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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Mar 28. 2017

상식과 획일적 기준 (지배)의 해체가 진정한 대중문화다

아이콘과 아방가르드로 대중문화를 해부한다?






아이콘으로 예술사를 이해하고 이어서 대중문화를 비평하자!


아이콘은 원래 고대 그리스어 에이콘 (eikon)에서 유래한 이미지 (그림)를 뜻하는 단어인데, 기독교 국가에서 예수나 성모 마리아와 같은 성인들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들을 의미한다.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여러 아이콘은 자신들의 기도나 종교생활에 있어 도움을 주는 종교적인 상징물이다. 이런 아이콘이 왜 예술사의 이해에 있어 필수적일까? 참고로 예술사의 연구는 주로 회화작품에 대한 분석과 관계가 있다. 19세기부터 예술사가들은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수많은 회화작품과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회화 작품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회화작품에 아이콘을 사용하는 전통이 다양한 시대와 문화에서 발견된다. 이집트 신들, 로마 황제의 초상화, 기독교 성화, 그리고 불교나 힌두교의 회화들도 아이콘을 이용한 회화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진다. 이해하기 쉬운 아이콘의 예로, 백합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초대교황인 베드로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Saint) 캐서린을 그린 여러 그림은 아이콘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녀 캐서린을 그린 수많은 그림들에서 발견되는 캐서린의 외모가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수백년에 걸쳐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캐서린이 그려졌기 때문에 그림마다 제 각각의 다른 외모를 가진 성녀 캐서린의 그림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t. Catherine of Alexandria

                                                            


  

하지만 외모가 각기 다르게 묘사된 성녀 캐서린을 예술사가들이 식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캐서린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에 바퀴가 존재하는데 이 바퀴가 성녀 캐서린을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이렇게 한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아이콘을 이용해서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어온 수많은 회화작품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진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아이콘을 이용한 그림이 종교적인 그림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 예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페르미어 (Vermeer)는 '우유병을 든 하녀 (Milk Maid)'라는 자신의 그림에서 아이콘을 사용한다. 사실 이 작품은 그 시대에 여성의 이상적인 롤 모델 (role model)로 가정적이고 온화한 여성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이 그림에 사용된 아이콘을 보면 쉽게 드러난다. 그림의 하단 오른쪽 부분에 화가 페르미어는 빨래 바구니를 지우고 거기에 발 난로를 그려 넣는다. 17세기의 혹한의 유럽에서 발 난로는 따뜻함, 사랑, 충성을 의미했다고 한다. 또한 발 난로 근처의 온화함과 사랑을 상징하는 큐피드가 타일에 장식으로 그려진 것을 보면 이 그림에 대한 페르미어의 의도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Johannes Vermeer, Milk Maid (1657-8)

  



현대 미술에서도 아이콘은 사용된다. 팝 아트의 대가인 엔디 워홀이 실크 스크린 방식으로 작업한 마릴린 먼로의 판화자체가 소비주의를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엔디 워홀의 작업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비판하는 소비주의의 방식을 따른다. 소비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한 축인 대량 생산 방식을 워홀은 이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 방식 자체가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워홀의 수단이 된다. 자연스런 결과로 여배우인 먼로가 상품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워홀만의 비판적인 코멘트 방식 또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드는 판화방식이었다. 소비주의와 여배우의 상품화 (commodification)를 가장 잘 상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는 작품이 엔디 워홀의 바로 이 작품이다.      


Andy Warhol, Marilyn Diptych (1962)





