상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울렸다. 아랑은 튕겨 나오듯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쉽게 잠이 들지 못했고 새벽 5시에 잠이 깼다. 옆 침대의 니키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아랑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감으며 샤워를 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거울을 보았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캐시어라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어!'
아침 7시 10분. 아랑과 니키는 접시에 놓인 사과잼이 발라진 토스트를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커피잔을 들었다. 레스토랑 '히말라야'에는 8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내국인은 10시 이전에 나와 영업 준비를 하지만, 이주 노동자는 2시간 전에 출근해서 영업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다. 많은 식당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내국인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영업준비를 해야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계약 내용에는 없지만 일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사용자가 요구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일에 서툴기 때문에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일이 익숙한 다음에도 그 요구는 지속되었다. 만일 그 요구를 거부한 이주 노동자는 사용자의 갖은 트집과 고된 격무에 시달리다가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출근 시간이라 트램은 붐볐다. 트램에 올라탄 아랑과 니키는 내리기 편리하게 출입문 주위에 섰다. 출발한 트램이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 바람에 아랑과 니키는 휘청거렸다.
트램을 지나쳐가는 배달 오토바이가 보였다. 배달 라이더는 노란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아랑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기사 양반! 뭐 하는 거야?"
승객 중 하나가 큰 소리를 냈다.
"앞에 갑자기 배달 오토바이가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급정거를 했습니다."
트램 기사는 상황을 설명했다.
"요새 문제야, 문제! 시도 때도 없이 배달 오토바이가 갑자기 출몰해서 깜짝깜짝 놀라게 하거든."
"예전에는 저녁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새벽이고 아침이고 가리지 않아요."
"이제는 아침도 주문해서 먹나 보지?"
"그래서 배달 오토바이로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증가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레스토랑에 도착한 아랑과 니키는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순서대로 진행했다. 니키는 홀을 쓸고 테이블보를 교체하고 테이블에 놓을 메뉴판 닦고 기본 소스를 점검했다. 아랑은 인수인계해 줄 미사 씨가 오지 않아서 니키를 도와주었다. 9시 20분이 되자, 다른 직원들도 출근하고 영업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근무복으로 갈아 입고 커피를 내리고 이주 노동자들이 해놓은 것을 점검하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출근한 미사 씨는 아랑에게 결제 방식에 따른 처리절차와 예약접수 방법과 고객의 불만을 응대하는 요령 등을 알려주었다. 오늘 예약이 잡힌 건수와 시간과 메뉴가 무엇인지도 알려주었다.
"아랑 씨! 함께 카운터를 보는 얀센은 유능한 사람이지만, 너무 믿지는 마세요."
이 말을 남기고 미사 씨는 레스토랑을 떠났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보냈다. 실수가 있었지만 얀센이 도와주어 잘 넘겼다. 그날 아랑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미키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날.
어제와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저녁 영업을 앞두고 있는데 배달 주문이 들어왔다. '히말라야' 레스토랑은 배달 주문을 받는데 한 가지 메뉴만 받는다. 그 메뉴는 '마르게리타 피자'인데 인기 있는 메뉴로 배달 주문이 자주 들어온다. 배달 상자를 받으러 온 배달 라이더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5분 후에 배달 라이다가 들어왔다.
"왜 이제 오세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랑이 말했다.
배달원은 노란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팔과 다리는 넘어졌는지 쓸린 흔적이 보였다. 배달 라이더는 아무 말도 없이 배달 상자를 들고나갔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저녁 영업이 시작되었다. 아랑은 손님들이 들어오자 자리를 안내하고 오늘의 스페셜 메뉴를 설명하고 식사를 마친 손님의 결제를 처리하고 예약을 받고 손님의 불만을 처리하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아랑은 이제 완벽히 캐시어 업무를 익혔으며 실수 없이 일을 해냈다. 지배인과 직원 사이에서 아랑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아랑은 자신감이 들었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얀센은 완벽할 정도로 업무에 최적화되었다. 그는 언제나 웃음을 띠며 손님을 응대했고 특히 손님의 불만을 처리하는 데는 특유의 언변과 친화력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주문 취소가 있는 경우 취소처리를 언제나 아랑에게 시켰다.
