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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Jun 27. 2024

‘몰이해’와 ‘똥고집’

중세시대 스페인의 칼 5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그리고 스페인 왕으로서, 또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으로서 전 유럽을 지배하며 세계의 패권을 좌지우지한다. 그 후 펠리페 2세가 그의 뒤를 이어 스페인 왕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맹주가 되면서 세계 판도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펠리페 2세는 선대로부터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가치의 엄격함 속에서 성장하였기에 당시 번성하던 개신교도들의 세력화를 가만두고 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필리페 2세는 먼저 칼빈교도들이 몰려드는 네덜란드를 원래의 가톨릭국가로 복구시키기 위해 본때를 보이려 침공을 한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의 무적함대라 부르던 아르마다가 네덜란드와의 전투에서 보기 좋게 참패를 한다. 지금의 벨기에 북부도시 안트베르펜 전투에서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의 3,000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참패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칼레에서 스페인은 또다시 영국에게 패배를 당한다.      


펠리페 2세는 기존 질서의 수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신교를 증오하였기에 유럽의 개신교 국가들을 가톨릭 국가로 되돌려 놓으려 전투를 벌인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헨리 8세가 지배하던 영국을 침공했지만 안탑깝게도 펠리페 2세의 전략은 영국의 해적왕이라고 하는 드레이크에게 기습공격을 당하면서 박살 나고 만다.


그로 인해 스페인이 지녔던 지중해의 영광은 서서히 사라지고 대영제국의 시대가 도래한다.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영국은 이때부터 바다와 해외 식민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결국 1571년부터 1582년까지의 10여 년 사이에 치러진 칼레전투가 스페인과 영국의 운명을 뒤바꾸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세계패권의 역사는 새로운 신화를 쓰기 시작한다. 이런 결과는 어쩌면 스페인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그동안 가톨릭의 구태의연한 세계관이 개신교라는 새로운 세계관으로의 이행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용인하지 못하고 무시하고 묵과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인간의 집착은 모든 개혁을 거부한다. 결국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가지고 있던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기존 질서체계의 핵심으로 여길 뿐 다른 변화, 즉 개신교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혁신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스페인의 몰락을 보면서 언제나 혁신의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특히 한 사람의 혁신에 대한 몰이해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웅변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고질병도 어쩌면 혁신의 속도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70년대의 반공이데올로기 속에 집착하려는 한 사람의 몰이해와 고집에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현 정권의 태도는 어쩌면 독버섯처럼 번지는 수구반동적 극우단체들과 결탁해 인간의 고귀한 삶을 말살하려는 은밀한 만행을 일상화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인간다울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국가의 지도자라는 인간이 거부권을 요술방망이처럼 마구 휘둘러대고 지키지 못할 수백조 원의 지원약속을 남발하고 그것도 모자라 울화병에 도진 국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상담을 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패권적 고집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울화병과 거짓으로 일상화되고 있는 현 정권의 무지함에 지쳐있다. 부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더 이상 거짓약속으로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똥고집을 피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러나 자신의 몰이해를 사죄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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