모던 아트와 아방가르드     


모던 아트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방가르드 (Avant-garde)이다. 아방가르드는 프랑스어인데 원래 이 표현은 군사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군대에 선봉에 선’ 이란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지만 19세기 중엽이후의 예술사적인 특성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시대를 앞서 있는, 앞서 있는 지위, 혹은 혁신’의 의미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아방가르드는 형용사와 명사의 의미를 구분해서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예술의 특성을 의미하는 아방가르드는 형용사이지만 명사의 의미로는 이러한 예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 집단을 아방가르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혁신적이고 실험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진 형용사로 먼저 사용되기 시작한다. 필자가 이 글에서 소개 할 모던 아트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1863년에 전시된 모던 아트의 시작을 알리는 에두아드 마네의 ‘소풍에서의 점심’, 피카소의 1914년 작 ‘정물 (Still Life)’을 포함한 그의 몇몇 조각 작품들, 1917년의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 소변기)’이다. 이런 작품들의 어떤 특성이 아방가르드한지, 그리고 이 작품들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를 세종이 분석하려고 한다. 이 분석의 과정에서 모던 아트가 왜 아방가르드한지,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아방가르드적인 예술작품이 21세기의 대한민국 사회와 우리 사회의 예술에 어떤 말을 할지를 한 번 들어보려고 한다. 왜? 세종이 '생각공장의 시선 - 대중문화는 상식의 감옥이다!'란 글에서 진정한 대중문화의 한 예와 대중문화를 비평하는 기준을 제시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 - 폭력적인 획일적인 기준의 파괴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파리는 한 나라의 수도라기보다는 유럽 대륙 전체의 문화적인 수도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무명의 젊은 화가들이 프랑스 파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1870년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과 함께 문화 부문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동시에 예술 교육에 대한 재정비가 이루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 유럽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향한다. 하지만 성공의 꿈을 갖고 찾아온 젊은 예술가들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우선 파리의 수많은 예술가들과의 경쟁도 문제였지만 더욱 더 큰 장벽은 파리의 기존 예술계 자체였다. 파리에서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선 시민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작품 전시의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파리의 살롱에서 자신의 작품이 전시가 될 때에야 비로소 예술가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작가의 작품들이 살롱에 전시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살롱의 심사위원들은 매우 '전통적인' 기준으로 살롱에 걸릴 작품들을 심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통적인’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파리의 예술학교에서 교육받은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 부분에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재능은 있지만, 파리에서 교육받지 못한 젊은 화가들의 작품은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전통적인’의 의미는 당시 한 점의 그림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게 만들 수 있는 기준은 환각법 (illusionism)이었다. 환각법은 관객이 평면인 회화작품을 보면서 마치 입체적인 느낌을 갖게 만드는 회화의 한 기법을 가리킨다. 주로 회화에서의 이런 입체적인 느낌은 원근법이나 명암과 같은 회화기법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다. 물론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의 기존의 예술계 시스템에 의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위의 첫 번째 이유였다. 이미 성공한 파리의 예술가들이 누리는 특권도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또 다른 장벽이었다. 하지만 이에 더해 당시의 파리 시민들의 예술작품을 즐기는 방식도 너무 전통적인 미학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혁신적인 젊은 작가들에게 파리의 현실은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런 결과로 이러한 현실은 많은 무명의 예술가들을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소외감이 아방가르드적인 예술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당시 파리의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는 자본주의적인 요소들, 특히 상업적인 요소들이 파리 사회의 문화 전반에 스며 있었다. 이런 문화는 시민들로 하여금 오로지 신분 상승만을 추구하게 만든다. 돈의 축적과 이를 통한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획일화된 가치는 많은 가난한 시민들 뿐 만 아니라 특히 예술가 집단을 소외시키고, 동시에 이 예술가 집단으로 하여금 돈 (money)만을 지향하는 좀비적인 (한 가지 가치 예를 들면 '돈'으로 획일화된 사회 - 세종의 표현)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하게 만든다. 이러한 환경에서 상업화된 예술과 예술계에 대한 아방가르드적인 특성을 가질 젊은 예술가들의 비판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젊은 화가들은 소외된 자신들의 처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들을 카바레나 카페, 그리고 예술잡지 사무실 등에 전시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개척해나갔다. 당시 파리에는 수많은 예술 잡지가 있었다. 이 예술 잡지의 수명은 길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많은 사상과 실험적인 예술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이러한 잡지들이 새로운 사상을 가진, 동시에 혁신적인 작품을 하는 예술가 집단을 등장하게 만든다.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젊은 화가들이 바로 아방가르드이다. 동시에 이런 화가들이 그려 낸 작품의 특성을 우린 아방가르드하다고 부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살롱에 대한 무명 작가들의 접근은 사실상 막혀 있었다. 어느 사회에나 각종 진입장벽이 있다. 이 진입 장벽들은 하나의 표준적인 기준으로 위장한다. 살롱의 심사위원들이 당시 파리예술계의 주요 인사들이었고 이들이 가졌던 예술 작품에 대한 기준이 재능있고 혁신적인 화가들의 살롱 진입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1863년에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그 당시에 예술계에 이미 흐르고 있던 새로운 예술적 분위기나 경향성을 읽고 있었다. 이에 반응해서 살롱 드 레퓨지 (Salon de Refusés)라는 공식 살롱에서 탈락한 작품을 걸 수 있는 전시회를 나폴레옹이 열어줌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 바로 이 전시회의 최고 화제작이 에두아드 마네 (Edouard Manet)의 ‘소풍에서의 점심 (Le Déjeuner sur l'herbe; The picnic Luncheon)’이다.



