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따기

by 문예반장

그녀의 고음은 싱그러웠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라는 노랫말 속에 부드러움과 달콤함까지 섞였다. 물리학적 관점의 별은 물질 구성 요소 중 가장 가벼운 수소의 집합체이며 에너지 고갈과 환경 변화 등의 요인 대비 지구를 대신할 미래의 새로운 별을 찾는 과학자의 탐구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행성의 무리를 뜻한다. 낭만적인 아름다움만은 아닌, 쉽게 닿을 수 없는 신비한 천체들, 신화나 전설을 통해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숱하게 심어준 그 별을 따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많지 않다.

둥그런 아크릴 간판 속에 왕관을 쓴 여자가 보인다. 일 년 내내 2층 유리 벽 구석 자리에 걸려있다. 원 안에 허리 아래는 잘려있어도 머리칼은 분명 아래까지 늘어졌다. 갈라진 꼬리를 양옆으로 벌려 머리끝까지 올린 채 두 팔을 뻗어 붙잡았다. 관능적이다. 눈웃음치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야릇하게 나를 바라본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매력적인 여성이 넘쳐나는 요즘, 세이렌(Siren)은 신화 속의 일개 마녀일 뿐, 나는 그녀에게 넘어갈 생각이 없다.

그녀는 외로움에 지친 뱃사람을 노래로 꼬드겨 미치게 만들고 결국은 죽음으로 이끌었다. 기록상으로 이 요정의 유혹을 물리친 인물은 그리스의 두 영웅뿐; 오디세우스는 강한 의지로,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능가하는 노래 실력으로 위기를 넘겼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수천 년 전의 이 님프가 파도 넘실대는 바다를 벗어나 내륙의 별다방에 나타났다. 현대식 음향기기로 노래를 들려주는데 곡 분위기가 대부분 끈적거리거나 나른하다. 단순한 우연일까.

여기서는 별의 교환이 이뤄진다. 일정 절차를 거쳐 골드 회원 자격을 얻고 미리 충전해둔 돈으로 상품을 구매하면 회원 카드에 별이 적립된다는 것. 별을 모으면 몇 가지 선물과 무료 음료를 준다니까 공짜 좋아하지 말라면서 미련하게도 구미가 당긴다. 그런데 불편하다. 별을 받으려면 돈을 미리 넣으라니. 게다가 자동 이체를 설정해두면 보너스까지 준다고 꼬드긴다. 누구를 위한 배려인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 후반 극에 달했던 은행 계좌 해킹 사건으로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내 돈을 털린 적 있다. 그 경험이 아직도 억울한 내게 ‘자동 이체’라는 용어는 ‘그건 안 돼’와 같은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회사이며, 사고 전력도 없다고 이십 대 후반 점장은 힘주어 강조한다. 금융사고를 염려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족으로 몰린다. 조금만 가능성이 보이면 앞뒤 재볼 것 없이 밀어붙이던 젊은 날의 내가 위험 요인 없다는 데도 갸웃갸웃 망설이고 있다.

전년도 통계가 대략 600만 이상의 한국인이 별을 사고 있다고 증명한다. 그들 금고 안에 700억 가까운 돈이 선납이나 자동 이체 형태로 적립됐다. 세이렌의 마법이 살아난 걸까, 광고 기법이 대단했을까, 아니면 별을 주워 담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었든지 고객에게 별을 드린다는 커피 전문점의 마케팅 구호는 대성공이었다. 별을 줍는 소비자는 당장 즐겁다. 이자 지급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쌓아가는 이 커피점 경영진도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50 중반 이상의 중장년층이 별 받기 대열에 합류한 사례를 나는 본 적 없다. 대부분 젊은 층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조카며느리의 의견을 들었다. “마시는 커피값만큼만 미리 내고 마시는 거면 손해 없잖아요. 삼촌은 그게 싫고.”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범주 안에서 가능한 만큼’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몇 푼 되지도 않는 은행 이자 대신 눈앞의 실질적 만족을 선호하는 요즘 세대의 취향일 것이다.

나는 이곳을 나만의 특별한 이유로 드나든다. 조카 말대로 어차피 써야 할 커피값이라면 미리 내고 별을 줍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자동 이체는 접었다. 추가 별 따기는 관두고 필요할 때마다 충전하기로 했다. 두 주일 만에 자랑스러운(?) 정식 회원이 되자 보란 듯 무료 쿠폰이 날아왔다. 기분이 썩 괜찮다. 젊어서는 별 따는 노래나 열심히 불렀고 이제는 낭만적인 ‘따기’ 대신 편히 ‘줍는다’.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대’를 위해 별을 따오리라는 일탈의 순간을 끊임없이 꿈꾼다. 그런 나를 받아줄 대상과 기회가 있을 것인지, 혼인 서약을 벗어난 도덕과 윤리의 사슬을 어떻게 감당할지 등 시답잖은 걱정이 나를 망설이게 만든다. 장마 끝 밤하늘은 뭔 심술로 저리 맑을까. 무한대로 널려있는 시간이 인간한테는 왜 제한적인지. 갑자기 억울하다. 편히 잠들기는 글렀다. 입에 익은 동주 형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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