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2:42분. 성탄절에 또 불면이라 눈감고 양 세어가며 억지로 잠을 청하기보다는 올해를 한 번 돌아보고 싶어 기록을 해본다.
팬데믹 여운이 아직도 남아서 코로나 이전의 생활은 앞으로도 복귀가 불가능해 보이지만 지나간 2년 전보다는 활동적인 한 해였다. 전반적으로 가장 주목할 키워드는 아무래도 일인 것 같다. 슬프지만 올 한 해 삶의 70% 정도는 일로 보냈다. 나머지 10%는 3년 반 만에 서울 가족친지들 및 베프와 상봉, 다른 10%는 삶의 중심 찾기 그리고 나머지 10% 프로는 오래된 잊힌 관계들 재생으로 구성하고 싶다. 이 백분율과 각 키워드가 삶에 가져온 무게에 특별한 상관관계는 없다는 것이 중요한데 큰 그림 안에 넣고 돌아보는 것이 가능한 연말이니 곰곰이 훑어보면 각각 가치는 평등하게 1/4 정도 차지한 것 같다.
일을 먼저 그려볼까.
스타트업 특성인지 어딜 가도 턴오버가 심한데 입사할 때는 규모가 더 작았던 이 회사에서는 프리랜서 아닌 정규직 인원이 많지 않아 입사 1년 반이 되어가는 시점에 년수로만 따져 팀 내 시니어 축에 속하게 됐다. 그리하여 우리 팀에 들어온 나보다 더 경력자들에게도 회사 및 일 관련 온보딩을 자연스럽게 도맡아 했다. 작년 초에 3개의 피쳐팀으로 재구성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프로덕트 매니저(PM)들도 추가로 뽑아 우리 팀에는 나보다 년수가 많은 사람이 프리랜서 백엔드 개발자인 줄리안 한 명뿐이었다. 늦게 들어온 PM들 마저도 꾸준히 온보딩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누가 개발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것만 개발해서 넘긴다고 했는가! 실제로 그런 백엔드 엔지니어들 꽤 봤는데 스타트업 계에서 금방 도태되기 때문에 같이 일해본 적은 첫 회사였던 프랑스 승마협회 밖에 없다.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유저 스토리가 스스로 만들어져서 밥그릇에 떨어지는 에코시스템이 아니다. IT를 전혀 모르는 PM들과 처음 일하다 보니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스크럼으로 돌아가던 팀이라 매주 새로운 피쳐를 그루밍할 때마다 질문하고 교정해주며 간섭(?)하는 게 주요 패턴이었다. 영화계에서 IT로 커리어 전향한 이후 가면 증후군을 달고 살았는데 올해 드디어 그 갭을 아주 조금 넘어간 것 같다. 내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니, 가면 증후군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프랑스 스타트업 계에서 리크루팅으로 제일 중요한 WTTJ (https://www.welcometothejungle.com/fr)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올해 회사 페이지 재단장을 한다고 했다. 이때 백엔드 개발팀을 대표해서 소개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인사부 팀장에게서 받았고 승낙을 했다. 2분 정도 되는 짧은 소개 비디오인데 영상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고 종이에 적어 막힐 때마다 커닝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하여 미리 주어진 질문 4개에 대한 답변을 단어 하나 쉼표 하나 틀리지 않게 무조건 외웠다. 답변도 나보고 준비하라고 하더라. 회사 이미지에 맞춰 독재적으로 푸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 같은데 엔지니어링 VP에게 검토받긴 했다. 자신 내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두말할 것 없이 좋은 기회지만 나는 일단 수줍음 및 가면 증후군 털어버리는 개인적 도전으로 임한 것 같다.
올해도 와인 꽤나 마셨지만 매우 가까운 사람들 아니고서 크게 놀러 나간 기억은 역시 회사에서 열린 여름, 겨울 파티에서였다. 자주 보지 않아도 매일같이 지지고 볶는 상황이라 2년 정도 지나니 정말 친해지고 서로 믿음이 있는 동료가 서너 명 정도 있는데 팔에 끼고 사진 많이 찍었다. 줄리안, 레티시아, 마르고, 까미유.
백엔드 개발자 리크루팅에 올해 2분기까지 참여했는데 우리 회사는 1차로 알고리듬 테스트 그리고 2차로 라이브 코딩 테스트를 한다. 회사에서 제일 존경하는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이자 (현재는 엔지니어링 매니저가 됨) 친구인 레티시아와 2인으로 라이브 코딩을 두 번 같이 참여했고 그 이후 평가까지 도와줬다. 커리어 전향 후 이직을 두 번이나 했으니 나도 이런저런 이론 및 코딩 테스트를 괴로울 정도로 많이 거쳤는데 반대쪽에서 보는 느낌이 상당히 신선했다. 남의 입장에 있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점들이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보였고 다음 이직 시 나 자신에게 적용해볼 수 있는 최고의 레슨을 얻었다.