에두아드 마네의 소풍에서의 점심     


Édouard Manet, Le déjeuner sur l'herbe; The Picnic Luncheon, (1862-3)

       



에두아드 마네의 ‘소풍에서의 점심’은 공식 살롱에서 탈락된 작품들을 위한 살롱 드 레퓨지 (1863)의 최대 화제작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당시 미술전문가들과 시민들 모두에게서 비웃음과 조롱을 사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네의 이 작품은 당시 예술 작품의 기준인 환각법 (illusionism)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 남자의 손가락과 시냇가에서 발을 씻고 나오는 여인의 손가락이 거의 닿아 있다. 이것은 원근법이 매우 어설프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원근법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누드로 묘사된 여인의 머리 장식과 이 그림의 배경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명암의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누드로 그려진 여인의 시선처리도 매우 공격적 (?)이다.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이 벗은 여성은 마치 관객을 향해서 ‘뭘 보니?’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외에도 남자의 정장이 당시 일반적인 남자들의 정장과는 다르게 상당히 ‘올드-패션드 (old-fashioned)’하게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남자의 손가락이 마치 당시 파리의 전형적인 남성 시민이 즐기는 지적인 토론의 제스처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것도 그림 상단 중앙에 희미하게 보이는 새를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모호하게 마네는 남겨 놓았다. 마네는 당대의 예술전문가와 파리 시민들로부터 조롱을 받기 위해서 이 작품을 살롱 드 레퓨지에 전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롱의 심사위원과 시민 모두를 조롱하기 위해서 마네는 이 작품을 전시했다. 마네는 고의로 원근법, 명암, 누드 여인의 시선처리 등과 같은 동시대의 예술적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서, 동시대의 살롱의 심사위원들이 정한 예술의 기준, 그리고 전통적인 예술 작품의 기준에 익숙한 시민들의 예술을 즐기는 방식 둘 다를 마네는 조롱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네의 소풍에서의 점심은 아방가르드한 모던 아트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요약하면, 마네의 이 작품은 모든 예술을 평가할 수 있는 한 객관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이러한 편견을 가진 당대의 전문가와 파리 시민들의 편견을 매우 흥미롭게 비꼰다. 세종은 이렇게 하나의 기준을 정하는 행위를 '폭력의 미학'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예술을 평가하던 19세기의 한 가지 기준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진입장벽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미의 기준, 혹은 예술의 기준이 가지는 폭력과 부당함에 대한 마네의 지적이 이루어진지 150 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의 미의 기준에 대한 의심과 파괴가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아직도 패션 산업과 미디어들이 정해주는 미의 기준에 따라 본인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심지어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형외과를 찾기도 한다. 미디어 (방송, 신문, 패션 잡지, 인터넷 등)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사진들은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기준을 우리에게 주입한다. 이렇게 주입된 하나의 미의 기준은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에게 폭력 그 자체다. 왜냐하면 이 기준에 부합되지 않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학습된 미의 기준은 '너는 못생겼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노출되는 수많은 미남, 미녀의 이미지는 외모나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편견을 만든다.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에겐 이들의 아름다움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만 '만들어진 혹은 정해진' 미의 기준이 존재한다. 이상하다. 식물과 동물은 자신들을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으로 순위 매기지 않는다. 인간만 이런 못되고 멍청한 편견을 가진다고 아방가르드한 모던아트가 오늘 우리에게 외친다.              




