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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순 Oct 28. 2020

시간, 불안-그리고 불편안

불안해하는 나에게 쓰는 편지

"쉬엄쉬엄 살아요, 쌤"

"선생님 야근 그만하고 퇴근하셔요"


아무도 날 쫓아오지 않는데 늘 나 혼자 쫓기듯 살고 있다. 내 딴엔 밀도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 자부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의 단위가 나에겐 너무 촉박해졌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귀한 나머지, 보람차고 알차지 않으면 잘못된 하루라고 생각했다.


"이번 주말은 좀 쉬어봐"


처음으로 텅 빈 주말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 주말에도 나는 집 청소, 설거지, 분리수거, 가계부 쓰기를 하며 바삐 보냈다. 문득, 올해 초 만났던 노람님과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노람님은 주말에 뭐해요?"

"그냥 놀아여"

"뭐 하면서요?"

"그냥 뭐... 티비보고... 맛집 가고..."


순간 나는 노람님을 한심하게 생각했고, 그런 나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쉴 줄 몰라서 쉬는 법을 물어봤는데, 쉬는 사람을 한심하게 보다니.

나는 어쩌다 쉬는 것을 한심하게 바라보게 된 걸까? 그래서 오늘 점심은 정말 덜 생산적인 일을 했다. 드라마를 봤다. 물론 드라마를 보면서 밥도 먹고 빨래도 갰지만, 적어도 나에게 여태까지 가장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활동이었다. 불안했다. 나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나?


요즘 들어 '시간'에 대해 굉장히 불안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 은근하게 나를 압박해왔던 것이다. 서른이 이제 막 넘고, 남들은 서른이면 아직 한창 젊다는데, 결혼을 해야 할 것 같고 공부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뒤쳐지고 있는 듯했다. 아무도 재촉하 않았다. 나 혼자 스스로를 재촉했다. 누구라도 만나야 불안함을 잊을 수 있었다.

느긋함이란 뭐였지? 여유가 뭐였더라. 나는 텅 빈 시간 속에서 편안해할 줄 몰랐다. 노람님은 하루를 바삐 사는 내가 참 대단하다고 하지만, 시간 앞에서 유유자적하는 노람님이 더 대단한 걸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쥐어 짜내기만 하고 널어놓지 못하니 말이다.


지도를 볼 때 '척도'라는 것이 있다. 공간의 범위를 측정할 때 쓰는 표준 단위인데, 아마도 초등학교 사회과부도 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지금도 사회과부도가 있나? 아무튼. 같은 공간이라도 1m 단위로 그리는 것보다 1km 단위로 만들면 좀 더 단순해질 수 있다. 1m 단위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보이지만 멀리 보지 못하고, 1km 단위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멀리 볼 수 있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것이다.

시간을 보낼 때도 '척도'가 있다. 1년을 단위로 사는 사람도 있고, 1일을 단위로 사는 사람도 있다. 1년을 단위로 사는 사람은 월별 계획만 큼지막하게 있어 한 해가 여유롭다. 1일을 단위로 사는 사람의 스케줄은 아마 매일매일이 빼곡할 것이다.


나는 하루를 3 등분해서 살고 있다. 주말이 되면 사람을 총 7번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토요일 아점, 점저, 저녁, 일요일 아점, 점저, 저녁 그리고 금요일 저녁. 그렇게 몇 주 몇 달을 살아보니 완벽히 공허해졌다. 나라는 껍데기가 반사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줄 마음이, 시간이, 기억이 점점 조각난 파이처럼 작아졌다.

하다못해 일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남자 친구에게 연락이 안 오네- 하고 카카오톡을 보면 고작 5분만 지나있었다. 미쳤어, 집착하는 것 같잖아. 내가 이렇게, 나의 삶에 집중을 못하다니. 어쩌다 내가 현재 서 있고 위치한 이 시점 오롯이 빠져들지 못하는가.


시간의 단위를 키워보기로 했다. 5분이 아닌 1시간 단위로 살기로 다짐하고 있다. 1시간 동안이라도 그 시간 속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남자 친구에게 연락이 와있을 것이다. 하루를 3 등분하지 않고 1등분 할 것이다. 하루에 한 약속만. 그 약속에 충실하기로 나에게 약속했다. 그 시간에 충실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면 좀, 편안해질 거라 확신한다.


- 20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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