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갑질’ 체험기

인권경영 자리 잡아야

by 우보

요즘 상사의 갑질이 이슈가 되고 있다. 폭언을 일삼는가 하면 직원을 개인적인 일에 동원하는 등의 갑질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특히 장관 후보인 전직 의원의 폭언 등 갑질은 어떻게 저런 인격의 인물이 공직 후보에 오를 수 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갑질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겪었던 상사의 ‘끔찍한 갑질’이 새삼 떠올랐다. 한 기업에서 일하던 당시였다. 그 회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이런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서에 배치된 후 상사의 고성과 폭언을 목격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이 상사는 간부와 직원들을 상대로 인격 모독을 일삼는 폭언을 해대기 일쑤였다. 멀쩡한 기업에서 그런 일이 제동 없이 벌어지고 있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마침내 다른 간부와 직원들이 치르는 곤욕이 나에게도 닥쳐왔다. 반복되는 상사의 지나친 갑질은 나에겐 큰 고통이었다. 얼마나 정신적 고통이 컸던지 한 번은 만취한 상태에서 선배 앞에서 통곡을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시는 상사의 갑질이 문제시되지 않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아랫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 년여를 이런 상황에서 지냈다. 그런데 안 되겠다 싶어 상사에게 면담을 신청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요청했다. 긴 대화 끝에 ‘앞으로 잘 모시겠다’는 말로 면담을 끝냈다. 일이 잘 풀린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상사는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나를 ‘항명’ 등의 사유로 몰아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워낙 그 서슬 푸르게 나오니 아무도 그에게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인격적 대우를 요구한 절실한 요청을 항명으로 몰아대는 그 분위기. 결국 나는 다른 부서로 인사조치가 됐다. 2년여 동안 갑질을 당하다가 인격적인 대우를 요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내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것이다. 그 기업이 왜 일을 그렇게 처리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가지만 당시로서 나는 회사의 조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해외 유학을 다녀와 기업에서의 순항을 생각했던 나의 꿈은 그렇게 속절없이, 그리고 억울하게 꺾였다. 과도한 갑질을 한 상사가 아닌 문제 제기를 한 하급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그 기업은 요즘 얘기되는 ‘인권 경영’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인사 조치된 새 부서에서 의기소침한 상태로 일을 하던 차에 다른 직장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연봉이 3분 1 이상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생각 끝에 직장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갑질을 용인하고 이를 그만둬 달라는 간절한 요구를 한 간부를 내친 회사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퇴사를 회사에 통보하고 난 지 얼마 안돼 웬일인지 사장과 부사장이 이례적으로 오찬을 같이 하자고 했다. 점심 자리에서 그들은 위로를 하며 “고생하는 줄 알았지만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한 사람의 인격이 무너지는 것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상사의 지나친 갑질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회사. 그럼 직원들은 누구를 보며 일해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그 오찬을 끝으로 난 새 직장으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다 지난 일이긴 하다. 그런 일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상사의 갑질은 폭력이고 인격살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그런 일은 경험한 2년 여는 악몽 같은 기간이었다. 요즘 기업에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경영이 기본으로 강조되고 있다. 임직원의 인권조차 존중하지 못하는 기업은 ‘나쁜 기업’이라는 낙인으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갑질을 일삼는 상사는 공직을 맡거나 중요한 일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인격으로 어떻게 남들 앞에 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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