아랑은 하루 매출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주문 건수와 금액이 일치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지만, 장부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현금을 결제한 경우가 한 두 건이 빠졌는데 장부에 잡히지 않았다. 아랑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아랑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니키를 걱정했다. 매일 밤 니키는 새벽에 들어왔다. 니키 걱정에 아랑은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되자, 니키가 들어왔다.
"니키! 요새 너무 늦는 거 아니야!"
"미안, 아랑! 내가 잠을 깨웠구나."
니키는 몸을 떨며 침대에 앉았다. 아랑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곁에 앉으며 말했다.
"니키, 무슨 일 있구나?"
니키는 얼굴을 감싸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 니키를 아랑은 감싸 안고 토닥여 주었다.
니키는 지배인 펑샤오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 사실을 안 펑샤오는 난처해하며 낙태를 종용했다. 니키는 자신을 받아달라며 그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펑샤오는 매정하게 뿌리치며 만나주지 않았다. 니키는 그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하릴없이 돌아서야 했다. 펑샤오는 다른 지역의 식당 지배인으로 가기 위해 본사에 전근 신청을 했다. 3년마다 식당 지배인은 순환 근무를 하게 되어 있는데 마침 그 시기에 해당되었다. 날이 갈수록 니키는 수척해지고 우울해졌고 홀 서비스에서 실수가 잦아지더니 결국 계약해지되었다. 그날 지배인 펑샤오도 업무가 종료되어 다른 식당으로 전근을 갔고 새로운 지배인이 업무를 인계받았다. 계약해지된 니키는 다른 직장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임신한 상태여서 다른 직장을 선택하기가 어려웠고 임신했다는 점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약해지가 된 후, 2달 이내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취업비자가 만료된다. 그러면 신분이 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되어 이 나라에서 출국해야만 한다. 니키는 펑샤오가 옮긴 식당에 찾아가 마지막 부탁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하였고 그녀를 출입국관리청에 신고해버렸다. 그렇게 니키는 이 나라를 떠났다.
새로 온 지배인은 이전 지배인과 달리 권위적이고 깐깐한 성품을 지녔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통을 치고 해고시키겠다는 말로 협박을 했다. 그의 태도와 말 때문에 직원들은 주눅이 들거나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면 그 자리에 지배인은 자신의 사람을 고용했다. 지배인이 이 식당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이주 노동자 아랑이 캐시어 업무를 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지배인은 아랑의 꼬투리를 잡으려 했지만 아랑은 틈을 주지 않았다. 명찰과 근무복에 대해서만 지적할 뿐 어쩌지 못했다.
결국 사건이 발생했다. 예약한 손님이 왔는데 자리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손님은 이에 대해 거칠게 항의했다. 지배인까지 나와 이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다음번 예약 시 비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예약은 누가 받았습니까?"
이미 얼굴에 화가 드러난 지배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받았습니다. 지배인님!"
얀센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런데 왜 처리가 안 되었죠?"
"저는 예약을 받고 바로 아랑 씨에게 전달했습니다."
아랑은 깜짝 놀랐다. 아랑은 그 예약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얀센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랑 씨! 얀센 씨가 예약을 받고 전달했다고 했는데 왜 처리되지 않은 거죠?"
"아닙니다. 저는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아랑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요? 아랑 씨! 저는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메모한 것을 보여줬잖아요?"
얀센은 예약 명부에 적힌 내용을 들이밀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예약 명부에 적힌 내용은 아랑이 보았을 때는 없었다. 이 일이 발생하자 얀센이 슬쩍 쓴 것이 분명했다.
"저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럼, 얀센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까? 여기 증거가 있는데도 계속 아니라고 할 겁니까?"