피카소와 소비주의??     


Pablo Picasso, Still Life (1914)

  

   

Pablo Picasso, Baboon and Young (1951)



피카소에게 천재 (genius)란 칭호를 선사한 1914년 작품인 조각 정물 (Still Life)은 그의 연금술사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작품은 버려진 나무 조각, 합판, 대량 생산된 제품, 그리고 소비주의의 이미지와 같은 버려진 물건들을 예술작품으로 변모시켰다. 1951년 피카소의 ‘개코 원숭이와 새끼 (Baboon and Young)’에서 개코 원숭이의 얼굴은 두 개의 장난감 자동차로, 꼬리는 자동차 스프링으로, 귀는 컵의 손잡이로, 그리고 몸통은 물병으로 만들어 진다. 무엇보다도, 가장 잘 알려진 1943년 작품인 ‘황소의 머리 (Bull’s Head)‘에서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만으로 피카소는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낸다. 위와 같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서 피카소는 예술 창작에 있어 예술가의 정교한 기교나 솜씨보다 예술가의 상상력과 아이디어 (ideas)의 우위를 상징적으로 선언한다. 피카소는 조각의 재료로 대리석이나 청동 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조각의 재료에 관한 기준을 깨는 아방가르드적인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피카소의 위의 작품들은 소비되고 버려진 상품이나 재료를 창의적으로 재활용함으로써 시민들이 버린 물건을 평범한 물건 이상으로 만든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소비주의가 생산하고 버린 쓰레기를 예술 작품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당시의 소비주의의 특징인 획일적인 소비 행태와 사치를 피카소는 비판한다. 근대 유럽은 소비주의의 홍수 속에서 소비하는 것을 미덕 (virtue)으로 간주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를 이용해서 대중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키는 피카소의 예술 행위 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린다. 소비주의가 만연한 19세기 유럽과 매우 흡사한 IMF 이후의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대중 예술가 집단에게 피카소는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획일화된 가치인 소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물건들을 버린다. 우리가 소비를 통한 화려함이란 가치를 추구하면서 버린 수많은 물건과 함께 다른 소중한 가치들도 같이 버리진 않았을까? 21세기의 대중 예술가들은 이렇게 대중이 버린 것으로 다시 소중한 가치를 만드는 '가치 전복 (subversion)'의 임무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



Pablo Picasso, Bull’s Head (1943)





마르셀 뒤샹의 샘 (Fountain)     


Marcel Duchamp, Fountain (1917)



1917년 마르셀 뒤샹의 작품인 ‘샘 (소변기)’은 뉴욕의 독립 예술가 협회의 전시회에 뒤샹 자신에 의해 익명으로 출품 되지만 협회에 의해 전시가 거부된다. 뒤샹의 ‘샘’인 이 소변기는 뒤샹이 만든 것이 아니다. 작품이 아니라 그저 변기 가게에서 구입한 기성품이었다. 이 예술 전시회 중에 뒤샹의 원래 변기는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1960년대를 지나면서 전 세계의 여러 미술관에서 이 변기들이 전시되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피카소나 엔디 워홀, 마티스를 제치고 2004년 영국의 500여 명의 예술 전문가들이 뽑은 모던 아트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다. 이 작품은 ‘예술이 무엇이며, 이 예술을 하는 예술가란 도대체 누구이며,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20세기의 개념 미술 (Conceptual art; 아이디어 중심의 예술)을 만들어 낸다. 물론 '예술은 당신이 소변 보는 것 (변기)정도에 불과하다'는 뒤샹의 기존 예술가들을 향한 조롱으로 해석될 수 도 있다. 반 (anti) 예술주의자 답게 뒤샹은 예술 본성 그 자체에 대한 의심을 기성품인 변기와 같은 것들을 이용함을 통해서 표현했다. 또한 뒤샹의 이 작품은 예술작품의 품격과 예술가의 기교가 가지는 상관관계를 영원히 끊어버리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그래서 다다주의자인 뒤샹과 뒤샹의 친구들에 의해 벌어진 변기 스캔들 만들기 프로젝트가 밝혀 졌음에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모던 아트 작품으로 선정된다.      





아이콘과 아방가르드로 드라마와 영화를 비평한다!     


