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인 Feb 03. 2023

심연에서 괴물로

<경계인>과 <지옥>에서의 괴물성


미스테리 장르(혹은 기능)(주석 - 여기서 미스테리를 반복해서 장르 혹은 기능이라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미스테리’라는 발화와 장르로서의 ‘미스테리’는 구별지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양자 모두를 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혼선이 없도록 장르과 기능으로 동시표기 하였다.)는 근본적으로 괴물을 포함한다. 이 때에 괴물이란 괴물적 형상과 괴물적 내면 혹은 괴물적 사건 모두를 지칭한다. 그것이 유형의 것이든 아니든, 이 지독한 존재는 언제나 플롯 상의 비어있는 심연에 숨어있다. 심연을 통해 드러나는 혐오스러운 장면이 바로 괴물의 실체(이거나 그 원천이)다. 때문에 미스테리의 매혹이란 결국 괴물을 향한 매혹일 수 밖에 없다. 


 프랑코 모레티는 《공포의 변증법》에서 메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통해 괴물의 실체에 대해 논증한다. 그는 셜리의 괴물이 마르크스주의를 경유한 프롤레탈리안의, 스토커의 흡혈귀는 프로이트를 경유한 억압된 성적 욕망의 메타포임을  밝힌다. 모레티에 의하면 괴물들은 곧 현실의 은폐된 욕망이며 징후다. 따라서 괴물, 그리고 심연이 불안과 매혹을 동시에 유발시키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 시대에는 허용되지 않았거나 혹은 은폐된 욕망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괴물의 퇴치라는 결과로 마무리되는 것은 훈육의 욕망과 연결된다. 괴물은 시대가 금지하려는 매혹적 욕망과 은폐하려는 불안을 동시에 상기시키는 불쾌한 존재다. 이 존재에 대한 퇴치 작용은 사회의 안정시킴과 동시에 지배 이데올로기의 은폐 작용을 연장한다. 결국 미스테리의 비어있는 심연과 그 해결은 시대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한번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괴물을 설정하고 있는가?


괴물의 징후로부터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된 <경계인>은 의문의 죽음을 겪고 영혼이 된  주현이 스스로 죽음의 경위를 역추격해간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건을 플롯 상의 공백으로 설정한 뒤, ‘누가’ 그러한 일을 벌였는가를 쫓는 ‘후던잇(Whodunit)’ 미스테리라 할 수 있다.


 <경계인>의 흥미로운 지점은 저승의 시점에서 이승의 공백을 추격한다는 설정이다. 이 때에 심연의 위치를 초자연 세계가 아닌 현실에 놓았다는 점에서 일견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 플롯의 심연은 곧 세계가 품고 있는 불안한 괴물과 등치된다. 우리의 통상적인 인식에서 괴물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상정된다. 우리에게 있어 괴물은 인간보다는 유령과 흡혈귀로 표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작에선, 그러한 초자연적 존재들이 현실의 심연을 추격하고 최종적으로 범인(=괴물)이 살아있는 인간임을 밝힌다. 우리의 기초적인 사고틀에서 괴물과 비괴물의 위치가 뒤바뀌게 된 셈이다.


 때문에 본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타이틀인 ‘경계인’이 된다. 경계인은 이원화된 세계에서 앙자 모두에게 속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뜻한다. 작 중에서는 주현의 죽음을 함께 쫓는 흡혈귀 성민으로 대표된다. 흡혈귀인 그는 인간들에게도 섞여들 수 없고 저승의 존재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되며 이승과 저승 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종적 구분에 의한 경계성이 제시되며 ‘경계인’의 범주는 넓어진다. 특히 생전의 주현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특성으로  사회에 쉽사리 녹아들지 못하는 ‘특이한’ 존재로 규정된다. 그는 사회의 내외부에 일정량 걸쳐있는 존재라는 면에서 경계인이다. 그리고 마지막, 주현을 죽인 살해범이며 트랜스우먼인 동혁 역시 이 작품이 범주하는 경계인에 포함된다. 


 미스테리는 플롯의 심연으로부터 사회의 심연으로 나아가 그 내부에서 괴물을 찾는 장르이자 기능이다. 그렇기에 이 설정하는 ‘경계인’은 일종의 괴물의 전조 증상이며, 이를 통해 괴물적 존재에 대한 재규정을 목표하고 있다. 말하자면 진짜 괴물을 만드는 것은 그들이 가진 경계성인가, 아니면 또다른 작용인가를 질문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에 동혁의 성정체성은 눈에 띄는 성질이 된다. 그가 트랜스우먼이라는 설정은 작 중에서 주요한 참고인으로 거론되는, 성별이 다른 두 인물이 실제로는 하나였다는 반전의 요소로 사용된다. 그런면에서 이는 철저하게 장르적 이용이다. 하지만 본작이 규정하는 ‘괴물’의 조건과 규합한다면 어딘가 미심쩍어지는 구석이 있다.


 <경계인>에서 괴물이 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성민은 과거에 흡혈귀인 자신을 거두어준 부모를 통해 인간 사회와의 호흡이 가능해졌으며, 주현 역시 가족의 올바른 교육과 통제를 통해 사회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오직 동혁만이 이러한 전제조건을 클리어하지 못했다는 점은 매우 커다란 핵심이다. 그는 혈육임을 부정하는 모친으로부터 커다란 학대를 받는 동시에 주현이 소유한 ‘정상가족’의 진짜 주인이 자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경계인>은 매우 정확하게 한 지점을 짚는다. 그것은 ‘가족의 사랑’이라는 기재가 괴물화를 막는 처방이라는 설득이다.


 이러한 의도와 동혁의 성정체성은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다. 가족 정상성은 젠더 정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상가족 신화는 출산과 보육이라는 재생산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지배 이데올로기 종속적인 개념이다. 언뜻 작 중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 문제들이 동혁이라는 인물을 경유해 하나로 연결될 때,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신호가 된다. 은 경계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지만 지정된 조건에서는 그들을 괴물의 영역으로 밀어낸다. 어떤 면에서는 ‘경계로부터 이쪽으로’ 돌아오길 희망하는 강한 촉구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2023년 발간된 <지금, 만화> 17호 혹은 만화규장각 홈페이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마왕은 누가 쓰러뜨렸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