아랑은 말문이 막혔다. 이미 지배인은 아랑의 잘못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예약 업무는 얀센과 사이에 관련된 업무라 다른 직원은 알 수가 없다. 이제 아랑은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랑 씨 경고입니다. 이래서, 캐시어 업무는 이주 노동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니까!"
지배인은 이번 예약 업무는 아랑의 잘못으로 판단하면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랑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 미사 씨가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아랑 씨! 함께 카운터를 보는 얀센은 유능한 사람이지만, 너무 믿지는 마세요."
아랑은 이제 그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더 큰 사건은 1달 뒤에 벌어졌다.
월말 정산을 살펴보던 지배인은 구입한 식재료비와 매출액에 차이가 나자 이를 의심했다. 그 차이는 50만 원에서 70만 원이 났다. 어찌 보면 큰 금액이 아닐 수 있지만 매월 꾸준히 금액에 차이가 났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그 의문점을 풀어주기 바라오."
지배인은 캐시어 업무를 보는 얀센과 아랑, 주방의 세프 2명, 홀 매니저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우리가 구매하는 식재료는 그 메뉴에 따라 결정되지만 큰 차이는 없소. 다만 스페셜 메뉴의 경우는 다르지요. 가령, 킹크랩을 구매하기도 하고 양고기를 구매하기도 하고 한우를 구매하기도 하죠. 우리의 스페셜 메뉴는 대부분 소진되기 때문에 매출에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른 식재료도 마찬가지로 쓰는 양이 일정해서 버려지는 경우도 적지요. 그렇죠? 마이클 셰프?"
"네. 그렇습니다. 당일 구매한 식재료는 모두 소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남기는 양도 거의 없습니다. 있다고 하지만 다음날 소비되기 때문에 구입한 식재료는 거의 주문한 음식으로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상한 매출액도 일정할 텐데 매달 그 차이가 작게는 50만 원에서 크게는 100만 원 정도 납니다. 하지만 장부에 나온 전표와 매출액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모두 카드와 모바일 결제만 있습니다. 현금 결제도 있을 텐데 왜 없을까요?"
"지배인님! 요새 누가 현금 결제를 합니까? 모두 카드와 모바일 결제만 해요. 그리고 현금 결제를 했다면 주문 전표가 남아 있을 텐데 누가 조작을 해요."
얀센이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비로소 지배인은 웃음을 띠었다.
"그렇죠? 조작이라면 가능하죠. 특히 현금 결제 주문 전표만을 삭제하면 가능하죠. 이번 주 스페셜 메뉴 중 킹크랩은 몇 개가 있어죠? 홀 매니저?"
"네, 제 기억에는 10개입니다."
"무하마드 셰프 맞습니까?"
무하마드 셰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주문 전표에는 7개만 있습니다. 나머지 3개를 어디로 갔나요?"
지배인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방에서 10개가 만들어지고, 홀에서는 10개가 서빙되었다면 주문 전표를 삭제할 수 있는 곳은 카운터 밖에 없군요."
지배인은 얀센과 아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랑은 그 얼굴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결백하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저는 지금껏 손님이 결제할 때 카드와 모바일 결제만 받았습니다. 단 한 번도 현금 결제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현금 결제는 모두 얀센 씨가 했습니다. 저는 무관합니다."
아랑은 당당히 말했다.
"그래요? 주문 취소도 해본 적이 없나요?"
"그건 아니지만......."
"CCTV를 돌려보니 아랑 씨가 주문 취소 버튼을 많이 누르더군요."
"네?"
아랑은 그제야 깨달았다. 주문 취소는 거의 아랑이 했다. 얀센은 주문 취소를 하지 않았다. 얀센이 주문 취소 전표 번호를 불러주고 아랑이 그 번호를 취소했다. 아랑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처음부터 얀센은 그럴 경우를 대비하고 자신이 주문 취소를 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에요, 지배인님! 제가 왜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아랑의 목소리는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아랑 씨가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옆에서 함께 근무하는 제 불찰입니다.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지배인님!"
