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아시스 딜리버리 사례를 중심으로
팬데믹이 막 시작하던 지난 해 2월 말, 페이스북에서 김선아 다큐PD와 김옥영다큐작가가 페이스북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다큐멘터리인들에게 10만원씩을 후원하겠다고 올린 포스팅을 봤다. 김선아아다큐 PD의 내용은 이랬다
오늘이 힘든 다큐인들에게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코로나 상황로 인해 프리랜서 계약직 예수라 음악인 영화인 등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글을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한 15년 프리랜서로 살았는데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한 달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이 오히려 걱정하며 밥도 사주고 쌀도 사주고 영화후원해주고, 참으로 천사 같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작년부터 조금 여유가 생겨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제 통장을 보니 이번 달 50만원 정도의 여유는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젊은 다큐인 다섯 분에게 조건 없이 10만원씩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필요하신 분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다 나은 다큐생태계 조성을 위해 힘써 가겠지만 일단 이렇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겠습니다. 공개적으로 하는 이유는 이런 마음이 좀 널리 퍼졌으면 해서입니다.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건만 다큐생태계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이리 품앗이를 하고 있는데 예술생태계에 몸담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누구든 공유해가도 좋다고 하여 난 포스팅 내용을 긁어 예술가들에게도 조건없이 10만원씩
열 분을 응원한다고 올렸다.
올리자마자 연구기획자 김유진과 아트앤마트의 권기원대표도 보태고 싶다고 답이 왔다.
코로나19로 각종 전시회와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배우와 연주자들 등 문화예술인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데다가 대부분 프리랜서로 공연이나 강의 등등 일거리가 끊기면서 당장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처지라 자발적인 후원 릴레이가 이어졌다.
불과 24시간 만에 참여자는 열배로 늘어나고 규모는 네 배로 커졌다.
독립영화 감독, 오보에 연주자, 소설가, 문화예술단체의 청년 대표, 예술대생, 인체모델과 사진가, 공연기획자, 스트릿 댄서, 미술이론가 등 개인 25분과 창작뮤지컬 단체 1곳과 소극장 1곳에 ‘오아시스’가 송금되었다.
내겐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조건 10만원의 ‘오아시스’를 보내는 경험 자체가 ‘믿음’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는 실험같았다.
모금하는 전문기관이 따로 있어 기부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송금까지 직접 해보는 경험은 남달랐다.
상대방을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안녕을 빌고 미래를 기원하는 갸륵함과 간절함이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작은 시도가 움직임을 만들었다.
댓글로 ‘나도 참여한다’, ‘나도 몇 사람에게 보내겠다’는 글이 달렸다. 십시일반 묻어가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수 도 있었지만 특정한 곳에서 전담하거나 조직적으로 하기 보다 개인마다 저마다 자신의 담벼락에서 스스로 해보는 경험을 만들어 느슨한 연대가 연결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얀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에서 가장 높은 산’을 보면 인간은 불합리한 현상에 압도되는 이성적 존재라면서 인간성을 상실하게 됐을 때 비로소 인간다와지는 부조리한 존재라는 표현이 있는데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우리가 그랬다.
사재기나 혐오 등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도 많았지만
반대로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주고 연대하는 인간다워질 수 있는 상황도 있었다.
마치,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이란 도시에서 발병했을 때 아파트 주민들이 저녁 8시면 창문을 열고 “짜이요 우한‘ 이라며 힘내라는 메시지를 모으고,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 도시 곳곳에서 박수를 치고 응원 메시지를 집단적으로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19로 인해 너나없이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 일거리의 사막, 관계의 사막에서 물 한줌이라도 되는 오아시스를 나눠 보자고 #오아시스 딜리버리를 덜컥 시작해
오아시스를 제공하겠다는 참여 의사가 댓글로, 메신저로 이어졌지만, #오아시스 딜리버리가 기부 플랫폼이 될 만한 여건을 갖추지도 못했거니와 지난 해 2월29일부터 3월2일까지 겪은 찐한 경험을 보다 많은 분들이 직접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역할은 시작하고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불쏘시개로 족했다.
과연 누군가가 #오아시스 딜리버리를 이어갈까 ?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고 사라지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지만 가끔 검색해보면 김광보 연출이나 고연옥 희곡작가, 그리고 피아노 인 유라는 유튜버 등 의 참여로 # 오아시스 딜리버리는 소리없이 이어져 가고 있었다.
강원문화재단에서는 전화가 왔다. 강원도에서도 적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취지만 살린다면 어떻게 사용해도 좋다고 답했다.
# 오아시스 딜리버리의 취지가 이어져 실천으로 옮겨지는 것이 중요하지 캠페인 브랜드를 누가 쓰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저 어려움에 혼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옆에 같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작은 행동인지라 오픈 소스로 활용되길 바랬다.