내가 참여한 리크루팅 과정에 나처럼 커리어 전향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이름이 발랑틴이다. 이미 이력서 받을 때부터 레티시아는 나에게 질문이 많았다. 중단기 개발자 연수 학원(?)들이 엄청 많아졌고 개발자 요구가 많다 보니 커리어 전향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프러덕트 매니지먼트 쪽 남녀 비율 불평등이 덜란 것 같지만 아직 개발자 쪽에는 여자 분포가 적어서 여자-개발자-커리어-전향하면 아는 사람들에게는 어쨌든 내가 컨택 포인트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심지어 소르본느 영화과 학사 당시 같은 학년에 공부하던 콜롬비아 여자애가 있는데 화장품 가게인 세포라에서 매장 매니저로 마주친 적이 있어 더 기억에 나는 바로 그 여자애가 링크드인으로 연락이 왔다. 자기 2년 개발자 연수 과정을 하고 있으며 우리 회사에서 자기 학교에 인턴 리쿠르팅을 나왔는데 회사 이름을 보니 내가 생각이 나서 또 내가 비슷한 길을 걸어왔으니 커피 한 잔 하면 좋겠다고. 즐겁고 뿌듯한 마음으로 당연하지 않으냐고, 파리 돌아가서 만나자 했다. 발랑틴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파나마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다가 프랑스로 귀국하여 6개월인가 연수를 받은 프로필인데 레티시아에게 이런저런 대답을 해주면서 결과적으로는 회사에서 초신입을 감당할 의지가 있는지에 따라 2차 테스트에 가기로 했다. 알고리듬 테스트를 보면 경력이건 신입이건 큰 차이가 많이 안 난다는 것을 발랑틴 테스트를 보고 알았다. 현실에서는 알고리듬 문제들을 겪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베이스로 가지고 있으면 좋지만 다들 잊어버리게 되는 것인가. 라이브 코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라이브 코딩의 경우 고급 수학 문제 풀 때 답만 찾을 일이 아니라 그 답에 이르는 프로세스를 적어야 하는 것처럼 면접자들의 사고 패턴과 막다른 골목에 마주했을 때 문제 해결 능력을 보는 것인데, 이야말로 경력자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테스트라 더욱 조심스러운데 발랑틴의 경우 그전에 본 경력자들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났다. 며칠 후에 발랑틴을 고용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과 발랑틴이 우리 팀으로 온다는 소식 그리고 발랑틴 멘토링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들었다. 그렇게 발랑틴의 테크티컬 멘토가 되어서 회사 프로젝트 주요 개념 문서 정리부터 시작해서 3개월간 우리 팀 분야에서 매일매일 해야 할 업무 선택, 스크럼 기본 상식에서부터 커밋 푸시 등 기본 개념 이상의 GIT 주요 커맨드까지 사소하지만 내가 처음 일했을 때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최대한 전수해 줬다. 누구에게도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막판에 갈수록 내심 괴로워졌고 여기서 배운 게 있다. 나는 멘토링할 그릇이 못되구나, 교육이라는 것은 내 체질이 아니구나. 한두 번 설명해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내심과 이해심이 적은, 작은 그릇이다.
그렇게 발랑틴 멘토링이 끝나갈 무렵 또다시 테크팀 조직 개편이 시작됐다. 마이크로서비스 개입과 동시에 분산 시스템 아키텍처를 도입하면서 각 분야에 따라 네 개의 피쳐팀으로 나눠졌고 매니저들은 가고 싶은 팀에 대한 각 개발자들의 의견을 받고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내 생각은 특별히 어떤 피쳐팀이 더 끌리고 이런 것 없이 개발의 ㄱ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PM들과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정기적 회의로 가득한 스크럼을 떠나서 칸반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 네 개의 팀 중 하나가 파트너들 APIs를 연결하는 팀으로 PM 없이 백 프로 개발자로 구성되어 있고 엔드 유저를 위한 피쳐를 제공하지 않기에 굳이 2주짜리 스프린트를 할 필요도 없었고 (칸반으로 갈 수도 있다는!) 테크니컬 프로덕트 오너 (TPO) 역할을 부분적으로 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당연히 나는 그 팀에만 지원을 했고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서 11월부터 TPO로 일하고 있다. 매니저에게 20% 정도 시간을 TPO로 쓰겠다고 말했고 약속을 받았으나 현실은 90%이고 백엔드 엔지니어들 뒷바라지하는 상황이다. 칸반 시스템도 정착되지 않았고 테크니컬 로드맵도 다 짜지 못했는데 아직 2달밖에 되지 않았고 무조건 올해 안에 내야 하는 첫 번째 서비스 론칭에 전력을 쏟아야 했기에 굳이 조바심 나는 상황은 아니다. 내년 1분기를 보내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올해 일에 관련된 정산은 여기서 마친다. 2022,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