아이콘과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적인 틀을 이용해서 우리 시대의 대중 예술을 해석해 본다면 어떨까? 우선, 대한민국의 드라마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갖는 상품으로 인정받는다. 그러고 보니까 드라마는 대중예술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어주는 상품일 뿐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 같다. 원래 예술은 대중에 의해 사랑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근데 이제부터 좀 수준 높게 예술을 사랑해보자고 세종은 외친다. 가짜 대중문화이자 예술이라고 우기는 드라마는 이제 그만 보자! 주제로 다시 돌아가면 드라마의 다양성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고 일부의 사람들은 주장할 수 있겠지만 사실, 수많은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한결 같이 성공한 대한민국 남성 중에 한명을 상징한다. 물론 성공한 남자의 아이콘인 남자 주연 배우 옆에 있는 여자 주인공은 그 성공한 남자 주인공의 연인으로 항상 등장한다. 물론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매번 새로운 배우들로 바뀐다. 각각의 드라마에서 남자 주연들의 이름과 직업은 매번 바뀌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변하지 않는다. 남자 주인공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결 같이 돈을 가진 성공한 대한민국 남성이다. 반면에 여주인공은 돈 없고 가난한 흙수저 집안의 ‘아름다운’ 여성들이다. 성공한 남자와 이쁘고 착한 여자의 아이콘인 남녀 주인공이 연기하는 드라마 자체는 패션 잡지인 보그 (Vogue)의 동영상 버전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 낸다. 이 드라마들은 세종에겐 직접광고나 간접 광고 (product placement)들로 가득찬 여성 잡지나 남성 잡지일 뿐이다. 물론 드라마는 스토리가 들어간 광고이기 때문에 일반 종이 잡지보다 소비를 부추기는 영향력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히트한 드라마에 출연한 여배우가 몸에 걸친 모든 것들은 항상 완판이다. 한국 드라마 자체가 ‘돈과 소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것은 드라마 자체가 반 아방가르드적 (Anti-avant-garde)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돈과 소비를 통한 행복. 그리고 이를 통한 삶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한국 드라마는 시민들이 가지는 통념 혹은 상식 (common sense)을 더욱 고착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이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를 떠 받친다. 상식과 불평등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생각공장의 시선 - 대중문화는 상식의 감옥이다!'란 글을 세종의 브런치에서 참고하기를 강추한다. 상식과 이 상식이 만들어내는 모든 기준을 깨뜨리는 것이 진정 대중예술이 지향해야 하는 목적이라고 모던아트는 외친다. 하지만 돈으로 산 화려한 삶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상식을 드라마는 더욱 단단한 생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보수적인 (conservative)특성 즉, 대중들이 가지는 동시대의 가치관이나 상식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러한 특성은 성공한 소수를 항상 승자로 묘사하고, 나머지 다수는 자신을 패자로 느끼게 만든다. 이런 대중문화는 인간의 존엄 자체를 짓밟는 폭력 그 자체다. 이런 대중문화의 미학을 세종은 폭력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드라마는 놀랍게도 다수 시민의 경쟁 상대인 기업가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선망하게 만든다. IMF이후로 다수 시민의 소득은 정체된 반면 기업가들의 이익은 급상승한다. 당연한 결과로 불평등의 정도가 더 악화되었다. 공정한 분배가 기업가들의 욕심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드라마는 재벌 2세를 선망하게 만든다. 그것도 매우 잘 생긴 배우를 이용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좋은 드라마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는 다수 시민들로 하여금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속지마라! 건강한 사회를 위한 대중 예술의 역할은 이러한 획일화된 가치에 대해, 그리고 대중이 가지는 편견을 향해 끊임 없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정반대로 이러한 편견을 고착화시키면서 대중예술이라는 이름을 쓰고 대중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헬조선을 떠 받치고 있는 상식과 그 상식이 만들어 낸 불평등의 상황 (status quo)을 드라마가 더 악화시킨다. 드라마는 상식을 생산하는 생각공장이다. 드라마는 돈으로 산 화려한 삶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도록 대중을 세뇌시키고 있다는 면에서 전혀 대중적이지 않고 오히려 획일화된 기준으로 대중을 길들이고 조종하기 위한 자본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드라마를 후원하는 기업들이 진정 누구를 위해,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일 년에 수 백편에 이르는 드라마를 단 돈 만원 (시청료)도 안 되는 값에 우리에게 제공할까?’ 라는 질문은 꼭 필요해보인다.




