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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Sep 23. 2021

스테디셀러 드라마의 청사진 <멜로가 체질>

여성 캐릭터를 대우하는 법


*<멜로가 체질> 어떻게 스테디셀러 드라마가 되었나?



<멜로가 체질>은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을 위한 드라마다. 꼰대를 구분하고, 윗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애사심은 딱히 없으나 주어진 업무는 훌륭히 이뤄내려 노력하고, 주관은 뚜렷하며 감정에 솔직하다. 하지만 아직 뭔가를 이룬 바는 없어, 하고픈 말을 마음대로 내뱉어서는 안 되는 요즘 애들 말이다.


세 명의 여자 주인공을 주축으로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주인공의 엄마로 나오는 캐릭터까지도)는 요즘 애들 성질을 그대로 반영한 듯 보이지만 위에 말한 특징과 딱 하나 다른 점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생각과 고충을 여념 없이 대사로 쏟아냈다는 점에서다. 이는 드라마가 내세운 ‘수다 블록버스터’로써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종영 후에도 끊임없는 입소문이 퍼뜨리며 <멜로가 체질>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마니아층을 형성 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윗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 상사의 말에 꼬박꼬박 대꾸하며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똘끼 충만한 임진주(천우희 분)는 이상한데 대단한 사람으로 칭송받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손범수 피디(안재홍 분) 역시 기득권자인 대스타 작가 정혜정의 훈계를 듣지 않으려 손수 귀를 막아가며 “에베베, 아아아, 안 들려, 충고 안 들어어어”를 외치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20·30대 직장인들의 애환을 속 시원히 풀어주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또한 꿈을 위해 직장 내 폭력과 성희롱을 꾸역꾸역 참지만, 권력은 약자를 더 약자로 만드는 것을 깨닫고, 결국 울분을 토하며 야구 방망이를 들어 부당함에 대응하고, 또 친구의 불한당 같은 전 남자친구를 죽이기 위해 낫을 들고 뛰어다니는 다큐멘터리 감독 이은정(전여빈 분)과 해맑은 얼굴과 사근사근한 성격으로 극 중에서 가장 여려 보이지만 육아와 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강단 있는 황한주(한지은 분), 이렇게 당차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조합은 드라마가 종영된 후에도 계속해서 회자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였다.



또, 예로부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떨어지는 무언가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인 “여자가 무슨 설거지야”라는 대사를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에 넣어 물 흐르듯 연출해 특정층의 비난을 사지 않고도 다른 특정층의 환심을 사고, “네가 나랏돈을 빼먹었냐, 국정을 농단했냐”, “국회의원 한명이 와서는 굳이 아이들을 목욕시키겠다고...”라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은은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섬세한 연출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는 깨알 같은 재미여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를 필사적인 태도로 보게 만들고, 이것은 집착과도 같은 집중력으로 이어져 덕질을 하게끔 유도한다. 이처럼 매 순간 펼쳐지는 코믹하지만 뜻깊고 아름다운 대사의 향연과 배우들이 읊조리는 일정한 연기톤은 마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주인공이 내뱉는 특유의 대사 처리 방식과도 비슷해 보여 시청자들의 호불호를 갈리게 한 주범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밑에서 언급할 효과를 일으켰다.



글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극중에서는 음식에 관련된 얘기를 계속해서 한다. '먹방' 장면도 계속해서 나오고. 연출이 아주 트렌디하다.


<멜로가 체질>은 최고 시청률 1.8%로 성공적인 수치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종영 후 스트리밍 사이트인 넷플릭스와 왓챠에 방영되며 N 포털 드라마 부분 순위 19위, D 포털 29위-4월 6일 기준-,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톱 10위 안에 들어 방영 당시 얻지 못한 화제성에서 쾌거를 이루고, 종영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종 블로그와 포스트에 ‘여자’, ‘드라마’, ‘공감’ 등의 키워드로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또한 여주인공 3명이 함께한 광고(19년 12월, 동서식품)와 극중 관계를 살린 전여빈, 손석구 배우의 광고(20년 1월, 에임), 한지은 배우의 지상파 드라마 주인공 데뷔 등 배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멜로가 체질>은 식지 않는 보온병의 열기처럼 끊임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덥히며, 다시 보고 싶은 인생 드라마로 자리해 지금까지 롱런하는 스테디셀러 드라마가 되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이런 역주행 현상을 토대로 OTT 서비스의 효과도 염두하여 <멜로가 체질>처럼 작품의 일관성과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리라 판단한다.





작성 일시: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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