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습격
근대화되고 산업화되고 정보화되었다는 이 사회에서 자연은 철저하게 객체화되어있고, 계랑 되어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마치 자신은 철저히 자연과 유리되어 있는 존재인 것 마냥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해가 뜨든 바람이 불든 날씨에 자신이 허락해 준 부분은 찰나의 감상이다. 쨍한 하늘이 예쁘고, 우중충한 거리가 맘에 들지 않는 잠시의 환각 정도로 날씨를 상대한다. 만일 그게 다라면 왜 초등학교 때 일기에 매일매일 날씨를 기재하라는 강압적인 요구를 받았겠는가? 분명 거기에는 우리에게 숨겨진 심오한 이유가 들어있을 것이다.
짜증 날 정도로 날씨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 영향은 특히 저혈압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비가 오는 날은 저기압이고, 그렇게 되면 혈관을 누르는 기압이 더 낮아져서 안 그래도 낮은 혈관의 압력은 더 낮아진다. 저혈압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아침의 낮은 기압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위해 낮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하루 종일을 막 일어난 아침으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에 커피를 공급할 것이다. 공급된 커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날도 허다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는 감정에도 습기를 불러일으킨다. 낮아진 기압에 생겨난 작은 공간으로 물기가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틀림없다. 그 물들은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습한 기운과 함께 더해져 물 묻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어두운 색깔의 옷을 골라잡게 만들고, 물속을 걷는 듯 느릿하게 감정의 근육을 움직인다. 빗방울이 타다닥 터지는 것이 맺혀있던 멍울을 터뜨리는 것도 같고, 비를 끄집어 내리는 중력이 과다하게 작용하는 것 같이 나도 한없이 끄집어 내려진다. 이러한 눅눅한 감정은 날씨를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데 이 사람들은 세상이 바쁨을 허락해 주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권력과 돈으로 상징되는 바쁨 대신 비의 게으름과 비로 인해 바뀌는 불가항력적 감성을 획득할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차치하고서라도 비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낮아진 기압으로 인해 사람들은 느릿하게 행동하게 되고, 혹시라도 불안정한 정신의 대사작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불안정한 정신의 신진대사를 가지게 된다. 몸에 들러붙는 습기는 대부분 감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팔다리의 감각을 불러일으켜 소란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비는 인간의 내적 주체에 까지 침투해 들어온다. 비는 많은 것을 기르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너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때로 창문 밖에서 투둑 거리며 소리 지른다.
비는 우리가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물과는 다르다. 비는 야생이고 자연이며 생명이라면, 화장실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은 사료를 먹고 길들여진 가축이다. 레고 속의 세상처럼 변해버린 이 도시에 야생이 찾아오는 순간은 비가 오는 날 뿐이다. 비가 와야 사람들은 자신이 동물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숲에 비가 오면 나무 밑에서 웅크리고 몸을 핥는 동물처럼, 그저 어딘가 안전한 곳에 숨어 하늘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싶은 본능을 슬금슬금 기억하며 되뇔 수 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