Pietà



영화 '피에타'는 자본주의의 잔인한 속성과 그 속에서 한 부분으로, 마치 거대한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작은 부품으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비참함을 그린다 (스포일러 주의). 이 비정한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이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를 주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주인공은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뼈아픈 고통인지를 깨닫게 된다. 채권추심업자로서의 자신이 동료 인간과 그 가족에게 무슨 짓을 그동안 해왔는지를 깨닫게 되고 이어 자살을 선택한다. 이 주인공은 다름 아닌 치열하고 비정한, 그리고 돈에 의해서 이러한 비정함과 잔인함이 난무하는 자본주의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개인인 즉, 우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길 위에 뿌려진 주인공의 피는 잔인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자신의 행동이 동료 인간에게 어떤 고통과 상처를 주는지 인식조차 못하고 (성실히?)살아가는 수많은 개인들을 위해 흘리는 신의 자비를 구하는 상징으로 필자에겐 보여졌다. 길 위에 뿌려진 주인공의 선명한 피를 보면서 왜 필자에겐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처형한 사람들을 향해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신의 자비를 구하는 예수의 모습이 떠올랐을까? 상식이란 이름의 편견을 고착화시키는, 그래서 현재의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한국의 드라마와 현재의 경제제도인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공격하고 이에 도전하는 영화 중 어느 쪽이 대중인 시민을 위한 예술인지를 이제는 물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파괴한 모던아트는 그래서 아름답다.      


모던 아트의 시작을 알리는 에두아드 마네의 ‘소풍에서의 점심’에서부터 뒤샹의 ‘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아방가르드적인 모던 아트의 특징은 아름다움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의 파괴이다. 모던 아트는 더 이상 표준화된, 객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폭력적인 기준을 과감히 파괴했다. 미 (beauty)와 예술에 대한 하나의 지배적인 기준이 수많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소외시켰던 이러한 사회적인 폭력을 모던 아트는 오래전에 폭로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폭로가 있은 후로 160여년이 지난 21세기 지구촌에서도 끊임없이 하나의 기준이 지구촌의 엘리트 그룹과 미디어에 의해서 시민에게 강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에 있어 성공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돈과 소비를 통한 화려함이라고, 패션 산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번도 빠짐없이 하나의 트렌드로 이번에는 이것이 아름다움이라고, 대한민국의 청소년, 그리고 대학생에게는 언제나 성적 혹은 경쟁이란 획일적인 가치만을 강요한다. 그래서 모든 시민을 한 줄로 그것도 한 기준으로 줄 세운다. 이렇게 한 기준으로 시민을 줄 세우는 문화는 폭력 그 자체다. 기준의 획일성이 가하는 폭력을 시민들은 고스란히 감내한다. 때로는 왜 이토록 힘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우울해하며, 때로는 자살을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기준의 획일화는 소수만을 행복하게 만들면서 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미학 혹은 이념임을 21세기의 대중예술은 계속해서 외쳐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피에타는 예술의 형태로서 ‘돈’이라는 획일적 기준이 대한민국 사회에 미치고 있는 폐해를 아프고 불편하지만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상식과 동시대의 지배적인 가치를 전복 (subversion)시키는 예술이 진정 대중예술이고, 이 기준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을 비평하는 한 주요기준이 될 수 있다고 세종은 강력하게 외친다. 이에 동의하시면 공유와 댓글을 사정없이 달아주시기를! 폭력적인 하나의 기준을 파괴한 모던 아트는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을 파괴했지만 바로 이러한 기준의 파괴가 모던 아트를 아름답게 만드는 이유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파괴한 모던 아트는 그래서 아름답다. 획일적인 기준을 만드는 이유는 이 기준을 통해 다수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Bibliography     


Arnold. D (2004), ‘Art History’,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Cottington, D. (2005), ‘Modern art’,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Hopkins, D. (2004), ‘Dada and Surrea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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