머지않아 성북크리킨디 라는 이름의 아래와 같은 포스팅을 마주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봄에 예정되어 있던 수많은 공연과 축제, 공모사업이 대부분 취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아도 매년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성북구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과 참여가 두드러진 곳입니다. 일시적으로 행사나 예술활동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성북 지역의 다양한 마을활동과 지역사회의 이슈에 함께 해왔습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성북구가 문화예술로 꽃피우는 동네라는 찬사를 듣는 것은 바로 헌신적이고 역량 있는 예술가들이 애써온 덕분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성북문화재단에서 일하는 몇몇 사람들이 제안해서 시작하지만, 성북이라는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지역예술가, 청년예술가, 문화예술활동가를, 우리의 ‘동네친구들'을 응원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와 그들, 나와 너라는 구분과 단절이 아니라 '우리'라는 성북의 울타리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고, 나아가 고통을 분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계를 위한 택배 알바를 뛰지 않고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죽고 싶다'는 절망이 '성북에서는 살만하다'는 고백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작은 금액이라 산불을 끄기 위해 작은 입으로 한 방울의 물을 나르던 크리킨디 벌새처럼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나아가 예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드립니다.
기부참여자는 아래 계좌로 자유롭게 입금한다.
지원이 필요한 문화예술인의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신청하거나 주변에서 추천을 해 주면 당사자와 연락해서 직접 지원한다.(1인 1회 10만원)
매주 입금내역과 지원내역을 단톡방/이메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개한다.
다만, 개인신상 관련 내용은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의 기본 원칙은, 기부참여자의 경우 철저히 개인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기부에 동참하시는 분들은 이 원칙에 동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북 크리킨디>는 권경우, 김주영, 박현진, 이진우, 이현 (가나다순)의 초동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정성껏 모아주신 금액을 운영하며 이 사이트에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성북 크리킨디>에 영감을 주었던 ‘오아시스 딜리버리’에 관한 언론기사(클릭)를 공유합니다.
재난과 위기에 함께 대처하는 모든 분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오아시스 딜리버리에서 #성북 크리킨디로의 진화이다. 일취월장이다. #오아시스 딜리버리에서는 페이스북만 사용한 반면 #성북크리킨디는 입금내역과 지원내역 또한 별도로 사이트에 기록하고 있다. 며칠 지나니 또 새로운 캠페인 브랜드가 탄생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청년활동가 후원 프로젝트: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
역시 청년들이 발상한 만큼 타겟도 명확해지고 캠페인명도 직접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이 캠페인은 지난해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었는데 2주간 무려 134명이 참여하고 151명의 청년들에게 떡볶이가 입금됐다.
청년활동가 대상의 떡볶이 입금 프로젝트는 더 진화되어 기부자의 응원 메시지와 신청자의 소감까지 서로 피드백 받은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다. 메시지를 인용해 보면 아래와 같다.
-우리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활동해요!
-느슨하게나마 연결된 우리에게는 '우리'라는 장점이 있으니, 서로를 지탱해주면서 함께 헤쳐나갈 방안을 더 찾아봐요. 가능한 만큼 힘 합칠게요.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겠지만, 서로 마주보며 힘을 내 봐요!
-존버는 승리한다! 서로서로 손잡고 버텨봅시다 화이팅!
-청년활동가들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지키고 싶습니다. 월세 내고 떡볶이 먹으면서 쫄지 말고 어려운 시기 잘 버텼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살아야 우리 사회가 삽니다. 저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볼께요. 힘내실 수 있기를. 화이팅!
- 떡볶기 맛있게 먹고 힘내요^^
- 우리 존재는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연결될 것입니다. 함께.
- 연대는 위기를 이기는 우리의 양식
-지금 이 시기가 우리 모두에게 전환의 시기가 되길 바래봅니다. 모두 힘내세요!!!
-굶지마~!!
-다음 번엔 신청자가 아닌, 떡볶이 후원자가 되겠습니다. 다들 코로나로 외출도 못하고 힘들텐데, 맛있는 거 먹으며 같이 힘내요 우리:)
응원과 소감 메시지만 읽어도 마음이 꿈틀거린다.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 프로젝트 명은 아마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란 베스트셀러에서 차용하지 않았나 싶다.
4월21일 부터는 서울 소재 국공립전동공연예술단체의 예술가들과 민간단체의 예술가들이 머리와 마음을 모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 극복을 위한 ‘전통공연예술인 긴급 연대 제안’을 하고 있다. 모금은 5월3일까지 2주간 진행되며 이후에 나눔이 선착순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런 변화의 추이를 보면서 알게 모르게 #오아시스 딜리버리가 첫 단추가 되었구나 가늠한다.
기존 기부 플랫폼의 기부상품처럼 목표액, 기부 스토리, 도식적인 사진 등으로 박제화되어 있었다면 이런 다종다양한 흐름의 변화가 가능했을까?
일 년 전 시도됐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지만 이제 다시 불러오는 이유는 #오아시스 딜리버리 사례를 통해 연대와 협력의 바탕인 자발성과 다양성의 조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수축사회’의 저자 홍성욱은 저성장사회 속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이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전제를 강조하지만 책 속에서 강조한다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타적으로 전환하는 연대와 협력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야 가능하다.
자발성은 스스로 주체가 되었을 때 가능하고, 다양성은 신뢰가 가능할 때 마음껏 표출된다.
만약, 내가 있는 곳에서 연대와 협력이 잘 안된다면
지금 나는 타인이 자발성을 갖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있는지 ?
나와 다른 사람의 다른 지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애정하고 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 글 중 김선아다큐 PD 페이스북 포스팅, 성북크리킨디의 포스팅, 전통공연예술인 긴급 연대 제안 및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 의 포스팅을 일부 인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