얀센의 말은 자신은 결백하다는 말과 같았다. 지난번과 같이 이 건도 아랑이 뒤집어쓰게 되었다. 이번 건은 심각했다. 지배인은 당장 계약해지를 하고 싶지만 그동안의 피해액을 언급하며 모두 배상할 때까지 월급의 1/3만 받고 일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지배인은 아랑의 업무를 홀 서비스로 변경 조치했다. 아랑은 낙담하고 절망했다. 그리고 억울했다. 그래도 견뎌내야 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어? 카운터에서 일하던 여자분이 안 보이네요?"
노란색 헬멧의 배달 라이더가 배달 상자를 집어 들며 말했다.
"네, 홀 서비스로 변경되었어요. 큰 사건이 있었거든요."
얀센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노란색 헬멧의 배달 라이더는 홀 안쪽을 두리번거리며 아랑을 찾았다. 테이블을 정리하는 아랑이 보였다. 아랑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배달 라이더는 배달 상자를 들고나갔다. 이내 '부릉'하는 소리가 나고 사라졌다.
“얀센, 지배인님이 찾아요.”
얀센은 지배인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
“아직도 현금 가지고 장난하나?”
“그게 무슨 말이신지 ….”
지배인은 의자에 앉아 뒤로 젖히고 얀센을 바라보았다. 얀센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배인은 몸을 앞으로 굽혀 책상에 턱을 괴고 말했다.
“내가 모를거라고 생각했나? 아랑은 그런 추잡한 일을 하지 않아. 자네가 그런 짓을 했지. 그런데도 내가 아랑에게 누명을 씌운 이유는 캐시어 업무에서 쫓아내려고 그런거야. 자네를 좋아해서가 아니야.”
얀센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얀센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자넨 하던 대로 하게나. 대신 일정금액을 내게 상납하게.”
지배인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또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아랑은 예전에는 뿌듯함과 만족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울분과 슬픔이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트램 정거장에서 트램을 기다리는 아랑은 의자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부릉'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헬멧을 쓴 배달 라이더가 다가왔다. 그는 정거장 옆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리며 말했다.
"'히말라야' 레스토랑에서 근무하시는 아랑 씨죠?"
"맞는데, 누구세요?"
아랑은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달 라이더라는 사실만 알았다. 배달 라이더는 헬멧을 벗었다.
"저는 데이빗입니다. 배달 라이더죠."
"그런데 제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나요?"
아랑은 그를 쳐다보며 힘 없이 말했다.
"들었어요.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요. 속상하고 많이 억울하시죠. 아랑 씨! 제가 보기에 당신은 어느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입니다. 힘내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랑은 울컥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참아왔던 서러움과 울분이 터져 버렸다. 아랑은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아랑을 보며 데이빗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그들에게 부당하게 당한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당신이 이주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당신의 노동력뿐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생각과 꿈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요. 값싼 비용을 들여 노동에 필요한 당신의 몸뚱이만 필요로 해요. 그리고 당신에게 그저 시키는 일만 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 나라에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랑은 더 서럽게 울었다. 자신이 이 나라에 와서 꾸었던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꿈은 이 나라에서 일하는 동안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 경력을 인정받아 식당 지배인이 되어 이 나라에 정착하는 것이다.
울음을 멈추고 진정된 아랑은 배달 라이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시죠?"
"저는 이 빌어먹을 나라의 내국인이지만 당신과 다를 바 없는 노동자일 뿐입니다. 현재 배달 라이더로 일하고 있죠. 그리고 당신과 같이 억울한 상황에 처한 이주 노동자를 돕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아랑 씨! 제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데이빗은 아랑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랑은 천천히 그의 손을 잡았다. 멀리서 트램이 환한 불빛을 비추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끝>
<이주 노동자를 묻는 십 대에게>(이란주 글, JUNO 그림, 서해문집)의 글을 읽고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